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높고, 가장 달콤하고, 가장 아름다운 순간들을 아는 사람에게
평범한 동네는 없다
가장 높고, 가장 달콤하고, 가장 아름다운 순간들을 아는 사람에게
나는 압니다. 4월이 되면 연두빛으로 변하는 거리를. 누군가 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든 초록잎이 그렇게 변하지 않나요?"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비 온 뒤 걸어보세요. 어떤 나뭇잎은 송글송글 물방울이 맺히고, 또 어떤 잎은 물을 흡수해버립니다. 어떤 잎은 물을 넓게 담아 작은 호수처럼 빛나고, 어떤 잎은 물방울을 구슬처럼 굴려 떨어뜨립니다. 노을빛으로 물드는 잎이 있고, 아침 햇살처럼 투명하게 빛나는 잎이 있습니다. 같은 나무인데도요.
그리고 또 알죠. 해질녘 어느 골목은 노을빛 카페트가 깔린다는 것을. 건물과 건물 사이로 비스듬히 들어오는 석양이 골목 전체를 주황빛으로 물들이는 시간. 그 시간은 정확히 6시 20분에서 6시 40분 사이, 딱 20분입니다. 그래서 그 골목을 꼭 해질녘에 걷습니다. 일부러 그 시간에 맞춰 나갑니다. 그 20분을 위해서요.
생각해보면 여행지라는 곳이 다 그렇죠. 꼭 가야 하는 계절이 있고, 가기 좋은 때가 있습니다. 여름 바다와 겨울 바다가 다르고, 봄의 제주와 가을의 제주가 다릅니다. 그 절은 단풍 들 때 가야 하고, 그 산은 진달래 필 때 가야 하고, 그 공원은 벚꽃 축제 때 가야 하고, 그 강변은 억새 흔들릴 때 가야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 해를 기다리고, 표를 예매하고, 일정을 맞춰 떠납니다.
모든 장소는 장소 자체가 아니라 계절과 시간이 투영되어야 합니다. 장소는 언제 가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얼굴을 보여주니까요.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모든 장소는 여행지가 될 수 있다고. 시간과 계절, 날씨와 빛이 더해지면요.
우리가 사는 동네도 같지요. 언제 가느냐, 누구와 가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지는, 그리고 반드시 그런 최고의 순간이 있는 여행지. 다만 우리가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그러니 물어보세요.
이 동네에서 가장 높은 곳에 서면 무엇이 보일까요?
우리 동네 뒷산 정상에 서면 새벽안개가 골목 사이로 흐르는 모습이 보인다는 것을. 마치 구름 위에 떠 있는 마을 같습니다. 하지만 그건 새벽 6시에만 볼 수 있습니다. 해가 뜨면 안개가 걷히니까요.
누군가 이곳에서 프로포즈를 한다면, 어디가 좋을까요? 공원 안쪽 벤치, 그 뒤로 벚나무가 있는 곳. 4월 첫째 주 저녁 7시쯤이면 가로등 불빛에 꽃잎이 눈처럼 흩날립니다. 그보다 더 로맨틱한 순간이 있을까, 볼 때 마다 눈을 꼭 감게 된답니다.
아침 해가 가장 먼저 닿는 벽은 어디일까요? 빵집 외벽입니다. 크림색 타일 벽이 새벽 6시 반이 되면 황금빛으로 물듭니다. 그 순간 빵 굽는 냄새가 거리로 퍼져 나옵니다. 빛과 냄새가 함께 오는 순간. 가장 기분좋은 아침을 갖게 되죠.
동네에서 가장 달콤한 냄새가 나는 곳은요? 골목 안쪽 작은 카페입니다. 오후 3시쯤 되면 바닐라 향이 골목 전체를 감쌉니다. 주인이 그때 쿠키를 굽거든요. 저는 지나가다가도 그 냄새를 맡으면 발걸음을 멈춥니다. 깊이 숨을 들이쉽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달콤하니까요.
이곳들을 안다면, 어떻게
이 동네가 평범해질 수 있을까요.
초대하고 싶어집니다. "4월 첫째 주에 꼭 와. 그때 봐야 해." 보여주고 싶어집니다. "해질녘에 같이 그 골목 걸어보자." 알려주고 싶어집니다. "새벽에 나가봐. 완전히 다른 동네야." 하지만 또 같이 가고 싶어집니다. 혼자 보기 아까우니까요. 그래서 기다리게 됩니다. 약속하게 됩니다. "다음 주 토요일 저녁 6시 20분에 만나자. 딱 그 시간." 마치 먼 여행지를 계획하듯이요.
어떻게 평범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평범하다는 건 어쩌면, 모른다는 뜻일 겁니다.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는 뜻도 되겠죠. 눈여겨보지 않았다는 고백도 될겁니다. 이렇게 알고 나면, 평범한 곳은 사라집니다. 대신 특별한 장소들이 나타납니다. 4월에 가야 하는 그 거리, 해질녘에 걸어야 하는 그 골목, 새벽에 올라가야 하는 그 산, 비 온 뒤에 봐야 하는 그 나무.
알고 있겠죠. 당신의 동네에도 있는 여행지. 지금 하나 둘 떠오르는 곳들이죠.
가장 높은 곳, 가장 달콤한 곳, 가장 아름다운 순간. 그것들을 찾아보세요. 시간을 달리해서 걸어보세요. 아침, 점심, 저녁, 밤. 봄, 여름, 가을, 겨울. 비 오는 날, 눈 오는 날, 바람 부는 날, 햇살 좋은 날. 같은 길이지만 매번 다를 겁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알게 될 겁니다. "아, 이 순간이구나."
여기가 여행지구나, 지금이 여행이구나.
그러면 동네는 여행지가 됩니다. 당장 오늘 떠날 수 있는, 누군가를 초대하고 싶은, 함께 가고 싶은, 혼자 가기엔 아까운, 기다려야 하는, 계절을 맞춰야 하는, 시간을 약속해야 하는, 그런 여행지.
평범한 동네란 없답니다. 어느 여행중인가요?
언제를 기다리고 있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