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앤나 Mar 31. 2016

가장 아름다운 약국,  스위스 상트갈렌 여행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그리고 아름다운 수도원 도서관을 가다

상트갈렌, 생 갈 수도원(The Convent of St Gall)에서 앉아서 보낸 시간, 이제는 도서관으로 가야 할 때.



생 갈 수도원 부속 도서관으로 들어가는 문은 성당 뒷마당에 있다.

입구에 도착해 문을 당기다 밀다가하며 열지 못하자 커다란 나무 밑에서 쉬고 있던 할아버지가 직접 문을 여는 제스처를 보여준다.

달칵, 문이 열리자 잘 했다고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워주는 그에게 아는 사이인 듯 친구처럼 손인사를 보냈다.  

몇십 년 나이차 혹은 떨어진 거리쯤은 그곳에서는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게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서관으로 들어갔다.



도서관으로 가는 길은 이렇게 표시가 되어 있다.
저기 가운데 큰 나무 밑에서 쉬고 있던 노신사가 문을 여는 법을 알려 주었다.
수도원 뒷 마당, 부속 도서관으로 들어가는 문. 상트갈렌의 문은 늘 기대 이상의 것을 보여주었다. 역사든, 성당이든 또 다른 곳이든.



도서관으로 들어가는 문 위에는

그리스어로 영혼의 약국(치유소)라고 쓰여있다.


16만 권의 장서

8~15세기의 필사본 2,100점

1500년 이전에 인쇄된 책의 초기 간행본 1,650점

지금이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이라는 수식어가 붙기에 역사 속에 가치가 더해졌다지만 그 시대에는 시간이 가진 의미가 오늘날만큼 중요했을 리가 없다.


단지 오래된 서적이라서가 아닐 것이다.

그 들을 치유했던 힘은 무엇일까.


천 년이 지난 후 지나가던 한 여행객도 이 곳에서 약을 구할 수 있을까.



수도원 부속도서관은 내부 사진촬영이 금지되었기에, 오직 눈으로만 볼 수 있었다.



도서관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소지품을 모두 보관함에 넣어야 하고, 신발을 감쌀 커다란 헝겊 신발을 신어야 한다.

내 발자국을 남길수 없는 곳.

사진 촬영이 안 되는 곳.

그래서 오직 눈으로만 볼 수 있는 곳.



신발에 덧댄 헝겊의 감촉은 부드러웠고

발걸음을 따라 나무 바닥은 소리를 냈다.

그렇게 마음의 약국으로 들어갔다.



창문으로 쏟아지는 햇빛

조용히 옮기는 걸음들

경이로운 시선이 향하는

가지런히 정렬이 된 장서들

그것들을 바라보는 나



Stiftskirchenbibliothek. 사진을 찍을수 없는 공간. 그래서 기억으로만 바라볼수 있는 곳.  (사진출처, 하단에)



어떨까, 그곳은.

여행을 떠나기 전 한국에서도

상트 갈렌 역에 내려서도 상상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서점.

천 년이 넘은 역사가 있는 그곳은 실제로 어떤 모습일까.

들어가자마자 감탄이 나올지도 몰라,

너무 아름다워서 한참 머물고 싶겠지.

상상 속에서는 도서관이 가장 아름다웠고 다른 것들은 보이지 않았다.

볼 수가 없었으니까.






그 들은 알까.

그의 뒷모습에서 위로를 받았고

그가 향하는 시선에서 희망을 얻었음을.


그 날 나는 알게 되었다.

이 곳이 아름다운 이유는,

책이 오래 보존되어서가 아니라

그것을 오랫동안 바라봐주는 사람이 있어서임을


건물 내부의 고풍스러운 분위기보다

창 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지금의 햇살이

책들이 뱉어내는 위엄보다

방문객들의 경건한 태도가

고서들이 담고 있는 지혜보다

배움을 위한 미한자의 열정이

이 곳을 아름답게 만든다는 것을.




영혼의 약국

그에게 받은 치유,

나도 조그만 힘이 되었을까.



괜찮아 보이는 당신이 위로가 필요함을 보며

내가 미처 쏟지 못한 관심을 꺼내게 되었고

나보다 훨씬 세상을 오래 살아온 당신배움을 원하는 모습은

이 도서관에 꽂힌 장서들의 의미 조차 다 모르는 나를 돌아보게 되었으며  

책이 가득한 곳 뒤로 텅 빈 의자를 쓰다듬는 손길에

여행이 그렇듯 사랑도 쉴 때가 필요함을 느꼈다.

사랑하는 이와 손을 잡고 같은 책을 바라보는 눈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 장소가 천 년이 넘게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도

마음을 돌아보고 내려놓고 다시 얻으며

머물고 스쳐간, 사람 때문이었다.


지금 이 순간도 살아 있는 곳.

오늘 묻힌 흔적이 내일의 기억이 될 곳.

아주 없어진대도 결코 사라지지 않을 그런 곳.


생 갈 수도원 도서관은

내가 생각한 것처럼 앉아서 무언가를 끄적일 수 있는 공간은 아니었다.

그러나 작은 공간에서 생의 여러 모습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벅찬, 공간이었다.


천으로 감싼 신발마저도

조심스레 움직이는

삐그덕, 삐그덕 소리를 뒤로 하고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 밖으로 나왔다.



책과 엽서, 펜. 도서관을 추억할수 있는 물품들이 있다. 오른쪽 사진의 안쪽 깊숙한 곳이 '도서관'으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도서관 옆에는 기념품을 판매하는 장소가 있다.

책과 엽서 그리고 펜. 도서관을 추억하기에 더없이 좋은 것 들.

책과 엽서는 그리스어로 쓰여있어 읽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하는 '말'보다

'그'가 하는 말을 사랑하듯

말은 아무래도 상관이 없는 순간도 있다.


연필과 엽서를 샀다.

적은 만큼 남겨지고

쓰는 만큼 사라지는, 연필이 이 공간과 어울렸다.



엽서와 연필 두 자루를 샀다. 이 것이면 충분할 것 같았다, 그 곳을 기억하기에.



과거는 바꿀 수 없다.

추억은 멈추었고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그럼에도 기억은 지속된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해가고 흠집이 날 테며

순서도 바뀔 수 있고 위치가 달라질 수도 있다

그러나 소중함이라는 가치로 언제나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으로 불리듯,

사랑 역시, 내 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날로 기억될 것이다.


내가 다시 이 곳에 오지 못한다고 해도

그 날 우리가, 서로에게 마음의 약국이었듯

내가 다시는 너를 만나지 못할지라도

 기억이, 내게 마음의 치유소가 될 것이다.



아직 쓰지 못한 연필, 가장 먼저 적게 될 내용은 무엇이 될까.



수도원 밖으로 나오니, 아침보다 햇살이 환하다.

오전엔 닫혀있던 가게들이 문을 열었다.

조용했던 길에 이야기가 채워지자

과거의 그 어느 곳 인 것 같던 길이

지금 이 순간을 걷는 길이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핑크색, 맛 집일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정해버렸다. '여기다, 여기.'



아까 봐 두었던 가장 예뻤던 핑크색 레스토랑.

그리고 따스한 테라스로 가서 주문한 음식을 기다렸다.



유럽은 조금 날씨가 차가운 날에도 이렇게 테라스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여심을 저격하는 핑크색 레스토랑, 그리고 핑크색 테이블보와 빨간색 꽃. 사랑스러운 날처럼 사랑스러운 장소.



그곳에는 세 명의 여자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잠시 후에는 네 명의 여자들이 웃음을 나누었다.

어디에서 왔는지,

이 곳에는 누구랑 왔으며,

앞으로 어디를 갈 건지,

여행을 하며 알게 된

'당연하지 않은 관심'에 고마움을 느끼며

한국에서 준비해 간 작은 인형을 건넸다.



그녀는 내 옷과 이 곳이 잘 어울린다고 했다. 오랜만에 친구들처럼 잘 어울렸던, 낮.



매일 듣는 말.

안녕,

밥 먹었어?

요즘은 어때,

내일 보자.

여행을 하며 알게 된 것은

그 어떤 것도 당연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렇게 좋은 날씨

아프지 않은 몸

가고 싶은 곳이 있는 것

마음에 드는 장소를 발견한 때

머무를 수 있는 여유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친구

그리고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

당연하게 존재할때 갖게 되는 감사함.



유럽여행에서 만난 그 들은 하나같이 나에게 말했다. "저기 가서 서 봐! 저기가 잘 나올거야." 최고의 기억으로 만들어주고 싶어하는 마음들.



이 곳을 떠난다.

작은 마을일 줄 알았지만

화려한 도시가 펼쳐졌고

평평할 줄 알았던 길을

오르락내리락 오가며

상트갈렌의 풍경을 담다가

자기도 상트갈렌이라는 청년을 만나

나도 그 순간부터 상트갈렌임을 깨달았다.


천 년의 시간을 담아낸 수도원에서

그의 시간에 비하면 찰나일,

그러나 내 생엔 가장 느린, '순간'을 보내고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도서관에서는

지나간 시간, 오래된 기억, 소중한 추억.

그것을 가진 그대들이 더 아름다움을 느꼈다.






상트갈렌에는 생 갈 수도원(The Convent of St Gall)이 있다.

카롤링거 왕조 시대의 위대한 수도원의 완벽한 모범을 보여 주는 이 곳은 8세기부터 1805년에 세속화될 때까지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곳 중의 하나였다. 그리고 이 곳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풍부한 장서를 갖춘 도서관이 있다.


그리고 상트갈렌 역에는 커다란 시계가 걸려있고 크고 고풍스러운 문이 있다.

역사 문을 열고 나가면 내 오랜 기억의 한 곳에 도착할 것이다.

그렇게 그 예전과 지금을 오가다 보면, 깨달을지도 모른다.


가장 아름다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사람, 당신임을.




상트갈렌역, 마이엔펠트로 출발하기 전 이 곳의 모든 순간들이 기억되기를 바라며.



상트갈렌 수도원 부속 도서관
1900년 이후의 책은 빌려볼 수 있으며, 필사본 도서도 미리 신청하면 내부에서 열람할 수 있다고 한다.
도서관 사진 출처 : 방울소리님 블로그 (승인을 얻은 후 사용하였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멈춘 시간의 페이지를 펼치면, 스위스 상트갈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