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와 시간 사이, 길을 잃었나요?

시계에 집중할수록 시간은 흩어져버리지

by 유앤나



시간은 무게로 쌓인다
그것도 아주 불공평하게
어떤 하루는 깃털처럼 가볍게,
어떤 한 시간은 바위처럼 무겁게...
남는다



한 해가 끝나간다고 말할 때, 우리는 무엇을 정말로 아쉬워하는 걸까. 입 밖으로는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갔다"고 말하며, 손은 스마트폰 화면을 후루룩 넘기며 남은 날짜도 함께 넘겨버린다. 달력의 마지막 장을 훑고, 일정표는 빠르게 스크롤하고, 지인들과 '얼마 남지 않은' 올해의 요일을 맞춰가며 약속을 잡는다. 시간을 잡으려는 마음으로 시계를 응시하고 남은 시간을 계산한다. 아이러니하다. 시계에 집중할수록 정작 시간은 손가락 사이로 더 빠르게 빠져나간다.


무엇이 다를까. 그러니까 시계와 시간 말이다. 시계는 직선으로 움직인다. 1초가 지나면 다음 칸으로 여지없이 넘어간다. 시계는 공평하고 정확하며,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속도로 흐른다. 하지만 시간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다. 한없이 늘어나기도 하고, 갑자기 확 줄어들기도 한다. 그리고 때로는 얼어붙은 채로 한동안 멈춰선다. 어린 시절의 여름방학은 끝없이 길었고, 어떤 소식을 기다리던 5분은 영원 같았으며, 사랑이 찾아오던 순간은 찰나에 지나갔다.


그래서일까. 연말이면 이 두 가지를 다시 구분하려 한다. 시계의 시간과, 내 안의 시간. 명확한 줄과 칸으로 일정표를 정리하면서도, 마음 한쪽에선 어떤 순간들이 겹쳐져 올해가 되었는지 되짚어본다. 달력에는 없는 날들을 떠올린다.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던 목소리, 식탁 위에 잠시 머문 겨울빛, 손끝에서 전해지던 온기. 어느새 올해가 된 것들, 앞으로도 2025년으로 떠오를 것들.


그리고 문득, 질문들이 찾아온다.

올해 가장 오래 머물고 싶었던 10초는 언제였을까?

시계는 똑같이 흘렀지만, 그 안에서 시간이 멈춘 것 같았던.

올해 내가 가장 온전히 '거기 있었던' 순간은? 다른 곳을 생각하지 않고, 오롯이 그 자리에 머물렀던.

누군가에게 시간을 내어준 것 중 가장 아깝지 않았던 시간은? 내 시간이 누군가의 시간이 되었던.

연말이 되어서야 비로소 이해하게 된 순간이 있다면? 그때는 몰랐지만, 지나고 보니 중요했던.






어쩌면 우리는 시간을 잘못 보아왔는지도 모른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우리가 시간 속을 지나가는 것도 아니다. 시간은 무게로 쌓인다. 그것도 아주 불공평하게. 어떤 하루는 깃털처럼 가볍게 사라지고, 어떤 한 시간은 바위처럼 무겁게 남는다. 중요한 건 시간을 '보내는' 방식이 아니라, 시간에 얼마나 '닿았는가'다.


아침에 일어나 멍하니 창밖을 보다가, 문득 저 나무가 어제와 다르다는 걸 알아챌 때. 전화기 너머 친구의 목소리가 평소와 다르게 들려, "무슨 일 있어?"라고 묻게 될 때. 책을 읽다가 어떤 문장에서 멈춰 서서, 그 문장이 정확히 지금의 나를 설명하고 있다는 걸 깨달을 때. 그런 순간들은 시계와 상관없이 무게를 갖는다. 10분이 10년처럼 각인되고, 하루가 평생의 이야기가 된다.


그래서 연말에 우리가 정말 세어야 하는 건 달력의 날짜가 아니다. 내가 얼마나 깨어 있었는지, 얼마나 느꼈는지, 얼마나 거기 있었는지다. 시간은 그렇게 쌓여서 비로소 나의 것이 된다.


시계는 언제나처럼 다음 숫자를 띄울 것이다. 하지만 시간은 숫자처럼 깔끔하게 넘어가지 않는다. 우리가 지나온 날들을 어떻게 안아주고, 어떤 마음으로 놓아주는지에 따라 비로소 새 시간이 모습을 드러낸다.


깊은 밤. 잠시 시계를 보지 않으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올해 내가 정말 살았던 시간들. 무겁게 쌓인 것들과 가볍게 흘러간 것들. 그것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일이 어쩌면 새해를 준비하는 진짜 방법일지도 모른다. 달력을 바꾸는 것보다, 시간의 무게를 제대로 느껴보는 것.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시계가 아닌 시간을 사는 법을 알아갈까.



월간에세이 3월호에 '시계와 시간 사이에서'를 썼답니다.

연말마다 "시간 참 빠르다"고 말하면서도,

모든 시간을 아끼고 효율적으로 쓰면서도

시간을 어디에 쌓고 있는지 모르는 시간-이었거든요.

시간을 잡으려 할수록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그 아이러니라니.

올해, 우리가 정말 살았던 시간은 안제였을까?

함께 돌아보고 싶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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