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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새긴 곡괭이 사용법

무엇이든지 알아야 하는 이유

by 조아

몇 년 전 국방개혁으로 지금은 해체되어 없었졌지만 '진군'을 하는 군단, 예하 부대 중 손에 꼽을 정도로 전방에 위치한 부대에서 복무를 하였다. 20년 가까이 부산에서 살다 겨울이 되면 허리춤까지 눈이 쌓이는 자대에서의 첫겨울은 눈치운 기억밖에 없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이 시기에는 눈치우다 모든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당시 하늘에서 내리는 하얀 눈을 쓰레기라고 부르며 아침에 일어나기 전 제발 눈이 내리지 않기를 기도한 날이 많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때부터 눈만 내리면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곤두 셨었다.



한 번은 위병소에서 도로 진입로까지 2km 정도 되는 거리를 혼자 제설작전을 했었는데, 도로까지 다 치우고 위병소 방향으로 가기 위해 뒤돌아서니 치운 눈 그대로 쌓여 있어 너무 화가 나 욕을 하며 석가래를 집어던졌던 적도 있었다. 부산에 살면서 눈을 구경할 수도 없었던 내가, 일 년 중 3개월 이상을 눈과 함께 보내며 눈을 극혐 하게 된 시기이면서 이런 연유로 나는 눈을 싫어하게 되었다. 서울에서 근무할 때는 눈 내리는 날은 도로 정체와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다리에 힘을 주고 다녔던 기억 때문에 더 눈을 싫어했다.


지금 부산에 살면서 눈구경하기 힘들지만 가끔 눈소식을 들을 때마다 군복무 시절이 떠오른다. 누구에게는 다시는 떠오르기 싫은 순간일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부모님 슬하를 떠나 처음으로 혼자 살았던 시절이자, 홀로 결정하고 살기 위해 모든 것을 배워야 했던 시기이다. 특히 자대에 가기 전 3개월가량 있었던 병과 학교에서의 생활은 본격적인 군복무를 하기 전 가장 기초적이고 필수적인 것을 배웠던 때라 졸리고 피곤하긴 했지만 새로운 것을 배우는 행복한 때였다.



나는 포병 출신이다. 병과를 결정하던 시기, 장기 복무를 한다면 전과 기회가 있지만 한번 정하면 바꿀 수 없는 병과 선택에 신중을 기했다. 심사숙소 끝에 최종 후보군에 오른 병과는 전공과의 연관성이 높은 '화학'과 대표적인 전투병과인 '포병'이었는데, 당시 전공에 대한 미련이 없었던 나는 1순위로 포병을 선택했고, 내 병과는 포병으로 결정되었다. 화학 병과를 선택했더라면 내가 근무했던 곳보다 훨씬 더 좋은 근무 환경과 후방에 위치한 곳에서 복무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내 선택에 있어서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육군 포병학교의 슬로건은 "알아야 한다"이다. 같은 병과 출신인 아버지께 무엇을 알아야 하고 왜 알아야 하는지 물어보았는데, 병과학교를 수료할 때쯤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고 하시며 "무엇이든 알아야 하고 살아남기 위해 알아야 한다"는 원론적인 대답만 들었다. 군대에 대해 정확하게 몰랐던 내가 무엇을 배워야 할지 모르기도 했지만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도 모른 채 낯선 곳에 가는 것처럼 불안감을 가중시키는 일은 없을 것이다. 자대에서 욕먹지 않고 임무 수행을 할 수 있게 포병학교에 많은 것을 배웠고 무사히 수료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막상 자대에 도착하니 표병학교에서 배운 것과는 별도로 새롭게 배워야 하는 신입생과 같은 상황에 봉착했다. 전입 오자마자 포병학교에서 배우지 않았던 새로운 임무를 배웠는데 바로 곡괭이 사용법이다. 도시 생활만 했던 내가 삽을 사용하는 일도 거의 없었지만 곡괭이를 사용하는 일은 아예 없었다. 중학교 입학 전 시골에서 살았던 아버지도 곡괭이를 사용했던 일이 없을 정도로 땅을 파기 위한 일이 아니면 사용할 일이 없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내가 사용한 장비 사진이 없고 현존하는 견인포 중 가장 뛰어난 미군의 M777 견인 곡사포)



내가 사용했던 장비는 지금은 기계화, 자주화되어 잘 사용하지 않는 6.8톤짜리 견인포였기에 포병사격을 하기 위해서는 가신 발톱을 땅에 잘 묻어야 했기에 무조건 땅을 파야했다. 각자마다 임무가 정해져 있기에 굳이 내가 땅을 파지 않아도 되었지만, 포병학교의 슬로건처럼 '알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곡괭이 사용법을 틈틈이 배웠고, 실제 사용하면서 사용법을 익혔더니 1년 정도 시간이 지나자 누구보다 곡괭이를 잘 사용하는 인원이 되었다.


흔히 보통의 삽질로는 가히 상상할 수 없는 깊이까지 땅을 팔 수 있는 곡괭이는 오함마와 함께 견인포병의 대표적인 도구였고, 곡괭이와 오함마를 보통 이상으로 사용하게 된 나는 야외훈련 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했던 내기 시합에 대표로 나갈 정도로 상당 수준이었다. 전역한 후 몇 번의 예비군 훈련 때

진지 보수공사를 할 때 곡괭이를 사용했지만 일상생활에서 곡괭이를 사용할 일도, 곡괭이를 볼 수 있는 기회도 없었다.


힘들게 익힌 곡괭이 사용법은 이렇게 잊혀 갔는데 지난주 금요일, 지주 간판 허가를 받기 위해, 나무를 옮겨 심는 일이 생겨 군복무 시절 즐겨 사용했던 곡괭이가 떠올랐다. 친한 친구에서 전화해서 본가에 있는 곡괭이를 빌리고자 했지만 마침 다른 분이 빌려간 상태라 빌리지 못했다. 하지만 농사를 짓는 지역의 철물점에 곡괭이를 판매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작업 당일 철물점에 들러 2만 원에 곡괭이를 구매했다. 낯선 사람의 방문과 평소 잘 찾지 않아 악성 재고로 남아 있던 곡괭이를 처분하는 홀가분한 철물점 사장님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근 십 년 만에 사용하는 곡괭이라 사용법을 잊었으면 어떡하나 걱정했지만, 내 걱정과는 달리 몸은 시간이 지나도 곡괭이 사용법을 기억하고 있었다. 도끼질과는 달리 발을 교차한 상태로 오른손잡이의 경우, 오른발을 앞으로 내민 상태로 오른손이 윗부분을 쥐고 왼손이 아랫부분을 쥔 상태에서 곡괭이를 높이 들었다가 땅에 내려칠 때는 두 손을 모았다가 땅에 박힌 곡괭이를 살짝 들어 올리던 파지법을 기억하고 있었던 몸 덕분에 쉽게 나무를 옮겨 심을 구덩이를 먼저 판 후 옮겨 심을 수 있었다.



삽만 준비했더라면 한참 결렸겠지만 곡괭이 덕분에 30분도 안 되어 나무를 옮겨 심고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곡괭이 사용법을 배울 때 쓸 일도 없는 것을 무엇 때문에 배우냐는 핀잔을 받기도 했지만, 군복무 중에만 사용하더라도 스스로 곡괭이 사용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배웠던 곡괭이 사용법을 전역한 지 18년이 지난 지금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랬고, 예상했던 것보다 작업을 일찍 끝낼 수 있어 여유로운 오전을 보낼 수 있었다.


포병학교를 수료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도 "알아야 한다"라는 슬로건은 마음속 깊은 곳에 잘 새겨 놓았다. 굳이 배울 필요가 없어 보이는 일이라도 배워 놓으면 언젠가는 사용할 일이 생긴다는 믿음처럼 나무를 옮겨 심는 일에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사용하는 곡괭이라 놓치지 않기 위해 손에 힘을 꽉 주었더니 손을 쥘 때마다 근육이 뭉쳐있지만 자전거 타는 법을 영원히 기억하는 것과 같이 곡괭이 사용법은 내 몸 어딘가에 잘 저장되어 있다는 사실에 기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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