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상상을 찾아간 여행의 기록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역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게다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맥도날드까지. 어떤 마을이길래 이 모든 일상의 아름다움을 갖고 있는 걸까. 매일 걷는 길목과 들르는 모퉁이가 아름답다는 곳, 포르투(Porto)다.
포르투갈 이름이 기원이 된 포르투는 라틴어로 '항구'라는 뜻이다. 도우루강(Douro river) 마을 포트루는 맞닿아있던 대서양의 파도를 타고 광활한 세계로 흘러갔다. 바다 너머 새로운 풍경과 아름다운 정취가 돛에 실려 왔다. 세월이 흐르며 대항해시대로 불리던 전성기는 완전히 닻을 내렸지만, 수백 년에 걸쳐 축조된 역사는 강변에 고스란히 남겨졌다. 낯설고 이국적이며 감동적이었던 풍광은 건물과 길바닥 틈새, 어느 장식과 패턴, 그리고 인물에 얽힌 사연과 오래된 전설로 기록되었다. 어느 한 곳에 모아둔 것이 아니라 마을 전체에, 곳곳이 새겨진 까닭에 도우루 강변은 포르투 역사 지구(Historic Centre of Oporto)로 불리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었다. 이 작고 조용한 마을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식어를 몇 개나 갖고 있는 이유다. 그래서 포르투에서는 걸어야 한다. 거리의 풍경을 바라보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낄 때 비로소 그 아름다움과 마주할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렐루 서점 Livraria Lello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불리는 서점이다. 론리플래닛, BBC, 가디언, 타임즈를 비롯한 매체에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을 발표할 때면 몇 개의 손가락으로든 늘 꼽히는 곳이다. 포르투 대학가 근처인 카르멜리타스 거리(Rua das Carmelitas)에서 백여 년의 전통을 이어온 서점은 이미 명성이 자자하던 터였지만, 본격적인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건 조앤 K 롤링 덕분이다. 1991년 포르투에서 영어를 가르쳤던 조앤 K 롤링은, 영문 서적을 비롯해 세계 문학을 보유한 이곳을 자주 드나들었다고 한다. 특히 고풍스러운 서가와 독특한 나선형 계단에서 《해리 포터》 시리즈의 영감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보이지 않는 상상력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일까. 무려 4천 명. 하루 평균 수천 명의 여행객이 찾아오는 서점은 이제 세계적인 명소가 되었다.
영국 런던의 해리포터 스튜디오나 유니버설의 리조트의 해리포터 파크와 비할 수 없고 호그와트와 관련된 체험이나 이벤트도 없는 '서점'이 이토록 인기가 있는 이유는, 상상으로 만들어 낸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만들어 낸 무한한 상상이, 서점에 있다.
천장에서부터 휘감아 내려오는 나선형 계단을 두고 양 옆에서 이 층까지 올라가는 형형색색의 책들이 가득하게 들어찼다. 스테인글라스 창으로 들어오는 다채로운 빛은 오묘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입구에는 전 세계 해리포터 시리즈가 진열되어 있어 처음 보는 언어로 작품을 즐길 수도 있다. 무엇보다 공간을 가득 메우는 전 세계의 여행객들 덕분에, 들을 수 있는 가장 다양한 언어가 공존하는 서점은 현실감 넘치는 호그와트가 된다. 그리고 서점이 들려주는 오래된 이야기는 조금 더 재미있다.
"대화를 나누기 위한 카페“
서점의 역사는 180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렐루 형제는(Jose Lello, Antonio Lello) 출판사를 인수해 서점으로 개조했다. 1906년 공간을 확장해 문을 연 서점은 한 편에 테이블과 소파를 두어 카페 공간을 만들었다. 지금도 서점의 2층에서 오래된 테이블 몇 개를 찾아볼 수 있는 이유다. 서점은 금세 포르투를 대표하는 문학 살롱이 되었다. 정보의 중심이 책과 신문이던 시절이었다. 당시 유명했던 Guerra Junqueiro와 Júlio Brandão와 같은 작가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유명 인사가 모여들며 새로운 문화가 형성됐다. 대화와 교류를 위해 만들어진 곳에서 날마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작품을 감상하기 위한 미술관"
렐루 형제는 서점이 새로운 방식으로 지어지길 원했다. 이들은 정치가이자 공학도였던 프란시스쿠 하비에르 이스테비스(Francisco Xavier Esteves)에게 건축을 의뢰했다. 그 결과 당시로는 드물게 건물에 콘크리트를 입혀 화려한 색감으로 외관을 드러낼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유행하던 양식인 아르누보(Art Nouveau) 풍으로 설계됐는데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문양과 패턴은 꽃과 덩굴이 자연스럽게 얽힌 모습으로 서점의 천장, 벽면, 계단의 뒷면까지 장식됐다. 다양한 색감은 스테인글라스의 오색찬란한 창으로 들어오는 공기마저 은은히 수를 놓았다.
"영감이 떠오르는 시대의 복도"
서점의 정 중앙에 놓여 두 갈래로 뻗으며 천장을 휘감아 오르는 계단은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목재가 아닌 석회로 제작한 계단에 짙은 고동색을 칠한 덕분에 특유한 묵직함이 더해진다. 계단의 백미는 바닥으로, 붉은 카페트가 펼쳐진 듯한 광경은 연회장에 초대를 받은듯한 느낌을 준다.
2층에 오르면 손이 닿지 않는 높은 벽면에 가득 채워진 고서를 볼 수 있다. 페르난두 페소아, 에사 드 케이로즈의 초판본을 비롯한 세계적인 고서가 진열되어 있고, 그 아래로 시대를 풍미한 작가들의 조각되어 있다. 석고상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자면 덜컥 움직이며 말을 건네올 것만 같다. 한 시대의 배경에서 걸어 나온 작가와 눈이 마주친 순간, 소설의 첫 문장이 적힌다.
"여행지의 행운, 여행자의 추억"
서점에서는 책을 사기보다 공간을 여행하고 싶어진다. 오래전 책을 옮겼던 레일이 깔린 바닥을 따라 걸으며, 책장 안쪽으로 특별한 흔적을 발견할 수도 있다. 백여 년 전 서점의 직원들이 이곳을 찾아오는 손님들의 안부를 기원하며 손이 닿는, 그러나 보이지 않는 선반 안쪽에 복권을 붙여둔 것이다. 서점에서 손이 닿는 어느 곳에서든 뜻밖의 행운을 만지게 될지 모를 일이다.
서점에는 베스트셀러 코너 대신 행운의 책장이 있다. 렐루 형제들이 운 좋게 구할 수 있었다는 열세 권의 책은 1943년 미국에서 첫 출간된 어린왕자를 비롯해 피터팬, 정글북,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마담 보바리,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으로 행운의 책들, 일명 Lucky 13의 이름으로 보관이 되어있다. 서점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마음껏 즐기며 또 다른 영감을 찾을 수 있는 여행지가 되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점이 아름다운 마지막 이유는 여행자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오늘날 이 먼 곳의 서점을 찾아오는 이들의 가슴에는 숨겨둔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오래전 상상했던, 일어나기를 바랐던, 사실은 아직도 꿈꾸고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새로운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기어이 이곳에 찾아오고야 마는 것이 아니던가. 더 놀랍고 흥미로운 것이 넘쳐나는 시대에 책과 계단, 몇 가지 장식과 오래된 이야기뿐인 이 서점에. 고백하자면 나처럼, 아마도 당신 또한.
"내가 찾던 것은 모두 나에게 있었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상상하던 것은 상상하던 가슴에 있었다.
호그와트를 꿈꾸던 그녀는 아마 이곳에 자주, 오래 머물렀을 것이다. 천장을 휘감는 계단의 뒤 켠 깊숙한 곳에서, 거대한 기둥의 안쪽에서 오래전 이야기를 읽어냈을지도 모른다. 삶에서 새로운 것을 시도하지 않으면 특별한 일은 일어나지 않음을,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더 흥미로워 질 수 있음을, 사람을 마주 보며 다정한 관심을 보낼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임을, 무엇보다 가슴에 숨겨둔 이야기는 오늘의 문장으로 꺼내야 한다는, 서점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을까.
그리고 세상에 아름다운 것이 있다면, 아름답다고 말해주는 이로써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것 또한.
어떤 상상이든, 어떤 이야기이든.
상상이 완성된 공간이 아니라 상상을 꺼내길 바라는 공간, 사실은 나의 상상을 마주치게 되었던 서점의 문을 열고 포르투 거리로 나섰다. 도시가 숨겨놓은 나의 영감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 비로소 시작되었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은 모든 것을 얻는다. 그것이 내 안에 있는 한'
페르난도 페소아 <불안의 책>
보이지 않는 상상을 찾아간 여행의 기록, 서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