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과 거리감에 관해
만약 우리 동네에 고양이가 온다면,
가장 좋아할 장소는 어디일까요?
고양이를 잘 관찰해보면, 그들은 장소를 선택하는 기준이 아주 명확합니다.
햇빛은 필요하지만 너무 뜨거워서는 안 되고, 사람은 가까워도 되지만 지나치게 친근해서는 안 됩니다. 등 뒤에는 언제든 숨을 수 있는 풀이나 벽이 있어야 하고, 앞에는 세상을 관찰할 시야가 열려 있어야 하죠.
그들은 ‘안전하게 노출된 장소’를 좋아하죠. 완전히 숨지 않으면서도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곳. 말하자면 세상과의 적당한 거리입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도 그렇지요. 사람 사이에 있으면서도 잠깐은 혼자일 수 있는 자리,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면 웃어줄 수는 있지만 굳이 말을 걸지는 않아도 되는 곳. 볕이 따뜻하고, 벤치는 조금 낡았지만 편안한 곳.
고양이의 지도는
사람의 지도와 다를거에요.
우리들은 지하철역과 큰길을 중심으로 길을 기억하지만, 고양이는 햇빛이 드는 시간과 담장 높이로 동네를 읽을겁니다. 우리에겐 아무 의미 없는 벽 위가 고양이에게는 고속도로이고, 오래된 화분 사이는 비밀 통로가 됩니다.
비 오는 날에도 젖지 않는 처마 아래,
오후 세 시쯤 가장 따뜻해지는 돌계단.
사람의 눈에는 그냥 지나치는 공간이지만,
고양이에게는 지도 위 별표죠.
가끔은 이렇게 걸어보면 어떨까요.
“내가 고양이라면 어디서 멈췄울까?”
어디로 가야 할지 생각하지 말고,
어디서 멈추고 싶어지는지
생각하면 조금 달라집니다.
걸음이 느려지고,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많아지죠.
빛이 벽 위에서 미끄러지는 방식, 누군가 오래 앉았다 간 벤치의 온도 같은 것들요.
고양이처럼 생각하면 알게되죠.
모두와 친해질 필요는 없고,
필요할 때만 다가가도 되고,
가끔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는 것.
햇빛 아래 가만히 있는 시간은 게으름이 아니라 회복이라는 것.
사람들은 이걸 적당한 관계 유지나 거리를 두는 법으로 말하겠지만, 고양이에게는 그냥 평범한 오후일 뿐이겠지요.
음...그런데
고양이가 아니라 강아지라면?
볕 좋은 벤치?
앉아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누군가 지나가니까요. 일단 가서 인사해야 합니다.
적당한 거리?
그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고, 최대한 가까워지는 게 좋습니다.
숨을 수 있는 풀숲?
숨기는커녕 신나서 뛰어들었다가 잔뜩 흙을 묻히고 나옵니다.
고양이가 눈을 가늘게 뜨며 “오늘 햇빛 좋군…” 하고 있는 동안, 강아지는 이미 세 명과 친구가 되었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행복해서 계속 뛰고 있을 겁니다.
가끔 이런 상상도 해봅니다. 만약 도시 설계를 고양이에게 맡긴다면 어떻게 될까요. 횡단보도는 훨씬 느리게 바뀔 것이고, 벤치는 모두 햇빛의 각도를 계산해 배치될 겁니다. “이 시간대엔 여기 앉으세요”라는 안내판 대신, 그냥 가장 따뜻한 곳에 털 한 올 남아 있겠지요.
반대로 강아지가 도시를 설계한다면 아마 모든 골목이 서로 연결돼 있을 겁니다. 막다른 길은 존재하지 않고, 낯선 사람에게 인사하기 쉬운 동선이 중요해질 테니까요. 인간은 효율을 위해 도시를 만들었지만, 동물들은 아마 기분을 위해 도시를 설계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우리는 양 쪽 모두를 오가죠.
투두리스트와 알람을 붙들고 살면서도, 마음 한구석엔 햇빛이 좋은 자리에서 이유 없이 오래 머물고 싶은 고양이가 있죠. 카페에선 벽을 등지고 앉고 구석진 자리를 찾으면서도 문득 어떤 사람에게 말을 걸어보고 싶어지는 강아지도 살고 있으니까요.
어떤 날은 고양이처럼 걷고,
어떤 날은 강아지처럼 뛰어도 괜찮겠지요.
우리는 늘 한 가지 방식으로만 살아야 하는 건 아니니까요.
햇빛 아래 조용히 앉아 세상을 바라보는 날도 필요하고, 이유 없이 꼬리를 흔들며 달려가고 싶은 날도 있지요. 그저 하루씩 바꿔가며 동네를 걸으면 의외의 곳들을 발견할 수 있겠죠? 뜻밖의 친구들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