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엽고 귀찮은 포케무치카를 기다리며
가끔은 말도 백화점의 진열대 위에 놓인 소품들 같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기분이 우울한 날엔 산뜻한 오렌지빛 감탄사를 장바구니에 담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밤엔 세심하게 세공된 사과-의 문장을 골라 내 안에 채워 넣고 싶어지거든요. 내가 가진 빈약한 어휘의 창고를 열어볼 때마다, 타인에게 줄 선물이 마땅치 않아 빈손으로 돌아 나오는 민망함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광활한 우주 속에서 우리 삶의 작은 의식들을 기록하듯 우리만의 '말-바구니'를 가져보면 어떨까요?
여기, 세상 곳곳의 단어 진열대에서 골라온 낯설지만 다정한 말들을 소개합니다.
1. 조용히 떠나는 소풍
가장 먼저 쇼핑 카트에 담고 싶은 말은 독일어의 '발트아인잠카이트(Waldeinsamkeit)' 입니다. 숲속에 혼자 있을 때 느끼는 그 고요하고도 숭고한 고립을 뜻하죠. 도시의 소음에 지친 퇴근길, 이 단어를 꺼내어 입안에 머금어 봅니다. 혼자라는 것이 '외로움(Loneliness)'이 아니라, 숲의 평온을 닮은 '고독(Solitude)'이 되는 소풍같은 순간이 될 거에요.
일본어에는 '코모레비(木漏れ日)'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나뭇잎 사이로 비쳐 내리는 햇살을 뜻하죠. 이른 봄이 오면, "이제 봄 날씨네- 햇살이 좋다"라고 말하는 대신, "봄이 왔어. 올 봄에는 코모레비같은 순간들이 생길거야"라고 메시지를 보내는 건 어떨까요? 보이지 않는 빛의 무늬를 '보게 하는' 하루를 발견하게 해 줄거에요. 음, 퍼펙트데이즈 영화를 본 친구에게라면 더 좋을지도요.
2. 작고 귀여운 위로
가끔은 혼자서 "힘내자"라고 적기도 합니다. 일기장이든, 마음속이든요. 그럴 땐 아이슬란드어의 '페타 레다스트(Þetta reddast)'를 적고 싶습니다. "결국 모든 게, 다 괜찮아질 거야"라는 뜻의 이 말은, 아이슬란드의 척박한 자연 속에서 태어난 낙천적인 주문입니다. 근거 없는 낙관이 아니라, 수많은 폭풍을 견뎌온 사람들이 서로에게 건네는 단단한 신뢰의 문장이죠.
러시아어에는 '포케무치카(Pochemuchka)'라는 귀여운 단어가 있습니다. 질문이 너무 많아 끝도 없이 "왜?"라고 묻는 사람을 뜻하죠. "왜? 왜? 왜?"를 끊임없이 묻는 사람이 있다면, 속으로 포케무치카니까 라고 해보세요. 원래 '그런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있다는걸 알게 되는것만으로도 납득이 될 때가 있다니까요. 게다가 발음도 귀여운 욕(?)같아서 마음에 들죠.
3. 미처 몰랐던 '함께'의 의미
우주적인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모두 별의 먼지로 이루어진 하찮고 그래서 귀하다는 말처럼, 반투어권의 '우분투(Ubuntu)'라는 말은 언제나 뭉클합니다. "당신이 있기에 내가 있다"는 뜻이죠. 장바구니 아니 말바구니 가장 깊은 곳에 이 단어를 넣어두고 싶습니다. 내가 잘나서 서 있는 게 아니라, 수많은 이들의 '우분투'가 나를 지탱하고 있음을 잊지 않기 위해서요.
말을 배운다는 건,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창문을 하나씩 더 늘려가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어라 여기 노을이 있구나, 저 멀리 구름이 있네, 오호라 그 아래 사람이 있잖아. 그렇게 한명씩, 하나씩, 끝없이.
오늘 당신의 말바구니에는 어떤 말들이 담겨 있나요? 혹시 마땅한 말이 없어 고민 중이라면, 여기 몇 개가 있답니다. 오늘 저녁 식탁에 꺼내도 좋고 언젠가를 위해 냉장고에 넣어놔도 좋아요.
Lagom (스웨덴어, 라곰) - 딱 적당한, 너무 많지도 적지도 않은. "너 그 정도면 lagom이야, 딱 좋아"
Verschlimmbessern (독일어) - 고치려다 더 망치는 것. "내가 또 verschlimmbessern 했네..."
Mamihlapinatapai (야간어) - 둘 다 원하지만 아무도 먼저 행동하지 않는 그 미묘한 순간을 말하는데요. 서로 같이 원하지만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는, 그 팽팽하고 침묵에 가까운 눈치 싸움을 완벽하게 묘사하죠. 세계에서 가장 뜻이 긴 단어로 기네스북 등재되어 있답니다.
Kilig (타갈로그어, 킬리그) - 설레서 배에 나비가 날아다니는 그 느낌! 짝사랑할 때 그 떨림. 2016년에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도 등재될 만큼 상징적인 감정 단어랍니다.
Sobremesa (스페인어) - 식사 후 테이블에 앉아서 수다 떠는 그 여유로운 시간을 말하는데요. 밥만 먹고 일어서지 말자는 뜻이 담겨있죠.
Gökotta (스웨덴어) - 새벽에 새소리 들으러 일찍 일어나는 것. 제가 좋아하는 단어랍니다.
Mbuki-mvuki (반투어) - 기쁨에 겨워 옷을 벗고 춤추는 것. 아, 옷을 벗는 것은 물리적인 노출이라기보다 억눌렀던 사회적 체면이나 제약을 다 벗어던지고 순수한 기쁨 속에 몰입한다는 뜻이라고 해요!
이런 말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대화의 주제가 달라질 수 있으니니까요.
음, 제가 오늘 밤 되뇌고 싶은 말은
이제 쯔도쿠 좀 없애야지 입니다.
Tsundoku (일본어, 쯔도쿠) - 책을 사놓고 안 읽고 쌓아두는 것. 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