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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가장 달콤한 사탕가게

길거리에 떨어진 달콤한 사탕을 줍다 보면, Bonnie Cookbook

by 유앤나

나는 7월의 따뜻한 어느 날 저녁 시간에 태어났다.

나는 그 시간의 온도를

알게 모르게 평생 좋아하며 찾아다녔다.

그 온도가 아니면

고통스러운 마음으로 아쉬워했다.

추운 나라에서는 결코 살아갈 수 없었다.

그리고 내가 살면서 자발적으로 한

여행은 모두 남쪽으로 향했다.

_헤르만 헤세, 헤세의 여행



뉴욕에서 가장 예쁜 길을 꼽으라면, 단연 Broadway-Lafayette st를 지나면 주택가 거리에 있는 Bleecker st이다. 이스트 빌리지 지하철역에서 내려서 보니의 요리책 서점으로 걸어가는 길. 뉴욕의 아기자기한 주택들이 모여있는 거리에는 어느 오래된 집의 아래층에 작은 서점이 있다.



달콤한, 거리.






'보니의 요리책 서점'

요리 레시피가 담긴 책은 물론 세계 각국을 대표하는 요리와 지역별 음식, 특별한 날에 먹기 좋은 디저트와 아이를 위한 이유식, 텃밭에서 가꿀 수 있는 채소와 과일, 음식을 담아낼 수 있는 그릇과 보관법. 마치 세상의 중심이 요리인 것처럼.

그곳에 들어서면 요리 왕국에 들어선 것 같을 것이다. 이 서점의 주인 보니는 요리책 에디터로 일을 했으며, 미국을 넘어 곳곳에서 모은 요리책으로 이곳에 서점을 열었다고 한다. 아주 오래된, 그래서 두꺼운 표지마저 벗겨진 이 책들을 모으며 그녀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누구를 위한 요리를 했을까?' '이 사람은 누구를 사랑할까.' '향수가 느껴지는 음식을 선물하고 싶었을까.'와 같은 것들 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녀의 고민과 애정이 묻어나는, 오래된 달콤함이 풍기는 곳으로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일 테니까.



가보지 않은 곳인데

생각만 해도 포근한 건 왜일까.

상냥해 보이는 그녀 혹은 달콤해 보이는 장소 때문일까?

그냥, 왠지 좋은 느낌이야.

할머니 댁에 찾아가는 기분.

그곳에 가면 나를 위한 과자가 있을 것만 같아.

빨간 모자 소녀처럼, 어느 맑은 날 그곳으로 향했다.



내가 가장 좋아한 블리커스트리트. 아, 길에서 만난 내 또래 그녀는 사진을 부탁하자 "저 벽이 더 예뻐! 저 쪽으로 가서 서 봐!" 하며 길을 건너기도 했다. 나와 함께.
아기자기한 길거리를 걸으면, 어쩐지 단 내음이 풍기는것만 같아.


그녀의 사랑스러움이 거리에 똑똑 떨어진 걸까. 헨젤과 그레텔이 과자 조각을 떨어뜨렸듯, 이스트 빌리지에 숨은 공간을 찾아가는 사람을 위해. 달콤한 내음은 나지 않지만 알록달록한 쿠키 같은 거리를 보며 걸어갔다. 할머니 댁에 가듯, 오늘은 날 위해 벽장 안에 어떤 과자를 넣어두셨을까.




들어서면 눈이 휘둥그레 해진다. 아기자기한 분위기에 두리번거리게 된다. 요리 서점, 아니 요리 공간. 그러니까 여기는 그녀의 주방. 와, 서점이라기엔 정말로 사랑스럽잖아.

요리책이라고 하면 레시피북만 생각했던 건 무척 안일한 생각이었다. 요리의 역사와 세계의 요리, 그리고 다양한 컬러를 가진 식재료, 인종과 종교별 음식 특징, 다양한 컬러를 가진 식재료, 음식으로 치유하는 법, 디저트의 역사와 종류, 아기 연령대에 알맞은 간식, 주방 인테리어와 소품...


요리는, 일부가 아닌 전부였다. 우리는 모두 하나의 인생을 살아간다. 결코 그것은 작지 않다. 요리사, 작가, 주부, 교사... 직업의 한 분류에 속할지라도, 한 사람으로 언제나 삶의 중심에 존재한다. 그렇기에 세상 모든 부분과 연결된다. 요리 역시 그렇다. 역사, 인종, 심리, 가정, 디자인. 그들 모두를 한 그릇에 담되, 보기 좋게 떠 앞접시에 적당하게 담아낸 곳. 한 권의 책들로 꽂혀있는 보니의 요리책 서점.

서점 안을 둘러보며 '요리책'은 서점의 한 '코너'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내가 가소로웠다. 그리고 나 역시, 나라는 작은 부분으로 나의 전부가 되고 싶다고, 소망했다. 나로도 충분하게, 풍요롭고 싶다고.




"나도 한국이 정말 익숙해. 이 건물 2층에도 한국 사람이 살고 있는 거 아니? 그는 말이야-"

오늘 처음 본 사이라기에는 너무 살가운 그녀를 보고 있으면, 꼭 내가 이 건물 근처에 사는 것만 같다. 그래서 어제도, 또 그전에도 왔던 것처럼. 한참 그녀의 말을 들으며 '어쩜 이렇게 재미있게 말을 할까' 생각했다. 그러니까 내가 만약 뉴욕에 살았다면, 학교 끝나면 또는 회사가 쉬는 날 이곳에 왔을 것만 같아. 옆집에 요리를 잘하는, 아주머니를 찾아 그녀와 수다를 떨고 싶을 테니까. 달콤한 것까지 곁들이면 더없이 행복해지겠지.



Oh, I love Economy Candy!


뉴욕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이 어디냐고 물으니, 보니는 눈을 빛내며 "이코노미 캔디!"라고 외친다. 브루클린 브리지, 타임스퀘어나 혹은 유명한 레스토랑이 아닌 캔디 가게? 내가 의아해하며 "Candy?" 되묻자 그녀는 잠깐 기다리라며 명함을 모아둔 곳에서 이코노미 캔디를 찾는다.


그녀의 오래된 명함정리함, 이 마저도 사랑스럽다. 선물받고 난 후 끈이나 리본도 버리지 않고 모아둘거같아, 우리들 엄마처럼.
후후, 명함사진을 찍었는데도 그녀는 손수 연필로 적어준다. 내가 좋아하게 될거라는 말과 함께.


"내가 아주 어렸을 때 할아버지 손을 잡고 가던 캔디 가게야. 온갖 캔디와 초콜릿으로 가득한 곳이지. 난 할아버지 손을 잡고 이 가게를 가는 날이 정말 행복했거든! 난 뉴욕에서 여기를 제일 좋아해. 달콤한 걸 좋아한다면, 너도 틀림없이 사랑에 빠질 거야."

"틀림없이. 나도 그곳을 좋아하게 될 것 같아요!"




"아쉽다. 또 올 거지?"

"그럼요! 한국으로 떠나기 전에 다시 올게요. 그때 엄마한테 선물할 요리책을 살 테니 추천해주세요!"

"물론이지. 참, 화요일과 수요일에는 문을 닫게 될 거야. 그러니 꼭 다른 요일에 와야 해."

"걱정 말아요. 또 봐요!"



뉴욕의 달콤함을 온 몸으로 느꼈던 여행, 그래서 행복했던걸까? 쉴 틈 없이 (적어도 입은) 달달해서.


그냥 지나치면 모를법한, 작은 간판을 따라 계단을 내려가면 만날수 있는 책방.



찰랑


방울 소리와 함께 들어갔다.

활짝 웃으며 손인사를 건네자, 전화를 받고 있던 보니 역시 눈을 찡긋하며 잠깐만 기다리라는 신호를 보낸다. 느긋하게 서점 안을 둘러보며, 엄마에게 선물할 책을 고르기 시작했다. 어떤 것이 좋을까. 활자보다는 사진위주가 좋겠지? 생생한 요리과정이 담긴 책이면 어떨까. 아님, 채소나 과일을 이용한 간단한 주스 만들기라던가...


책을 살펴보다가 멈춰 선 곳은 어쩐지 어린아이를 위한 요리코너. '저기 앉아도 될까.' 싶을 만큼 조그마한 의자가 놓여있다. 캔디와 초콜릿을 좋아할 꼬마숙녀를 위한 의자일 테지만, 주위를 둘러보니 다행스럽게도 의자 주인들이 없기에 조심스럽게 앉아보았다. 앉으니, 키 작은 선반에 꽂혀있는 책들이 새롭게 눈에 들어왔다. 보니가 곁에와 쪼그리고 앉아 "귀여운 책들이 정말 많지?" 물었고, 난 대답 대신 책을 꺼내 들었다. "이거, 어때요?" 그리고 그녀는 "와우, 파이를 만드는 책을 발견했구나." 왠지 나보다 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책을 펼쳤다.



왠지, 엄마를 위한 책이 아니라 날 위한 책이 되어버린것만 같지만. 포크를 들고 식탁에 앉아서 쿠키를 기다리고 싶어지는, 책.





책을 고르고 나서, 가방에서 작은 것을 꺼냈다.

"Bonnie! You might be surprised to know where I've been"

그 후엔 어쩐지 한국말로 "짠!"을 외치며 그녀에게 건넸다.




Economy Candy



그녀는 놀라며 "너 이코노미 캔디 가게에 갔었구나! 오, 어쩜!" 하며 캔디를 받아 든다. "와우, 이건 처음 보는 캔디야. 아마도 요즘 나온 것인가 보지? 세상에 나도 그곳을 못 간 지 꽤 되었는데. 어때? 가보니까 좋았니?"

그녀의 말처럼, 가득 찬 초콜릿과 캔디 덕에 나 역시 한 움큼 집어올 수밖에 없었다고 하자 그녀는 웃는다.

"와, 이건 시그러운 맛일 거 같아. 먹어봤어? 어때? 표정이 이렇게 될 거 같은데?" 하며 옛날에 '아이셔' 사탕을 먹은 듯 시그러운 표정을 짓는 그녀를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응, 아마 나도 먹어보진 않았지만. 재미있는 맛! 일 것만 같아요."



뉴욕에서 '문방구' 스러운 캔디가게를 찾는다면, 단연 이곳을 가보기를. Economy Candy



"유나, 이건 쿠키를 먹을 때 꺼내놓으렴. 어울릴 거야."

"오, 보니! 괜찮아요."

"내 작은 선물이야. 커피나 티를 담아도 돼. 조그마한 게 귀엽지?"


컵을 받아 들고선 나를 두고, 그녀는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가 나오며 까르르 웃는다.

"세상에, 이 가방 봐. 아주 예전에 어디선가 받았는데 정말 촌스럽지? 그래도 사이즈가 딱이야!" 하며 담아갈 작은 가방을 보여주는 그녀.



Oh.... my god :)


보자마자 웃음이 터진 가방.

그러니까, 엄마도 아니고 할머니 댁쯤은 가야 볼법한.

뉴욕과 정말이지 안 어울리는, 호랑이 가방.


종이를 펼쳐 조심스럽게 컵을 싸고, 또 가방에 담아주는 보니를 보며 '이래서 이 곳이 오고 싶었던 걸까. 어쩐지 할머니 댁 같다고 생각했는데, 정말로 이렇게 될 줄이야.' 생각했던 순간.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기록을 남긴, 책들을 보여주었다. '누군가들의' 문방구 혹은 시골집 같은 그곳.



여행이란, 집을 그리워하는 과정이라고 누군가는 말했다.

태어난 곳을 떠올리며 돌아가고 싶어 하는 여정이라고.

그렇다면 내게 여행이란, 집이 하나 더 늘어가는 과정이다.

내가 머물렀던, 만났던 그들을 마음에 품는 여정.

그래서 기억할 사람이 늘어가는 행복한 그리움.



"우리 에이프런을 두르고 사진 찍자!"


헤어지기 전, 그녀는 나에게 어울릴 에이프런, 그리고 그녀가 좋아하는 에이프런을 골랐다. "휴, 나도 예전에는 딱 맞았는데 이제는 에이프런이 너무 작아졌어. 오, 역시 네게 딱 맞는구나." 손수 에이프런을 묶어주며 "정말 예쁘다!" 다정한 눈길로 바라보는 그녀, 내가 어떻게 이 곳을 그리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보니, 우리가 같이 찍은 사진 인화해서 보낼게요."

"기다릴게! 네게 답장도 보낼 거야."


어린 시절 할머니 댁을 나올 때면 작은 손에 큰 비닐봉지가 들려있었다. 단내가 나는 옛날 과자의 맛이 폴폴 풍기는, 촌스러운 봉지가. 뉴욕에서 가장 예쁜 거리, 블리커 스트리트로 나가는 내 손엔 정말이지 이 곳과 어울리지 않는 주황색 호랑이가 그려진 가방이 들려있다. '이 가방은 정말이지.' 고개를 저으며 걸어갔다. 어쩌면 나에게도 달콤한 내음이 나는 것만 같아서,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되던 그날.



"이만큼이요!"

"네 손님, 넣어드릴게요."

"아, 혹시 보니라고 알고 계신가요? 여기서 세 블록 정도 떨어진 곳에서 요리 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여기 이곳, 그녀가 뉴욕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이라고 했어요. 그래서 저도 와보고 싶었어요."

사탕가게에 어울릴-그러니까 어쩐지 식상한 상상이라고 할지라도- 체구를 가진 아저씨는 호탕하게 웃었다. 와, 새 명함이네. '보니에게 갖다 줄까?' 하다가 이내 생각을 거뒀다. 그녀는 새로운 명함보다는 낡은 -아주 많이, 그러나 기억을 담고 있는- 명함을 좋아할 테니까.

대신, 새콤달콤한 작은 캔디를 받고 훨씬 더 기뻐할 테니까. 그녀를 위해, 그리고 한국에 있는 내 친구들을 위해 알록달록한 사탕을 샀던.


아저씨가 직접 들어주었다. 후후, 여기가 바로 이코노미캔디.
시그러워질것 같은 쫀쫀한 캔디와 알록달록 새콤한 캔디.


from 이코노미 캔디


그러니까... 왠지 모르게 가보고 싶은 곳이 있다면- 혼자 알고 있거나, 혼자 기억하게 될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먼저 다가가 보는 것도 때로는 괜찮은 일인 것 같아요. 나는 이 곳에 너무나도 짧게 머무를 예정이지만, 꽤 오래 어쩌면 평생 기억할 테니까. 그토록 짧은 시간 동안 조금은 철없게 혹은 천연덕스럽게- 굴어도 사랑스럽게 받아줄 누군가들을 만나는 게 여행의 마법일지도 모르니까요. '나다운' 여행도 좋지만 '나답지 않은' 여행은, 뉴욕의 예쁜 골목길에 '할머니 댁'을 만들어줄 수도 있을 테니까, 먼저 다가가 보기- 때로는 그녀의 추억 속에 폭 빠져보기- 그리고 같이 기억을 나누기를, 바랍니다. 틀림없이 당신은 저보다 더 달콤하고 단내가 나는 추억을 만들어 가고 있겠지만... :)



Bonnie Slotnick Cookbooks  

주소: 28 E 2nd St, New York, NY 10003

연락처: +1 212-989-8962

영업시간: 오후 1:00~7:00 (목요일은 12~6시이며, 화요일은 쉽니다)


Economy Candy

주소: 108 Rivington St, New York, NY 10002

연락처: +1 212-254-1531

영업시간: 오전 9:00~오후 6:00 (10시부터 열때도 있다고 합니다)



보니가 선물해 준, 귀여운 컵. 꼬마가 마시기에도 그리고 내가 마시기에도 틀림없이 좋을 머그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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