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여성들의 로망, 영화 <섹스앤더시티>(Sex and the city)의 주인공 캐리 브래드 쇼는 뉴욕 공립 도서관에서 결혼을 결심한다.
그녀가 도서관에 빠졌던 순간. @ iamnotaker The New York Public Library from “Sex and the City: The Movie”
완벽한 로망을 위해
화려한 패션과 감각적인 스타일로 시선을 잡아끌고 주도적으로 일과 사랑을 쟁취하는 드라마 속 인물들은 순식간에 전 세계 여성들의 워너비 스타가 되었다. 1998년 미국 HBO에서 처음 방영이 된 이래 2004년 시즌 6까지 제작되며 화제를 일으켰던 드라마 <섹스앤더시티>는 200여 개국에 방영되었으며, 그 인기에 힘입어 두 편의 영화로도 제작됐다. 특히 2008년 개봉한 영화의 첫 번째 시리즈는, 역대 로맨틱 코미디 가운데 최고의 오프닝 기록을 세웠으며 개봉 첫날 여성 관객의 비율이 85%로 여성들의 절대적 지지를 보여줬다.
뉴욕의 커리어우먼, 그녀들의 취향과 선택은 언제나 화제가 되었다. 일명 캐리 패션, 캐리 스타일을 만들어 낸 드라마의 패션 디자이너 패트리샤 필드는 2002년 에미 어워즈 의상상을 수상했고, 그녀들의 브런치 문화와 나이트 라이프 등은 뉴욕의 '섹스앤더시티 관광 코스'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시청자들이 <섹스앤더시티>를 사랑했던 가장 큰 이유는 드라마 속 인물들이 성장하는 과정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그녀들이 사회에서 치열하게 목표를 쟁취하는 모습을 응원했고, 쌓여가는 성취와 연륜과는 별개로 외롭고 불안한 연애에 동감했고, 그럼에도 사랑을 믿고 사랑하는 자신을 믿으려고 했던 모습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자신을 행복하게 해 줄 사람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복을 정의하고 부여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함께 성숙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 때 캐리를 꿈꿨다. 그 감성, 분위기, 사랑스러움, 곧 캐리스러움을. @indianexpress.com
이렇듯 작은 취향에서부터 인생의 가치관에 이르기까지 한 시대의 롤 모델이자 문화의 아이콘이 영화 속에서 도서관을 결혼식 장소로 선택하자, 해당 장소는 뜨거운 주목을 받으며 실제로 도서관 관계자는 영화 개봉 이후 결혼식장 대여에 대한 문의가 쇄도했음을 전하기도 했다. 캐리는 왜 결혼식의 로망을 실현할 수 있는 뉴욕의 수많은 호텔이 아닌 도서관을 선택했을까?
도서관, 위대하고 아름다운
보테가 베네타, 크리스찬 디올, 돌체앤가바나, 비비안 웨스트우드로 가득한 옷장. 그녀 말에 따르면 절대 배신할 리 없는 존재와 같은 '지미추', 프로포즈 선물로 받기를 꿈꿨던 '마놀로 블라닉'은 그녀에게 의미였다. 변하지 않는 것. 연인, 약속, 소망, 꿈. 그녀는 자신이 오랫동안 바라고 지켜가고 싶은 것들에 의미를 부여했다.
캐리가 꿈꿨던 변치 않는 존재와 특별한 의미를 상징할 수 있는 명품은 클래식, 곧 고전이다. 영원히 유행을 타지 않고, 시대를 뛰어 넘는 가치를 가진 것. 이러한 고전이 될 수 있는 장소로 도서관은 완벽하다. 모든 도서관은 역사적 배경이 있고, 뉴욕공립도서관 역시 123년의 역사와 92개의 분점, 셰익스피어의 첫 작품집과 제퍼슨의 독립 선언문 자필 원고를 비롯한 5천 만 권 이상의 도서·사본·악보·그림·지도·필름을 소장한 고전의 장소다. 이러한 곳에서 결혼식을 올리면 '영원히 변치 않을 이야기'가 될 것이라는 소망을 반영하듯, 뉴욕공립도서관은 2008년 뉴욕 웨딩 매거진이 선정한 ‘뉴욕 최고의 결혼식 장소’로 소개되기도 했다.
정말이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아, 뉴욕공립도서관.
극중 캐리는 '위대한 사랑이야기'로 둘러싸인 도서관에 대한 애정을 아낌없이 드러낸다. 보그 지를 비롯한 유명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는 캐리는, 글의 소재를 얻기 위해 도서관을 종종 찾는데 어느 날 ‘위인들의 연애편지(Love Letters From Great Men)’라는 책을 발견한다. 나폴레옹, 베토벤, 볼테르와 같은 영웅들의 러브레터를 묶어 낸 이야기책이다. 피아노 교습을 받기 위해 자신을 찾아온 테레제에게 첫 눈에 반했던 베토벤의 고백과 그래서 태어난 곡 '엘리제를 위하여'와 같은 아름다운 흐름은 캐리의 영감으로 고여 들고, 곧 그녀의 줄거리로 흘러간다. 아쉽게도 이 책은 영화 촬영을 위해 제작된 것으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책장을 넘기는 캐리와 그러한 모습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연인의 미소로 짐작할 수 있다. 책 속 문장이 현실의 역사를 적고 있다는 것을.
「저는 당신을 저만큼이나 사랑합니다. 지독히도. 그러나 충분하지는 않다는 것도 저는 알고 있습니다.」
루이스 콜레에게, 구스타브 플로베르.
「아무도, 가슴에 얼마나 많은 것이 담겨 있는지 알 수 없죠. 심지어 시인조차.」
스콧 피츠제럴드에게, 젤다 피츠제럴드.
클래식은 시간과 함께 더 아름다워진다.
결혼식을 올릴 수 있는 도서관들이 있다. 미국 최초의 무료 시립 도서관이자 책을 빌린 최초의 공립 도서관은 오늘 날 가장 평범한 이야기를 기념비적으로 기록한다. 보스턴 공립 도서관(Boston Public Library)은 중앙 도서관의 유서 깊은 애비룸(Abbey Room)에서 서약을 교환함으로써 생의 다음 장을 시작할 수 있도록 한다. 지난 가을에는 머킴 빌딩의 125 주년을 기념해 역사적인 장소에서 결혼식을 진행할 수 있도록 특별한 기회를 마련했다.
오션 사이드 도서관은 만화책에서 역사책에 이르기까지 모든 책들이 꽂힌 선반에 둘러싸여 결혼할 수 있는 서가를 제공하고, 뉴베리 도서관은 로마네스크 입구와 아르누보 샹들리에가 반짝이는 서재에 5만 권이 넘는 법률 서적이 진열된 공간을 개방한다. 리처드 닉슨 도서관은 남부 캘리포니아의 풍부한 역사를 드러내는 장소의 문을 열고, 암스트롱 브라우닝 도서관은 한 달에 한 번 토요일 오후에 결혼식을 진행하며 초대받은 하객들이 아름다운 정원을 거닐며 책을 펼칠 수 있도록 한다.
보스턴공립도서관에서의 결혼식 @월간국회도서관 7,8월호
국립중앙도서관도 매력적이다. 국제회의장에 웨딩 카페트가 펼쳐지고 피아노 선율이 흐른다. 게다가 세 시간을 기준으로 10만원이 되지 않는 대관료는 또 하나의 작은 선물이다.
역사를 역사적으로 만들어가는 것은 오늘이다. 도서관의 역사적 가치를 해석하고, 미래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오늘의 책, 대화, 이야기다. 도서관에서 책, 부부, 하객이 적는 기록은 결혼을 아름다운 고전으로 만들 수 있을까.
책들이 축하를 보내온다.
격려, 애정, 응원, 고백, 웃음...
페이지들이 박수를 치고 사랑의 낱말이 흩어져 내린다.
페이지의 박수소리
도서관 결혼식을 올리는 부부를 위한 선물로 두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분야의 책으로 배경을 만들어주는 것은 어떨까? SF, 역사, 시, 요리, 과학, 동화, 좋아하는 작가의 책으로 둘러싸인 꿈의 공간이 될 것이다.
부부가 서로의 삶에서 선정한 몇 권의 책을 특별하게 진열하는 것도 좋다. 하객들은 두 사람의 역사와 문화를 알아갈 수 있고, 부부 또한 서로를 위한 위로와 사랑의 표현을 깨달아 갈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 배경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는 것, 서로의 언어는 꽤 다르지만 배워갈 수 있다는 것, 우리가 다른 시대를 이해하듯 사람의 공감은 무한히 확장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서로가 서로에게 닿을 수 있는 깊이는 함께 정한다는 것, 생각을 읽고 대화로 기록하는 결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애정과 축하가 담긴 모든 말을 한장의 종이에 적을 수 있다면, 내 인생의 가장 사랑스러운 기록이 될 테니.
하객들에게 가장 좋아하는 인생의 문장을 방명록에 남겨달라고 하는 것도 좋다. 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어떤 문장은 서툴게 귀엽고 어떤 문장은 꽤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삶의 순간마다 떠오를지도 모른다. 결혼의 달콤한 여운이 지나고 긴 시간이 흘렀을 때 필요한 조언과 아이와 함께 살아가기 위한 방법을 위한 다정한 지침서가 되어줄 수 있을 테니까.
하객들이 앉은 테이블 위에 책 속 문장이 적힌 엽서를 올려놓는 것도 좋다. 엽서를 보내주고 싶은 사람의 주소를 적으면 대신 발송해주는 이벤트는 하객들을 위한 특별한 선물이 될 것이다. 오늘은 하객들에게도 소중한 날이다. 스스로에게도 좋고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좋다. 이 한 줄의 문장이 적어갈 아름다운 이야기를 어떻게 기대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야기로 가득 채워진 방을 꿈꾼다. 표지와 글씨와 색깔이 모두 다른, 편지같은 책들로.
1년 후, 결혼기념일에 그 해의 신간을 선물로 보내주는 것도 좋을 것이다. 두 사람이 좋아하는 분야의 책을 보내준다면, 서로의 취향을 새삼스럽게 깨달을 수 있을 테니까. 언제나 새로운 주제로 이야기가 계속해서 이어지는 것을 알아가면서, 새삼 서로를 궁금해 하고 이해하려고 한다면. 이 역시도 도서관 결혼을 기념하는 선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섹스앤더시티>의 도서관 결혼식은 안타깝게도 이뤄지지 못했다. 캐리의 연인 빅은 과거에 실패했던 결혼을 떠올리며, 캐리가 결혼식에 갖는 설렘과 환상에 복잡한 심경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점점 커져가는 결혼에 대한 부담과 압박을 극복하지 못하고, 결혼식 당일에 나타나기를 포기한다. 공립도서관의 고풍스러운 계단에서 화려한 드레스 자락을 흩날리며 뛰어 내려가던 캐리는 도서관을 끝내 비극적인 장소로 남겨야 했다.
하... 충격에 휴대폰을 떨어트리는 캐리... @indianexpress.com
시간이 흐른 후, 우연히 마주친 두 사람은 그날엔 말하지 못 한 진심을 털어놓는다.
결혼이 아닌 결혼식이라는 행사를 두려워했음을, 결혼보다 결혼식이라는 행사를 기대했음을.
빅은 캐리가 들려줬던 '위대한 연애편지'의 문장으로 다시 청혼한다. "오직 당신과 나, 오직 우리 둘."(Just you and me, just us two.) 서로가 꿈꾸는 환상이 아닌 둘이 함께하는 현실을 위해 살아갈 것을 약속한 그들은 결혼을 한다. 도서관이 아닌 시청사에서, 서로를 위한 서약으로 충분히 완벽한 결혼식으로 영화는 끝난다.
여기서 할 수 있었는데 (Aㅏ..빅 ..!) 너무 아름다워서(라는 이유로) 책을 읽을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결혼은 위대한 고전이 아니고 세기의 로맨스 소설도 아니다. 다만 평범한 수필이고 가끔은 드라마이다. 서로가 기대하는 이야기는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서로가 있기에 꽤 괜찮은 날들이 적힐 것이다. 위대한 역사를 품고서 평범한 오늘을 위해 존재하는 도서관처럼, 중요한 날을 위해서가 아니라 중요하지 않은 모든 날이 의미가 있어지는 것이 곧 결혼일 테니까.
캐리와 같은 시대를 살아 온 여성들은 여전히 그녀를 사랑한다. 뉴욕 캐리의 집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고, 그녀들이 즐겨 찾던 브런치 레스토랑과 컵케이크 가게를 찾으며 추억을 회상한다. 비록 그녀는 공공도서관에서 울면서 뛰쳐나갔지만, 지금도 뉴욕도서관은 영화 속 캐리의 결혼식 장소로 유명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사랑하는 연인과 서로의 문장을 적어갔던, 끝내 아름다운 이야기로 이어갔던 장소이기에.
Newyork Public Library
도서관. 역사를 역사적으로 만드는 곳. 모든 역사 속 인물이 꿈꾸었던 단 하나의 클래식이 가슴 속에 고인다. 어떤 영감이 피어날까. 위대한 시인조차 가늠할 수 없는 이야기는, 오직 단 하나의 인생으로 기록될 것이다. ‘Will you marry me?’ 평범한 문장이 아름다워 질 어느 날의 역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