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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앤나 Nov 30. 2020

리스본에서 오렌지를 달라고 하면 받는 것

말이 안 통해서 행복도 안 통했던 리스본

말이 안 통해서

행복도 안 통했던 리스본

리스본에서 오렌지를 달라고 하면 받는 것    



유럽의 서쪽 끝. 한국에서 가장 먼 유럽의 도시. 한 번에 가는 비행기가 없는 곳. 멀다는 것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떨어진 거리, 가는 데 걸리는 시간, 갈아타야 하는 몇 곳의 장소들. 어쩌면 이 모든 것들보다 그곳에 대한 한 장의 모습이 충분할지도 모른다. 나의 일상과 눈앞의 것이 얼마나 다른지 깨달을 때 새삼 아득해지지 않던가. 여행지도, 만나고 있는 사람도, 문득 어느 날의 나도.      


상상했던 것과 가장 다른 것이라면 생기가 넘친다는 것이다. 리스본이 포르투갈의 수도라고는 하지만, 다른 대도시의 복잡함에 비할 수 없을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도시의 분주함과는 또 다른 그들만의 생기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끼익- 멈춰서 1920년대로 주인공을 떨어트리고 갔던 영화 속 지프보다 훨씬 낡은 모양새로 멈추어 선 트램에서 내리자 도시의 온갖 소리가 들려왔다. 멀어지는 트램의 경적, 이름처럼 경쾌하게 언덕을 오르는 툭툭(TukTuk), 골목마다 울려 퍼지는 버스킹 연주와 넓고 은은하게 내려앉는 성당의 종소리가 필름처럼 감겨 나왔다. 그러나 흑백 영상 속의 시대가 흑백이 아니었듯이, 오래된 풍경은 조금씩 현실로 생생히 번져갔다.     


리스본의 골목에 섞여 들어가며 실감했다. 아주 먼 곳에 왔다는 것을. 나의 일상에서 가장 멀리까지 왔다는 것을. 그리고 또한 알게 됐다. 말이 통하지 않는 곳에서는 평소의 행복도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라란자, 햇살이 쏟아지는 이름     


익숙한 계절의 햇살이 낯설었다. 여름 햇살이라고 하면 멀리까지 퍼지며 구석구석을 환히 밝힌다고 할까. 공기에 퍼져 감도는 모습에 '눈이 부시다'라고 표현해오던 햇살은, 리스본에서는 구름처럼 내려앉았다. 어느 날 커다란 구름이 두둥실 내려앉듯 그래서 구름 한 점 없는 하늘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듯, 그렇게 난생처음 햇볕의 무게를 느끼며 걸었다. 뭣 모르고 드러낸 어깨와 다리, 그리고 걸을 때마다 드러나는 발등에도 여름이 내려앉았다.     


이른 오전 코메르시우 광장은 한산하다


그 무게감에 걸음이 느려질 때 쯤 코메르시우 광장에 도착했다. 바다로 착각할 만큼 드넓은 테주강과 맞닿아있는 광장은 리스본에서 가장 넓고 붐비는 곳이지만, 아직 한낮이 되지 않은 오전 시간이라서일까, 관광객 몇 명만 사진을 찍고 있는 드물게 한적한 풍경이다. 잔잔한 강변을 걸으며 눈에 띄는 스트라이프 천막의 카페로 들어섰다.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주인 아저씨에게 올라 Ola- 익숙치 않은 말을 자그맣게 내뱉고 싱그러운 과일들을 구경했다.      



여행의 첫날, 이 동네의 색깔을 빼닮은 오렌지주스를 주문했다. 얼음도 잔뜩 넣어달라는 부탁도 함께. 그러자 주인 아저씨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바라본다. 다시 천천히 오렌지주스를 말해보지만 돌아오는 건 나 역시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말. 아마도 단골인듯한 사람이 나에게 와서 무엇이 필요하냐고 물어서 -오렌지-를 발음해보지만 알아듣지 못한다.


그들은 서로를 마주 보더니 카운터 위에 있던 수북히 쌓인 자몽을 들어보이며 묻는다. "이거?" 아니,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당황한 내가 저기, 저 쪽.. 하며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오렌지가 있는 쪽으로 걸어가자 그들도 종종 걸음으로 나를 따라온다. 몇 발자국을 걸어가 손가락이 도착한 곳을 보고 나서야 "아! 라란자!" 라고 탄성을 내지른다. "라란자를 말하는구나! 이건 라란자야!" -라고 아마도- 설명을 하며 걱정말라며 금방 만들어주겠다고 -역시도 아마도- 하며 얼떨떨한 나를 향해 씩 웃어 보인다.     



어벙벙한 채로 있다가 스마트폰으로 '라란자'를 검색하자 laranja 오렌지. 밀감류라는 설명이 나오고 출처는 포르투갈어 사전이라고 적혀있다. 아, 뭐랄까. 세상에는 처음부터 이 단어로 불렸을 것 같은 것들이 있다. 새삼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굳이 번역하지 않아도 되는 말들. 이를테면 오렌지, 초콜릿, 펜 같은. 그런데 라란자라니. 처음 들어보는 이름을 가진 선명한 노란색 주스를 받아들고 그제야 실감했다. 먼 곳에 왔다고. 그러니까 오렌지라는 말이 통하지 않는 곳, 라란자의 마을에 왔다고.     


    

오렌지가 꼭 어느 마을에나 있을 것 같은 단어라면 라란자는 어떤 계절의 시작을 알리는 것만 같달까. 알파벳이든 한글로 쓰든 직선의 반듯한 모양새는 꼭 쏟아져 내리는 여름 햇살을 닮았으며 게다가 란-자 하고 과즙이 튈 것만 같은 발음마저도. 그래서 비슷해 보여도 정말이지 달랐다. 즐거움이라는 단어만 알고 있다가 기쁨이라는 단어를 알게 된 것처럼. 그러나 끝내 단어가 아니라 기분을 갖게 된 것처럼, 그렇게 카페를 나설 땐 모든 것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눈앞에 보이는 것마다 손으로 가리키며 묻고 싶어졌다. 광장을 메우기 시작하는 여행객과 그들의 손에 들린 카메라와 몇 권의 책, 문을 열기 시작하는 노천 카페와 테이블에 날아앉는 갈매기 무리의 그 '이름'을.     



엽서마다 등장하는 28번 노란색 트램, 노릇노릇 구워져 나온 에그타르트, 빛바랜 노란색 천막의 카페와 광장, 게다가 이 도시는 자두마저 노란색이다. 아마샤(Ameixa)라는 이름을 가진 자두는 조금 더 부드럽고 향긋하다. 새콤달콤 톡톡 튀는 자두보다 어쩐지, 정말로.     

  


아름다움, 그곳에서 바라보면 여기도 풍경이야.”     


언덕의 마을이라고 불리는 리스본은 골목을 거닐다 보면 끝에는 늘 전망대가 있다. 오르내리는 곳의 전망대는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유명한데, 풍경과 어우러지는 장소를 찾아다니는 것 또한 하나의 재미다.      


 

여행객들에게 가장 인기가 좋은 곳은 포르타스 두 솔 전망대 (Miradouro das Portas do Sol)다. 리스본의 유명한 명소를 지나다니는 28번 트램으로 갈 수 있는 곳이기도 하고 바로 아래 산타루지아 전망대도 들릴 수 있어서 다양한 전망을 쉽게 즐길 수 있다. 그 다음으로 인기가 좋은 곳은 상 조르제성 (Castelo de Sao Jorge)으로 리스본의 가장 높은 언덕 위에 위치해 있다. 오래된 성벽을 따라 걸으며 시시각각 변해가는 노을을 즐길 수 있는 명소다.      


처음엔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이 보이는지 중요했고, 그다음엔 내가 있는 곳이 풍경이 아름답기를 바라게 됐다.


리스본에서 머물었던 곳은 리스본 대학과 성 조세 의과 대학 근처의 18세기에 지어진 집으로 원래 오스트리아-헝가리 대사관이었다고 한다. 리스본에 오래 머무는 대학생이나 업무 관련으로 찾아온 직장인들이 많았는데, 동네의 식당 주인들도 영어를 잘 하는 편이어서 가벼운 대화를 나누기에 무리가 없었다. 그들은 종종 나에게 가볼 만한 식당과 미술관을 알려주거나 유용한 조언을 해주었는데, 가장 좋아하는 전망대를 물을 때면 입을 모아 한 곳을 말했다. 산타 카타리나 Santa Catarina. 내가 “어라, 그래 그, 산타 그 곳...! 지난 번에 리나도 거길 추천했었어. 그런데 구글에서 찾아보니 전망은 다른 곳들이 더 좋아보이던데...” 라고 갸웃거리며 이곳을 좋아하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냐고 묻자 그저 어깨를 으쓱인다. “글쎄, 그저 산타 카타리나가 좋은걸.”     



다른 명소들과는 조금 떨어져있는 산타 카타리나를 찾은 곳은 나중이었다. 그 뒤로도 몇 번 가긴 했지만 슬쩍 경치만 내다보고 지나쳤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문득 집으로 가다가 그곳이 생각나서 걸어갔다. 이렇게 사람이 많았었나, 낯선 활기를 느끼며 처음으로 계단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얼마쯤 지났을까. 다른 곳과 다른 이곳의 풍경이 점차 보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적극적으로 전망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없었다. 그래서 사진을 찍기 좋은 장소를 위한 눈치와 쟁탈이 없었고, 트램이 지날 때 마다 한 무리씩 나타났다 사라지는 관광객도 없었다. 이곳의 사람들은 어느 한 곳이 아닌 곳곳에 있었는데 대화를 나누거나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으면서, 머물렀다.      



지나칠 땐 보이지 않던 풍경은 은근한 재미와 뜻밖의 매력을 천천히 드러냈다. 아름다운 장면을 보기 위한 곳으로서 정말이지 충분했다. 서로의 등에 기대어 앉는, 음악이 나부끼는, 노을이 스며드는, 뺨이 물들어가는, 그리고 머무는 바람까지. 이곳이 좋아할 수 있는 이유는 많았다.      



무엇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엇을 보기 위해 머무는 장소를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것을 보는 장소에서 머무는 시간 또한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도. 동경하는 장소에는 없는 생기와 현실이, 여기에 있을 수 있다고.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 즐거워야 한다고. 행복할 수 있다고.


멈춰선 트램, 가고있는 시간.”          


리스본의 도로에서 신호등이 큰 의미가 있을까. 구불구불한 골목을 트램과 툭툭, 자동차와 사람, 강아지가 모두 한 번에 다닌다. 그래서 달리던 트램이 멈추는 일도 다반사다. 마음씨 좋은 운전 기사를 만나면 마주오는 트램을 먼저 보내기 위해 여러번 정차하기도 하고-반대라면 물론 씽씽 달려갈 수 있다- 좁은 골목의 맞은 편에서 달려오는 자동차로 멈춰서기도 하고, 때로는 옆에서 걷는 사람을 배려하며 느릿하게 움직이기도 한다.      


이 좁은 골목길에 트램과 수많은 것들이 함께 다닌다


처음에는 오도가도 못하는 트램에서 당황하며 창밖으로 고개를 쑥 내밀고 초조하게 상황을 살피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점차 익숙해졌다. 어쩌겠어, 가고 있는 중인걸. 이라고 할까.     



물론 운이 좋으면 굽이굽이 골목을 거침없이 달릴 수 있지만 그야말로 운이 좋을 때의 얘기다. 모든 것들이 함께 지나가니 먼저 보내주거나 기다려야 하는 때가 훨씬 더 많은 것이다. 포르투갈의 전통 타일인 아줄레주를 만들기로 한 날도 어김없이 늦었는데, 트램을 타고 가고 있다고 문자를 보내자 괜찮으니 걱정말라는 답장이 왔다. 어쩌면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멈췄다는 표현을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여하튼 가고 있는 중이며, 잠시 멈추었다고 해서 아주 멈춰선 것은 아니니까.      



계획과 달라지고 뜻대로 되지 않고 시간이 더 오래 걸리는 것도, 가고 있는 길이라고 여기면 달라질까. 가고 있는 길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될지도 모른다. 어쨌든 우리는 서로 같이 어딘가로 가는 중이니까. 도중의 배려와 뜻밖의 행운을 더 반갑게 나누게 될지도 모른다. 낡은 창가에 기댄 머리에 미세한 진동이 울린다. 트램이 다시 출발한다는 뜻이다.     


  

피쉬 나이프, 덜어내고 나눠주기 좋은 것.”     


포르투갈은 주방 용품과 식기 도구로 유명한 데 가장 널리 알려진 수공예 브랜드 큐티폴을 비롯해서 도자기 그릇으로 유명한 코스타노바, 그리고 흙으로 빚어진 발도솔과 같이 심플한 디자인이 담아내는 자연스러움이 매력이다. 그래서인지 거리에서도 심심치 않게 커트러리 가게를 볼 수 있는데, 평소에 알 던 것과 다른 쓰임새로 만들어진 도구를 둘러볼 수 있다.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피쉬 나이프로 생선 요리를 즐겨 먹는 지역에 어울리는 모습이다. 그 중 하나를 골라들고 찬찬히 살펴보자 가게 주인이 다가와 설명을 해준다. "날이 무디고 서 있지 않아서 나눠 주기에 좋답니다." 가느다란 모습으로 음식을 덜어내기 적당하고 나눠주기엔 더 좋다는, 그 피쉬 나이프를 사올 수 밖에 없었던 이유다. 무엇을 먹을까가 아니라 누구와 먹을까를 생각하게 했으니까. 같이 먹기 좋고 나눠 먹기 좋은 것들을 차려내고 싶다고 또한.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자주 쓰는 말들이 있다. 어떤 것이 낫다거나 부족하다고 하는 일반적인 기준도 있다. 그 기준과 다르면 결핍을 느끼고 막연한 갈망을 하기도 했다. 누구의 문제는 아니었다. 다만 어떤 환경에서 자주 말하게 되거나 표현하는 것들이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느리거나 빠르고 조용하거나 소란하거나 이맘 때 보이는 풍경이나 익숙한 시간에 들려오던 모든 소리가 완전히 달라진 곳에서, 나는 꽤 놀랐고 기꺼이 즐거워졌다.     



이곳이 더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이곳의 아름다움을 더 발견해가면서. 으레 행복이라고 여겨왔던 것을 갖고 있지 않고도 행복한 풍경에 물들어가고, 불편하다고 여겼던 것으로 아름다움을 채워가며. 오렌지와 전망대, 트램과 나이프. 겨우 이런 것들로 한 줄씩 행복의 예시가 늘어갔다. 한 칸씩 행복의 각도는 넓어졌다.      



나의 언어가 아닌, 세상의 언어로 말해보 

동경하는 현실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멈추는 시간도, 가고 있는 중이라고 믿어보고

날이 무디기에, 나눠주기 좋은 나이프를 사오며     


나는 어쩌면 세상의 끝이 아니라 내 마음의 끝에 닿고 싶었던 것이다. 이런 생각과 이런 표현과 이런 일상을 떠나, 그곳에 닿고 싶었다. 나와 닮은 행복이 아닌 나를 채울 행복이 노랗게 물들어갔다.     

 

노란색 자두, 달콤한 과즙이 흘러나온다


낯선 곳에서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그러나 알게 될 것이다. 말이 통하지 않으면 서로의 눈을 더 바라보게 된다는 것과 귀를 더 기울이게 된다는 것을. 모두의 말이 아닌 당신의 목소리로 기억하게 된다는 것을. 말을 시작하는 순간의 떨림과 끝난 후의 여운까지도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조금 더 알게 될지도 모른다. 사람의 말이 아닌 세상의 말이 있다는 것을. 빛과 온기와 강바람과 파도 소리가 귓가에 밀려들어 올 때 세상이 걸어오는 대화를 비로소 듣게 될 수도 있다고.     


말이 통하지 않아서       


행복도 통하지 않았던 그곳에선, 불행도 통하지 않았다.

그렇게 조금씩, 모든 것이 달라졌다.     


나와 닮은 행복이 아니라 나를 채울 행복이, 노랗게 물들어갔다.


하찮은 '버터 파는 여자의 바구니의 가장자리에 파슬리 한 조각이 걸려있는 것'을 보고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은 나만이 소유할 수 있는 아름다운 기억이 되는 것이다.

<여행의 기술> 알랭 드 보통     


 

그저 노란색이 조금 더 좋아졌을 뿐이다.


리스본, 미완성 여행에 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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