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인간은 쓸모없다

그 모순이 인간이다.

by 유앤나
우리는 이미 쓸모없는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대식 교수와 김혜연 안무가의 대화가 인상적이었다.

코로나를 거치며 회사는 직원들이 출근하지 않아도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어쩌면 이미 ‘쓸모없는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였다.



그럴 수 있다.

회사 일을 떠올려보면, 필요 없어 보이거나 중요도가 낮은 업무는 쉽게 눈에 띈다.

그렇다면 질문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우리 회사의 열 가지 목표는 과연 이 사회에 꼭 필요한가.

다른 회사들의 목표와 비교했을 때 얼마나 중요한가.



더 나아가 내 삶의 목표는 어떤가.

나는 이 세상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존재인가.

내가 있음으로써 세상은 얼마나 나아지는가.

애초에 ‘필요한 일’과 ‘불필요한 일’은 그렇게 명확하게 구분될 수 있을까.

시대에 따라, 관계에 따라, 상황에 따라 그 경계는 끊임없이 흔들린다.

마치 선로를 달리는 기차가 네 명과 한 명 중 누구를 선택해야 하는지 묻는 문제처럼,

답보다 질문이 먼저 남는 난제에 가깝다.



인간은 의미를 만들고, 지우고,

주장하고, 설득되고,

이해하고,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우선은 합의하며 살아간다.



그런 점에서 AI와 비교해 인간의 쓸모를 논하는 일은,

이미 답이 나와 있는 질문처럼 느껴진다.

인간의 사명은 인간의 가치를 주장하는 일이고,

그것은 능력의 우열이 아니라 존재의 이유에 관한 문제다.

그래서 우리는 한편으로는 최대한의 능력을 추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최소한의 이유로 그 능력의 의미를 없애고 다시 만들어낸다.



AI의 최고치를 찍고,

다시 그것을 파괴해버릴 수 있는 존재.



그런 점에서 인간은 특이한 존재다.

AI는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을까.

놀랍도록, 어마어마하게.

그렇다면 인간은 대체될까.

아마도 ‘역할’은 바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나’라는 존재가 대체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나를 완벽히 이해하는 AI가 나올 수 있을까.

문제는 얼마나 닮았느냐가 아니라,

그것이 결국 내가 아니라는 점이다.



수많은 이유가 있어도 단 하나의 이유로 다른 선택을 해버리는 존재,

사랑에 대한 정의가 수천 개여도 스스로 답하지 못하는 존재.



그것이 인간이다.

얼마나 놀라운가.

얼마나 가여운가.

그리고 얼마나 아무렇지 않은가.



AI 시대, 인간은 쓸모없다.

어쩌면 원래부터 그랬다.

그래서 의미를 창조하려 애쓰며 살아가는 존재라면,

그 모순 자체가 인간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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