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만금을 준대도 안바꿀 기억이 있나요?

고작 머리땋은 일을 비싸게 기억하는 이유

by 유앤나



얼마 전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고향에 아주 오랜만에 돌아온 옆집 아주머니를 만났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몇십 년 만에요. 엄마는 제가 그분을 기억한다고 하자 놀라셨죠. 어떻게 아느냐고요. 제가 대여섯 살 때 잠깐 사셨던 분이라고요.



옆에서 그분도 "나를 기억한다고?" 하시며 놀라셨죠. 그래서 전화기 너머로 그분과 인사를 나누게 됐는데요. "세상에, 나를 어떻게 아니?" 물으셔서 대답했죠. "제 머리를 땋아주셨는데, 그게 너무 아름다웠던 기억이 있어요." 그분은 놀라시며 물으셨습니다. "그걸... 기억하니?" 저는 대답했습니다. "네! 그 어린 제가 느끼기에도 너무너무 아름다워서 기억해요."


그분은 감탄을 하시고는 말씀하셨죠. "아 정말이지 억만금을 준대도 바꾸기 싫을만큼 고마운 말이구나."



전화를 끊은 뒤에도 그 말이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억만금을 준대도. 알고 보니 그분은 평생 한복과 소품을 만드셨다고요. 머리를 땋아주시던 그 손으로, 아름다운 것들을 만들어오셨던 겁니다. 그리고 제가 기억한 건, 그분의 작품 중 하나였던 거죠. 대여섯 살 어린아이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이름 없는 작품.



우리는 무엇을 기억할까요?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무엇을 기억해주기를 바랄까요?



우리는 인정받고자 합니다. 그래서 성공하고자 하고, 그렇게 기억되고자 합니다. 승진, 상, 명성, 부. 우리는 이것들을 통해 우리가 가치 있는 사람이었다는 증거를 남기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열심히 일하고, 경쟁하고, 성취합니다. 하지만 정작 우리가 기억하는 건 무엇일까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당신이 겪어온 모든 일, 당신이 살아남은 모든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당신 삶의 이야기는 끝났고, 당신의 사명은 완수되었습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끝났을 때, 무엇이 중요한지 묻죠.


무엇이 중요한가? 무엇을 자랑스러워해야 할까? 분명 쾌락이나 성취는 아니라고 그는 말합니다. 그는 자신이 유혹을 이겨내고 영예를 거절한 것을 특별히 칭찬합니다. 대신 그는 다른 기준을 제시합니다. [당신은 얼마나 많은 불친절한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었습니까]


로마 황제가, 역사상 가장 강력한 권력을 가진 사람 중 하나가, 자신의 삶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선택한 것은 친절이었습니다. 전쟁에서 거둔 승리도, 확장한 영토도, 쌓아올린 재산도 아닌, 친절.


친절이란 대체 무엇일까요?기본적인 설명으로는 서로를 돌보며 가진 것을 베푸는 일이죠. 인간은 혼자는 살 수 없고, 그건 생존을 위한 방법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저는 친절이란 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살게 하고 싶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공허하고, 우울하고, 비참하고, 외로울 때 웃게 만드는 것. 그래서 더 살게 하고 싶어지는 것. 사는게 아니라 살고 싶어 지도록.


서로가 베푼 친절 중에, 무엇과도 바꾸기 싫은 기억이 된 것을 떠올려 보세요. 그날, 내 이름을 먼저 불러준 것, 고맙다고 말한 것, 내내 곁을 지켜준 것, 내 실력에 감탄해준 것, 내 수줍은 면을 알아봐준 것. 힘들 때 연락한 것, 진심으로 축하해준 것, 슬퍼하며 위로해준 것. 이 모든 작은 것들이, 얼마나의 가치가 되었을까요. 그 때 매 순간, 그리고 아직도 여전히.


"그때 그거 기억해요. 정말 고마웠어요."

"당신이 그렇게 해줘서 제가 견딜 수 있었어요."

"아직도 생각나요. 그게 저한테는 정말 큰 힘이었어요."


그러니 오늘 누군가에게 부디 친절해 지기로 해요. 건네기로 해요. 나 그거 기억해- 로 시작해도 좋습니다. 당신이 존재했다는 것을, 아름다운 일을 했다는 것을, 그래서 의미가 되었다는 것을, 기억해주는 것.



기억은 하는 게 아니라 해주는 것,
그때 비로소 잊혀지던 것이
되살아나죠.



20211022_202348.jpg?type=w1 그랜마도넛이 맛있던 단골가게. 오래 기억해야지.



그리고 오늘, 누군가에게 억만금을 하나 더 만들어주세요. 아주 작은 친절로요. 네, 통장에는 기록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마음속에는, 몇십 년 동안 남을지도 모릅니다. 억만금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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