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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녕 Jul 08. 2023

Q&A 회고록 (1)

1년 전 대룡씨와 1년 후 대룡씨의 이야기

MAY 29

{휴가가 하루 주어진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


2022

아침에는 집 청소를 싹~ 하고 당근 덮밥을 해서 먹고 후식으로 과일이랑 아아를 먹고 싶다. 오후에는 친구들을 만나서 맛있는 거 먹으면서 떠들고 저녁에는 러닝하고 논픽션 바디워시로 씻고 인센스를 태워 놓고 책을 읽거나 기분 좋은 영화를 보고 싶다. 이 날은 지나간 일에 대한 생각을 하나도 안 했으면 좋겠다.


1. 당근 덮밥


자취할 때 장을 봐서 음식을 해 먹는 것은 나의 가장 큰 즐거움이었고

독립을 하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가 '내 부엌'을 갖고 싶어서였다.


나는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가족들과 함께 사는 집에서는 요리를 하는 게 쉽지 않았다.

가족들의 입맛을 고려해 메뉴를 정해야 했고

양도 넉넉하게 하려니 맛을 내기가 어려웠고

무엇보다 엄마의 부엌에서 재료나 도구를 찾기 위해서는 매번 엄마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그럴때면 엄마는 늘 재료나 도구를 찾아 주는 데에 그치지 않고 내 요리에도 참견.. 아 아니 도움을 주었기 때문에 나는 점점 집에서 요리를 하지 않게 되었다.

(다른 사람에게 요리를 해주는 기쁨보다는 스스로 요리를 해 먹는 기쁨이 컸던 것 같다)


친구들은 자취 한 두 달이면 요리하는 거 귀찮아진다고 "너 밥 해 먹는 거 얼마나 가나 보자."고 했지만 나는 자취를 하는 일 년 내내 밥을 하는 게 귀찮아지지 않았다.

마트에서 색색깔의 채소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고

그것들을 집으로 데려와 씻고 손질하는 과정이 즐거웠다.

양파, 양송이 등 여러 가지 채소들은 색깔도 모양도 촉감도 칼이 드는 느낌도 달랐다.

칼질이 익숙하지 않은 내가 집중해서 그것들을 썰고 나서 제법 일정하게 썰려 있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흐뭇했다.


주로 한그릇 음식을 해 먹었는데 여러 메뉴들 중에서도 나는 특히 '당근 덮밥'을 좋아했다.

보기에 귀엽고 맛있는데 밖에서 사 먹을 수는 없는 음식이라서 마음에 들었다.

‘사 먹고 말지.’라는 생각을 할 수가 없는, 내가 해 먹어야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그리고 당근은 은근히 가리는 사람이 많은 식재료라서

당근 덮밥을 먹고 있으면 나는 편식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자부심도 느낄 수 있었다.


생각이 많은데 시간도 많아서 생각이 더더 많아졌던 시기에 요리를 하는 동안에는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고 시간도 잘 갔다.

그래서 일정이 없는 날이면 뭘 해 먹을지 결정하고 장을 보고 요리하고 먹고 설거지 하는 걸로 하루를 다 보내곤 했다.

일을 쉬고 있어서 힘이 차고 넘칠 때라 그 모든 과정이 귀찮지 않았던 거겠지만.


본가로 들어와 복직을 한 지금은 요리를 하고 싶은 욕구가 0에 수렴한다.

요리를 향한 내 사랑은 짭사랑이었는지도 모른다..

마치 임고생 때의 영화 사랑처럼..

(임고생 때 상영관 적은 영화 보러 원정 관람까지 다녔던 대룡씨)

(지금은 일 년에 영화관에서 영화 2~3번 볼까 말까 한 대룡씨)


2. 인센스, 책, 영화


작년 생일에는 선물로 인센스를 세 개나 받았다.

내가 돈 주고 살 일은 없었을 것 같은데 선물로 받으니까 마음에 들었다.

랭지가 준 인센스를 한 대 태워 놓고 씻고 나와서 잠옷을 입고 편백나무 향을 맡고 누워 있으면 꽤 괜찮은 삶을 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책을 읽는 것도 인센스를 태우는 것과 비슷한 이유에서인 것 같다.

책을 읽고 있으면,

책 한 권을 다 읽고 나면,

서점에 가서 스테디 셀러에 있는 책들 중 내가 읽은 책이 몇 권이나 되는지 세고 있으면,

꽤 괜찮은 삶을 살고 있는 기분이 든다.


책은 비극적인 내용의 책도 잘 보는데

이상하게 비극적인 영화는 잘 안 보게 된다.

글은 내가 장면을 그리면서 읽는 거라 어느 정도 편집이 가능하고 허구라는 느낌이 있는데

영상은 먼저 다 보여줘 버리니까 편집이 불가능하고 꼭 현실처럼 느껴져서 그런가?

지금 처음 생각해 본 거라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책은 구의 증명처럼 심하게 끔찍해도 곧잘 읽고 찾아 읽기도 하는데

영화는 누가 보자고 해서 보는 거 아니면

플립이나 어바웃타임처럼 잔잔하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영화들만 찾아 보게 되는 것 같다.

(근데 혼자 볼 때만 그렇지 같이 볼 때는 좀 더 극적인 영화들을 보는 게 좋은 것 같긴 하다)


3. 지나간 일에 대한 생각


일 년 하고도 한 달 반 정도가 지난 지금

요즘은 지나간 일에 대한 생각을 1도 안 한다..

후회나 반성은 커녕 과거 회상, 추억도 잘 안 한다.

그저 오늘 내일만 사는 대룡씨..

현재의 생활이 만족스럽고 미래에 대한 걱정이 없다는 뜻이다.

행복한 대룡씨. 호호 랄라 대룡씨.

최고심, 오둥이, 농담곰, 김대룡 렛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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