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곳에 가냐고 묻는다면, 갈 이유가 없어서 갈 수밖에 없었다고.
왜 그곳에 가냐고 묻는다면
갈 이유가 없어서
갈 수밖에 없었다고
현지에 살고 있는 친척이 없어서
아는 선배나 친구가 없고
교환학생로 떠나지 못했으며
인턴십을 할 기회가 없었기에,
유럽처럼 함께 여행 가자는 친구가 없고
출장으로도 갈 일이 없었던,
좀처럼 갈 이유가 생기지 않아서
떠날 수밖에 없었던 곳.
내게 다가오지 않아
내가 다가갔던 도시
2016년 8월,
뉴욕으로 떠났다.
혼자.
천 년의 역사가 거리마다 넘쳐흐르는 로마,
지중해에서 만나는 고대 신화의 발상지 그리스,
가본 이들은 하나같이 극찬하는 바르셀로나,
로맨틱한 야경과 음악이 매력적인 비엔나,
애프터눈 티와 함께 셰익스피어 책을 읽고픈 런던,
가고 싶은 곳은 셀 수 없었다.
그곳이어야만 하는 이유도 많았다.
그러나 뉴욕은, 달랐다.
무엇을 봐야겠다는 것은 없었다.
한 손에 횃불을 든 자유의 여신상,
해 질 녘이 로맨틱하다는 브루클린브릿지,
어쩐지 뉴욕의 상징이 되어버린 LOVE 동상도,
그저 관광명소로 비칠 뿐
그곳들을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러나 뉴욕에는 닿고, 싶었다.
제일 하고 싶은 것은
뉴욕을 만나는 것.
그 도시를 걷는 것.
'이 곳이 뉴욕이구나' 느끼는 것.
'사랑이 대체 뭘까.' 알고 싶다면
사랑을 해보는 수밖에는 답이 없듯
뉴욕에는 가보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뉴욕에 왜 가고 싶어 하는지
가기 전에는 답을 내릴 수 없었지만,
가고 나서는 알 수 있을 테니까.
어느 곳으로 떠날까.
다른 곳들은 이유가 많은데 왜 뉴욕은 이유가 떠오르지 않을까.
정말 가고 싶어 하는 게 맞는 걸까?
너무 고민이 될 때 두 가지를 생각했다.
어느 밤, 젖혀진 커튼을 바라다가
어느 낮, 익숙한 동네 거리를 걷다가
저 커튼을 젖혔을 때 보고싶은 도시와,
지금 걷는 거리가 어느 곳이길 바라는지.
두 질문에 대한 답은 같았다.
그래서 떠나기로 했다.
가고 싶은 갖은 이유를 가진 수많은 곳보다
이유는 없지만 가고 싶은, 뉴욕으로.
이번에도 혼자 갈 줄은 몰랐지,
그렇게 8월 여름, 뜨거운 뉴욕으로 향했다.
한 번쯤 닿을법한 우연이 찾아오지 않아
한 번쯤 서투른 인연을 만들어 보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