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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앤나 Mar 30. 2016

멈춘 시간의 페이지를 펼치면,  스위스 상트갈렌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아름다운 도서관을 가다


낯선 시계가 걸려있는 역에 내리자 다른 시대에 도착한 듯하다.

현실의 문이 아닌 것 같은 아주 커다란 역사문을 밀고 나가면 고풍스러운 도시가 펼쳐진다.


우리가 아는 스위스가 아닌,

어느 중세시대의 도시가.




Sankt Gallen, 상트갈렌 역사의 커다란 시계, 그리고 역사의 문.


Sankt Gallen.

상트갈렌에 가고 싶었던 이유는 한 가지였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수도원 부속 도서관이자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

'Stiftskirchenbiblionthek'가 그곳에 있기에.


오래된 도시라고 하면 몇 년을 상상할까.

수도원은 719년 건립되었다.

종교·문화·경제적 중심지로 번성한 9세기경 수도원 또한 성장했다.

중세시대에는 수도원이 학문과 지식의 중심이었다. 수도원에는 당시 수도원장이 모으던 장서들이 가득했고, 라틴어 어원 그대로 '책의 건물'이라고 불리어 지금의 도서관이 된 것이라고 한다.


단지 오래된 도서관이어서 가보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도서관의 심장인 '책'이 특별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수도사들은 직접 필사를 하였고, 지금은 세계에서 필사본을 가장 많이 소장한 도서관이 되었다.

천 년이 시간이 담긴 400권의 책

2,000권이 넘는 필사본.

그리고 당시 귀족과 왕을 위해 화려한 장식으로 책을 만든 만큼, 기품이 흐르는 책들을 만나고 싶었다.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이라 불리는 곳에서,

천 년 전에 만들어진 아름다운 책을 만난다면 기분이 어떨까



뾰족하지만 날카롭지 않고

딱딱한 듯 기품 있는 도시는

오래된 문화가 흐르고 있는

수도원임을 실감하게 한다.


수도원 외에는 구경거리가 없을 것 같던 작은 마을이, 순식간에 웅장한 도시로 눈 앞에 펼쳐진다.

이렇듯 여행은 예상 밖의 놀라움을 안겨주고 그것들은 거의 매번, 반갑고 고맙다.

도시 한 가운데에 있는 빨간색 카페트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 가는 길목 같았다.

시간의 도시로 가는 길.


'얼른 수도원으로 가야지.' 하는 생각은 사라졌고

눈 길을 끄는 것들을 따라 상트갈렌 도시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지금 걷고 있는 이 길목이 수도원의 마룻바닥보다 내 발걸음을 느리게 만들지도 모른다.

이 것이 여행에서 배운 것, 매 순간이 목적지에 다다른 것처럼 즐기기.



역사 문을 열고 나오면 바로 보이는 상트갈렌 첫 모습.
뾰족하지만 날카롭지 않고 반듯하지만 지루하지 않았던 도시, 상트갈렌.
상트갈렌은 골목이 이어졌고, 수도원에 가려면 저기 먼 위 쪽까지 걸어가야 한다.
내겐 시간의 길목이었던, 빨간색 카페트위에서.



아주 예쁜 원룸 같은 파리와는 달랐다.

복층이 매력적인 신기한 공간과도 같았다.

오르락내리락하는 길목은

과거와 현재를 드나드는 느낌을 안겨주었다.



파스텔톤의 느낌도 집마다 놓인 꽃도, 취리히와는 달랐다 이 곳 상트갈렌은.



집마다 놓인 꽃은 취리화와 같았지만 느낌은 전혀 같지 않았다.

취리히가 소녀라면 상트갈렌은 숙녀 혹은 여인이었다.



어느 골목에서 올려다 본 하늘, 시원한 바람 따스한 햇빛. 이 감촉을 사진으로 기억하고 싶었다.
깔끔한 건물과 반듯한 거리, 상트갈렌의 클래식한 느낌.
유난히 하얗거나 무채색의 건물이 많았던 곳. 수도원의 정숙한 느낌을 연상하게 했다.



한 청년이 내게 말한다.

"여어- 우리도 찍어줘."

과거의 시간에 젖었다가 금세 현실로 돌아왔다.

"여기 상트갈렌을 찍는거야?"

그렇다고 하자, "우리도 상트갈렌이야." 란다.


사진은 내가 잊고 있던 것을 불러일으킨다.

문득 들리던 기분 좋은 음악소리,

그 날의 바람이 내 머릿결을 흩트리던 순간,

문득 마주쳤을 때 어느새 웃고 있는 내 모습.


이 모든 것들은 기억이 되고

다른 것들에 덮여 아주 깊숙하게 잠길 테지만

누군가, 혹은 그 어느 것들이 - 아주 작게 들춰낼지라도 -

내 기억을 펼친다면 뽀얗게 쌓인 먼지를 털고

그 날의 순간들을 뱉어낼 것이다.

오래된 사진처럼


언제 찍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지만

그 순간만큼은 선명하게 그려지듯이.



이 곳에서 살아가는 그들을 내 카메라에 담는다.





상트갈렌 수도원은 1983년에 구역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수도원 근처에 다다르니 관광객들이 꽤 많이 모여있다.



이 곳이 상트갈렌 수도원, 넓은 평지에 반듯하게 올려진 건물.
상트갈렌 수도원, 꽤 많은 관광객들중 한국인은 나 혼자 였다.



이 곳에도 한국인은 나밖에 없다.

이제는 익숙하다.

다르지만 상관없고 혼자여도 괜찮다는 것을 알고 있다.


수도원으로 들어가는 문을 물어보자, 현지 대학생들이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평범해서 지나쳤던 문, 저 곳이었나 보다.

어느 봄 날처럼 날씨가 좋은 날

수도원에 도착했고 문을 열었다.



아마도 내 인생에서 가장

오래도록 시간이 멈춘 때.





내 모습을 결코 보지 못했지만

두 눈을 크게 뜬 내 모습이 생각나는 건

내가 의식할 정도로 놀랐기 때문에.


아주 꼭대기에 있는 천장과 웅장한 기둥, 정교한 조각들까지.

차마 발걸음을 떼지 못한 채 눈동자만 굴리며 그 자리에 서서 바라보았다.

그리고 거대하지만 권위적이지 않은

웅장한 품위가 있는 그곳으로 들어섰다.



무슨 말을 해야할까, 안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눈에 너무도 가득 들어와서 바라보기에도 벅찼던 성당.
이 곳에서 책을 읽고 있는 그에게 부탁했다, 나도 성당과 함께 내 모습을 담아달라고.



시간은 흘렀고 어서 부속 도서관으로 이동한 후에 마이엔펠트로 가야 하지만, 그곳에 머물러 앉았다. 몇 천년도 전에 지어진, 보는 순간 아름다움에 숨이 막힌 이 곳을 쉽게 떠날 수는 없었다. 이 곳에 평온하게 앉아 떠오르는 것을 생각하고, 느낌을 적는 순간은 어쩌면 다시는 오지 않을지도 모르니까.




스친 순간이라기에는 너무나 선명한, 그 날 am 10 : 45



주위를 둘러보니 단체 관광객 무리는 한바탕 빠져나갔고,

큰 성당 안에는 노부부와 나 그리고 홀로 앉아 상념에 잠긴 청년뿐이다.

스위스, 상트갈렌 성당.

어느 순간에 여기에 와야겠다고 결심했을까.

어떤 시간들을 거쳐 이 곳에 도착했을까.

우리는 이 곳에서 무슨 것을 느끼고 있을까.



내가 있는 내내, 청년도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래서 내 기억속에도 남은 모습.
노부부와 나는 서로의 순간을 담아주었다. in St. Gallen.



반가웠다.

서로 다른 일생을 보내다가

어느 한 일상에서 만난 우리가.





멈춘 시간의 페이지,

같은 순간에 펼친 우리의 기억도 함께 기록이 되었다.

스위스, 상트갈렌의 오래된 수도원에서.






am 10: 45을 기억하며, pm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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