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앤나 Mar 31. 2022

북촌 한 켠, 거실이 생겼다

락고재 북촌빈관 더 리빙룸

북촌 가회동 한옥마을에 새로운 공간이 생겼다. 모든 사람을 귀하게 맞이한다는 의미를 담고 올 봄, 문을 열었다. 빛바랜 소품과 고풍스러운 가구, 들려오는 음악과 내놓는 차 한 잔에 정성이 담겨있다. 높은 안목을 다정히 드러내는 곳, '북촌빈관'이다


봄, 북촌마을



북촌 한옥마을에서는 꽃이 피기 전 봄을 볼 수 있다. 어느덧 바삭하게 마른 길, 옅게 풍겨오는 흙내음, 나뭇가지 위로 돋기 시작한 잎새, 골목으로 느슨히 감겨오는 봄바람, 오후의 볕이 늘어지면 바랜 빛을 띠는 기와. 돌과 흙으로 지어진 한옥은 계절의 일부로 피어난다. 시간을 머금고 풍경으로 뱉어내는 마을은 곳곳이 전부 봄이다. 마을이 꺼내놓는 그릇 하나, 그림 한 점, 내리는 차 한 잔이 머금고 있는 이야기는 자잘히 풍성하다. 그래서 느려지는 걸음으로 가회동 골목을 오르면, 이곳에 더없이 어울리는 공간을 만난다. 마을에 머무는 모든 사람이 편안히 쉬기를 바란다는 '북촌빈관' 그리고 ‘더 리빙룸’이라는 이름을 가진, 북촌의 거실이다. 






북촌빈관(北村賓館)은 서울시와 락고재가 함께 문을 연 곳이다. 지역주민과 방문객 모두가 쉴 수 있는 커뮤니티 라운지 ‘더 리빙룸’과 방문객을 위한 한옥 숙소로 구성되어 있다. 즐길 락(樂), 옛 고(古), 집 재(齋). ‘옛것을 누리는 맑고 편안한 마음이 절로 드는 곳’이라는 뜻의 락고재는 북촌과 안동의 상징적인 한옥으로, 130년 역사를 지닌 고택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한옥 호텔과 차와 음식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공간 등을 운영하고 있다. 한옥을 풍요롭게 경험하게 하며 문화 공간이자 공간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북촌빈관은 서울시가 한옥 보존 차원으로 매입한 공공한옥이다. 서울시는 해당 공간에 대한 ‘한옥 위탁운영 공모’를 진행했고, 락고재가 선정되었다. 여기서 특별한 점이라면 현존하고 있는 공간에 입주하는 것이 아닌 공간에 대한 기획과 설계 자문을 거치며 공간의 의미를 새로 만들어 냈다는 데 있다. 락고재는 기존 한옥의 형태는 최대한 보존해 공간을 고치며, 지대가 높은 지형의 특성을 살려 새롭게 1층 커뮤니티 라운지를 만들었다.


"마을은 아이들이 뛰어노는 생동감이 넘치는 곳이죠. ‘마을에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일까?’ 고민했고, 때마침 거실이라는 공간이 보였습니다."





북촌 한옥마을은 민속촌과는 달랐다. 말 그대로 삶이 있는 곳이었다. 살아가는 모습이 곧 ‘풍성한 이야기’가 되는 동네에는 특별한 작품이 아니라 그러한 일상의 동네를 바라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게다가 한옥이라는 특성상 집마다 마당과 거실이 충분히 크지 않다는 점도 고려했다. 그래서 거실을 만들기로 했다. 아이들이 뛰어놀고, 주민들이 머무르고, 손님들이 찾아오는 온 마을의 거실. 이름은 북촌빈관으로 지었다. 찾아오는 모든 사람을 귀하게 여기며 편하게 머무르길 바란다는 의미다. 기획에서부터 꼬박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건물 외관이나 인테리어, 안에 놓는 소품 하나까지 허투루 지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한옥이었기 때문이다. 한옥은 건물 자체가 아니라 그 속에 채워지는 것들을 통해 풍요로워진다. 그래서 먹는 음식과 나누는 대화, 공간을 채워갈 장면에 공을 들였다. 귀한 손님이 머무를 거실은 이렇게 완성되었다. 한옥의 경험이 추억 한 켠이 되길 바라는 단순한 진심으로. 


북촌 일대를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은 잠시 머무르는 것만으로는 볼 수 없다. 풍경은 정취로 펼쳐진다. 눈으로 시작해서 모든 감각으로 풍경을 느껴갈 때, 비로소 절경을 만날 수 있다. 이를 위해 북촌빈관은 명상 스테이와 티 하우스를 제공한다. 시간을 머금는 시간을 위함이다. 흐르는 시간과 풍경을 머금을 수 있다면, 그 기억으로 새로운 삶의 배경을 만들 수도 있을 테니까.





새로운 공간의 노련함 

북촌빈관 1층 커뮤니티라운지 '더 리빙룸'은 락고재가 처음 선보이는 현대식 공간이다. 지역주민과 방문객이 쉽게 오가고, 자주 머물게 될 수 있도록 기존 전통 한옥보다 친근하고 편안하게 구성했다. 새로운 공간은 의외로 오래된 풍미가 흐른다. 락고재는 오랜 경험으로 체득해온 한옥의 매력을 노련하게 베어냈다. 벽면을 가득히 채우는 세 쪽의 문은 화폭처럼 펼쳐지게 하고, 그 앞에는 한국 전통고가구와 색감이 어우러지는 패브릭 모듈 소파 캄포를 두었다. 센스는 연륜에서 나온다.


"한옥 안에 ‘전통’과 ‘현대’라는 가치가 공존할 수 있도록 했어요. 드러나는 모습이 아닌 추구하는 가치라면, 충분히 어울린다고 믿었죠.


전통과 현대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았다. 오래 살아남은 것은 오늘에 어우러지는 법을 알고, 새로운 시도에는 어제의 경험이 축적되어 있다. 이번 공간을 위해 신세계까사와 협력한 이유기도 하다. 공간에 대한 이해와 사람에 대한 애정을 담아온 신세계까사라면, 전통의 가치와 현대의 의미를 가구(家口)의 언어로 보여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렇게 북촌 마을의 활성화와 한옥 문화를 알리기 위한 협업을 하고, 북촌빈관 프로젝트의 마지막을 함께 완성해갔다. 북촌빈관의 1층 커뮤니티 라운지의 가구와 소품, 그리고 숙소 침구류를 까사미아의 가구로 배치했다. 빈관과 신세계까사는 서로의 안목으로 공간을 완성했다.





매일 수선하는, 변치 않음 

소중한 것은 대체로 오래된 것이다. 시간을 지켜냈다는 의미도 있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지켜온 사람들의 애정과 노력이 깃들었기 때문이다. 락고재는 소중한 것을 지켜가는데 탁월하다. 락고재의 또 다른 커뮤니티 공간인 락고재 컬쳐 라운지를 지으면서 성북동의 백 년이 넘은 나무를 공수해오기도 했다. 오래된 나무는 색감과 향기도 중후하지만, 고목의 틀어짐도 안정적이기 때문에 고급스러운 공간을 만드는 데 제격이다. 락고재를 채우고 있는 풍경은 작고 큰 노력이 깃들어 있다. 미닫이 손잡이는 긴 시간 손으로 다듬어온 노루 가죽이 보드랍게 감기고, 철문은 오랜 시간 장인이 두드려 만든 두터운 관록을 드러낸다. 그리고 락고재는 매일 손질과 수선을 한다. 오래 전에 만든 것, 만드는 데 오래 걸리는 것, 그리고 오래도록 지켜가는 정성을 한 데 모여있다. 변치 않는 모습을 위해서, 매일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한옥은 매일 손이 갑니다. 나무로 지으니 세월의 변화가 눈에 보이고, 재료도 친환경이다 보니 쉽게 닳는 편이죠. 그래서 일 년에 한 번씩 대대적인 보수를 하고 있어요. 고풍스럽지만 낡아 보이지는 않아야 하니까요.“





끝내, 공간이 향하는 의도  

락고재가 생각하는 좋은 공간이란 무엇일까. 락고재 안지원 부사장은 만든 사람의 의도와 진심이 있는 곳이라고 말한다. 공간을 만든 사람의 의도를 이해하고 가치에 공감한다면, 여느 불편함도 기꺼이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한옥은 애초부터 경험을 위한 공간이다. 애써 느끼지 않아도 되는 무소음, 무감각의 시대에 수고로운 경험을 하게 하는 것. 북촌빈관이 생긴 이유이기도 하다. 오래된 진심은 여러 밤을 보내고, 계절이 바뀌어야 비로소 알게 될 것이다. 그렇게 여전히 뜻 밖의 감동을 느낄 때, 공간의 의도에 마침내 공감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낡을수록 운치있고, 손 떼로 정겨워지고, 바랠수록 고풍스러워지는 것들이 있다. 북촌의 거실, 모든 사람을 귀하게 반기는 곳. 북촌빈관의 의도는 순간이 아닌 여정으로 드러날 것이다.



햇살이 쏟아지는 시간



                                                                                        본 칼럼은 신세계굳닷컴에 발행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있잖아요, 프라하는 정말 별로였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