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 게이스더월드(Gay's the word)
당신은 한국인이다. 아무 불편함이 없는 이 문장은, 한국에서만이다. 한국을 벗어나는 순간 불편한 문제를 불러일으킬 문장이 된다. 낯선 곳에서 당신은 이방인이 된다. 공항에서부터 당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말해야 하고, 왜 그들의 공간에 들어왔는지 이해시켜야 한다. 심지어 그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Look Right] 오른쪽을 보시오.
횡단보도에 써진 글씨, 오른편에서 달려오는 자동차.
이곳은 런던이다.
그리고 당신이 알아야 하는 환경과 당신에 관한 이야기다.
열 명중의 한 명, 열 명중의 열 명
여성과 남성, 그리고 제 3의 성이 살고 있다. 열 명중의 한 명은 게이다. 런던을 두고 하는 말은, 런던 내 동성애자와 그 수를 짐작하게 한다. 런던에 간다고 했을 때, 주위 사람들은 런던에 얼마나 많은 게이가 살고 있느냐와 그들이 얼마나 매력적인지에 대해 말했다. 게이는 곧 매력적인 성격과 외모로 이어지는 등호가 성립되듯, 한결같이 들려오는 소리에 약간의 미심쩍음과 내심 품은 기대로 런던으로 향했다. 그리고 블룸즈버리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런던 거리를 거닐면 심심치 않게 게이를 볼 수 있다. 그들이 혼자 있었다면 눈에 띄지 않았을 것임을 고려한다면 더 많은 수가 될 것이다. 그 들은 둘일 때 눈에 띄는 법이니까. 그렇다. 그 들은 분명 눈에 띈다. 그러나 남들과 다른 모습을 갖고 있다거나 더 매력적이라서는 아니다. 둘 사이 감도는 기운과 분위기는 그 어느 커플이든 매력적이며 타인의 시선을 끌어당긴다. 우리가 사랑스러운 커플을 한 번 더 쳐다보게 되는 것처럼, 여느 사이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단지 런던의 게이는 숨기지 않는다. 그들 스스로의 존재와 사랑하는 이에게 감정을 스스럼없이 표현한다. 오직 그것이 그들을 드러나게 하고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이유이다.
블룸즈버리를 걸을 때도 같았다. 이른 저녁 동네 산책을 하던 중 문득 뒤를 돌아보게 되었고, 그 곳에 그가 있었다. 유난히 튀는 옷차림이라거나 특별한 제스처를 취하고 있지 않은 그의 곁에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서로를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이 공유하고 싶어 하는 가치가 부드러운 미소와 친절한 목소리, 그리고 들고 있는 책과 매거진으로 풍겨 나온다. 뒤를 돌아보면 서 있는 런던의 신사, 게이스더월드 Gay's the word 이다.
들어가도 되는지에 대한 고민을 했다. 이유는 하나였다. 나는 gay가 아니고, 이곳은 gay를 위한 서점이다. 그들과 나 사이에는 공통점이 없다. 허락받지 않은 공간에 들어서는 것 같은 긴장감으로 서점의 문을 열면, 알록달록한 깃발아래 유쾌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는 직원이 있다. 사진 촬영에 대한 허락을 구하니 직원은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고 세련된 제스처로 손을 펼친다. 얼마든지, 원하는 만큼 이라는 의미다.
서점에 들어서면 보이는 하얀색 천장에는 커다란 필기체로 acdc 라고 쓰여 있고, 그 아래 무지개 색 깃발 장식이 달려있다. 무지개 색은 동성애의 상징으로 다양한 문화와 성 정체성을 존중하는 의미를 가진다. 알파벳 acdc는 양성애를 뜻하는 단어로 이성애의 욕망과 동성애의 욕망을 함께 가지고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동성애와 양성애 모두를 환영하는 이 공간은, 당신도 환영하는 서점이다.
스스로 만들어낸 경계심을 무너뜨리며 깨닫는다. 그들과 나 사이에 ‘공통점이 없다’는 단정은 곧 상대방을 ‘특정한 소수’로 배척하는 폭력이다. 성별, 세대, 국가, 인종 그리고 취향 같은 것으로 구분하며 우리는 언제라도 소수자가 될 수 있다. 서점 밖에서는 이 서점이, 서점 안에서는 내가 그렇듯 말이다. 그리고 경계를 허물기 위해서는 서로의 영역에 들어가 보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곧 다르지 않음을, 해치지 않음을 알게 될 것이다.
열 명 중의 한명이 게이일 수 있다. 열 명 중의 한명은 당신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열 명이 있다고 해서 당신이 곧 열 명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당신은 오로지 하나의 존재이며, 그래서 열 명중의 열 명은 모두 특별하다. 그래서 이곳은 다른 사람과 같으며 특별한, 당신이기에 환영받을 수 있는 서점이다.
정보의 평등, 우리의 권리
게이스더월드는 LGBT(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양성애자(bisexual), 트랜스젠더(transgender)의 앞 글자를 딴 것으로 성적소수자를 의미) 서점으로 입구에 비치된 컬러풀한 표지를 가진 책들은 유독 눈에 띈다. 기억 속 런던의 서점 중 가장 생동감이 넘치고 톡톡 튀는 서점인데, 이것이 무지개 색 깃발의 영향인지 화려한 표지를 가진 책의 배치 때문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혹은 서점 리뷰에서도 볼 수 있듯 유난히 친절한 직원들 때문인지도 모르나, 런던에서 가장 밝은 분위기를 가진 서점인 것은 분명하다.
서점 입구를 지나면 회전형 DVD 컬렉션과 판매용 엽서를 모아둔 곳이 있고, 그 안쪽으로 주제별 섹션들로 이어진다.
The angel of history
The book of salt
The kills
The stranger's child
다르지 않았다. 이 책의 제목을 보고 이곳이 특정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서점이라고 생각해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성소수자 서점이라고 불리기에는 시, 연극, 전기, 예술, 에로티즘, 역사, 패션과 음악 방대한 분야에서 모든 주제를 다루고 있다. 동성애 문학이 사랑만을 다룰 것이라는 것은 얄팍한 오해를 쉽게 깨트린다. 그들이 사는 세상도 내가 사는 이곳과 같았다. 역사를 탐구하고 예술을 다루고 시를 쓰며 살아가고 있었다.
당신은 5백 년 전 로미오와 줄리엣을 읽고 가슴이 아팠다. 전혀 다른 시대를 살았던 전쟁과 평화를 읽고 마음이 요동치기도 했다. 세대, 국가, 문화 그리고 역사가 현저히 다르지만 오직 사랑하는 이야기라서 공감할 수 있듯 이 곳 역시 마찬가지다. 남자를 사랑한 이야기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이의 이야기가 있을 뿐이었다. 우리 기억 속에 그 혹은 그녀가 남자나 여자로 불리기에는 그는 너무도 ‘그’ 자체였음을 누구보다 우리가 알고 있지 않은가.
서점 직원은 대형 서점이 가진 레즈비언과 게이 섹션과 이 서점이 다른 점이 무엇이냐고 묻는 말에 ‘주제의 다양성’이라고 대답한다. 대형 서점에서는 독자의 이목을 끌기 위해 동성애의 욕망을 직접적인 주제로 다루고 있지만, 게이스더월드는 인물의 전기부터 예술과 철학에 이르는 방대한 주제로 동성애의 삶을 담아낸다고 설명한다. 책을 선별하고 배치하는 과정에 대해서는 작가 콜름 토이빈(Colm Toibian)의 책을 예로 들며, 등장인물 중 일부는 동성애자이며 일부는 그렇지 않음을 말한다. 이처럼 게이와 레즈비언이 등장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인물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임을 강조한다.
한 매거진 인터뷰에서 그는 말했다. "우리는 정보의 평등을 원합니다. 궁극적으로 인간에 대한 이해와 자유를 증진시키는 문학을 추구하죠." 정보의 평등, 인간에 대한 이해. 그것은 우리에게 해당하는 말일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과 결코 다르지 않은 주제를 다루는 서점, 폭 넓은 인간사를 알아갈 수 있는 주제가 담긴 책을 통해 그들이 알려주지 않았다면 결코 몰랐을 '우리의' 이야기를 알아간다.
No Best seller, Find Your book
게이스더월드의 콜렉션을 살펴보고 있자면 무언가 허전한 느낌이다. Best seller가 없다. 그 어디에도 찾을 수 없다. 지금껏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도서를 구매했다면 이곳에서는 난감해 질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질문을 갖게 한다. 베스트셀러는 최선인가, 대중의 선택은 옳은가. 대중으로부터 선택받은 책이 옳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단, 본인의 추구하는 가치가 ‘대중’이라는 막연한 키워드에 쉽게 흔들리고 변해가는 과정에 대해 묻는 것이다. 스스로 구매하고 싶은 책과 베스트셀러 가운데 고민한 적이 없는가, 사려고 하던 책을 덮고 끝내 대중이 구매한 책을 선택한 적이 정녕 없는가. 이제 타인이 아닌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할 때다.
나는 어떤 취향을 가졌는가?
EBS 다큐프라임은 군중 속 개인의 판단을 실험하기 위해, 칠판 위에 길이가 서로 다른 선을 그리고 어느 쪽이 더 길어 보이냐는 질문을 했다. 실험 대상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대답한 선이 더 짧아보일지라도 그 선택을 따라한다는 결과를 보여줬다. 어떠한 상황에 놓였을 때, 자신의 이성적인 판단보다 대중의 집단행동을 따라가게 되는 군중심리를 반영한 대답이다.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따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믿는 것이다.
게이스더월드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선택에 묻어가거나 의지할 수 없다. 그래서 당신은 취향을 드러내야한다. 이것은 쉽지 않은 문제다. 우리는 언제고 독특한 취향을 가진 소수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정 지역 출신과 거주 지역 그리고 성별과 나이 또는 특정 질환을 앓고 있는지 여부는 당신을 소수자로 만든다. 어린 시절로 돌아가 보자면, 당신은 왼쪽 손이 아닌 오른쪽 손을 사용하라고 권유받았으며, 우유를 마시면 배가 아픈 증상을 말하자 엄살을 부린다며 혼이 나기도 했다. 현재로 돌아온다고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채식을 하는 당신은 다 함께 밥을 먹는 자리에서 소극적인 모습이 되고, 카페인에 민감한 당신은 커피가 아닌 다른 음료를 주문할 때 유난스럽다는 말을 들을까 걱정한다. 키가 너무 크거나 작은, 체중이 평균보다 많이 나가거나 적게 나가는 당신은 기성복 매장에서 소수자가 된다. 'Free Size'를 취급하는 매장에서 당신이 입을 수 있는 옷은 없다. 그러나 소수자라는 것을 드러내는 순간 세상이 친절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 자신을 드러내는 것은 곧 튀는 것이라고 동일시하며, 자신을 감추고 대중이 되어 대중으로 동조한다. 이러한 행동이 옳으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상관없다. 오직. 고립되느냐 소속되느냐의 문제이다.
게이스더월드는 소수자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얼마나 험난한 과정인지 알고 있다. 그럼에도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에 대해 말하며, 그 과정이 덜 어려울 수 있도록 돕는다. 서점에서는 ‘내가 게이 라는 것을 알게 됐을 때(The times I know I was gay)’ 와 같이 유아, 청소년, 그리고 성인이 시기 별로 정체성에 대해 탐구할 수 있는 서적들이 있다. 또한 ‘내가 레즈비언이라는 것을 가족에게 말하는 법’과 같이 가까운 사람과 상의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주제도 찾아볼 수 있다. 이와 함께 영국을 포함해 유럽 전역과 전 세계로 책, DVD와 매거진 등을 발송하며, 성 정체성을 고민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온라인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글로벌 소수를 위한 공동체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제가 가진 행복이라는 개념과 이 세상 사람들의 행복이라는 개념이 전혀 다를지도 모른다는 불안, 저는 그 불안 때문에 밤이면 밤마다 전전하고 신음하고, 거의 발광할 뻔 한 적도 있습니다.] 디자인 오사무, 인간실격.
베스트셀러가 없는 서점, 성 소수자의 공간, 그리고 어떤 주제로든 소수자가 되는 곳에서 우리가 가진 행복이라는 개념을 탐구하고 드러내야 한다.
Reading, Loving, Living
게이스더월드 (Gay's the Word)는 1979년 1월 블룸즈버리 거리에 문을 열었다. 서점은 창업 초기부터 책을 판매하는 곳을 넘어 공동체 기능을 하는 커뮤니티 장소로 기획됐다. 게이와 레즈비언들은 서점 안쪽에 있는 비밀스러운 공간에서 커피와 맥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저녁에는 서점 내 피아노 공연을 즐기기도 했다. 이 공간의 접이식 의자에는 45명까지 앉을 수 있어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려 토론을 하고 모임을 갖기에 제격이었다. 또한 서점은 방문객을 위해 매주 동성애 신문을 무료로 제공했으며, 성 소수자들의 소식과 앞으로 다가오는 이벤트를 설명하는 팸플릿을 배포하기도 했다. 이처럼 성 소수자를 위한 공동체 기능을 하는 서점은 37년이 지난 지금도 그 기능에 충실하다. 영국 내에서 인기가 높은 트랜스런던(TransLondon)의 회의 장소이며, 레즈비언 토론그룹(Lesbian Discussion Group)이 35년 여간 지속적으로 모임을 갖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 외에도 게이블랙그룹(Gay Black Group)과 게이 장애 그룹(Gay Disabled Group )등의 커뮤니티가 정기적 행사를 갖고 이벤트를 진행하는 공간이다.
게이스더월드는 커뮤니티로서 지역 사회와 함께 성장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한다. 매 주 수요일 저녁에 진행되는 레즈비언 토론 그룹의 멤버들은 결혼식 하객에게 선물 대신 게이를 위해 기부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후원금은 서점 내 커뮤니티를 위한 광고와 트랜스런던(TransLondon) 그룹의 행사를 위한 지원금으로 사용된다. 서로 다른 커뮤니티의 성장을 위하며 상생을 지향하는 것이다. 또한 서점은 독자들이 책을 구입하지 않아도, 그들이 제공하는 모든 이벤트에 참여할 수 있고 심지어 무료 신문이나 매거진을 받아볼 수 있도록 한다. 이곳은 게이 서점을 넘은 성 소수자들의 공동체 장소이며, 지역 사회를 위한 기관으로 발전해가는 공간이다.
Together, To Gether.
“서점을 찾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공간에 머무는 느낌을 받는다.” 서점에서 30 여 년간 일해 온 매니저 짐 맥스 위니(Jim MacSweeney)의 말처럼 상당수의 독자들은 게이스더월드에서 안정감을 찾는다. 서점을 다녀간 독자들은 서점의 SNS를 통해 소감을 남기는데, 다른 서점과 달리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가 ‘친절함’과 ‘안전함’이다. 독자들은 런던에서 발견한 가장 안전한 장소라고 하며, 혼자일 때와 다른 전체에 속하는 느낌을 갖는 공간이라고도 말한다. 이것은 단지 그들의 취향과 일치하는 게이와 레즈비언의 서적이 있기 때문은 아니다. 오늘날 섹슈얼리티에 관한 책은 방대하며, 이러한 자료의 양만으로 성 소수자들에게 매력을 주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독자들이 서점에 소속감을 느끼는 이유는, 서점이 가진 모토 때문이다.
매니저 짐은 서점을 소개하며 가장 친절한 지역 사회 기관이라고 말한다. 서점이 아닌 사회 기관이라고 강조하는 대답에서 어떤 신념마저 느낄 수 있다. 서점은 성 소수자를 위한 런던에서 가장 다양한 자료를 가지고 있으며, 직원들은 모든 책을 읽고 직접 Recommended 마크를 부착한다. 또한, 서점 내에 없는 자료를 찾는 독자를 위해 대신 외국 서점에 알아보는 것은 물론이고, 도움을 요청하는 고객을 위해 적극적으로 조언을 제공한다. 그리고 영국 전역의 도서관과 자원 봉사 센터에 서적을 기부하고 있다.
작은 이방인, 핑거스미스, 야경꾼 등 맨부커 최종후보에 세 차례 오른 작가 사라 워터스(Sarah Waters)는 이 서점을 두고 영국 최고의 ‘콘텐츠’를 다루고 있으며, 친절하고 지식이 풍부한 직원이 있는 곳이라고 말한다. 이곳은 전문적 콘텐츠가 있는 서점이고, 친절한 상담소이며, 해박한 지식과 풍부한 경험을 가진 멘토가 존재하는 사회 기관인 것이다.
그러나 게이스더월드가 성 소수자만을 위한 커뮤니티로 존재하는 것만은 아니다. 다른 영역의 소수자를 위한 커뮤니티 역할과 나아가 국민을 위한 공동체적 공간으로 기여를 한 대표적인 사례를 들 수 있다. 1984년 영국의 광산 폐쇄 정책에 대항하는 광부를 지지한 일이다. 당시 마가렛 대처는 석탄이 사양 산업으로 접어들며 광산을 폐쇄하는 정책을 펼쳤고, 이에 광부들의 파업 소식이 영국 전역에 보도 된다. 소식을 접한 런던 LGBT는 광산 노조를 지원하기로 결정한다. 정부의 탄압 그리고 대중의 외면 속에서 원하는 것을 이루어 가야 하는 ‘소수자’의 상황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게이, 레즈비언, 바이섹슈얼과 트랜스젠더는 광부들을 위해 ‘LGBT는 광부를 지지합니다’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그리고 이 때 게이스더월드는 영국 광부 노동자 런던 본사를 위한 회의 장소를 제공하고 후원했으며, 이에 런던에서만 11,000 파운드 이상이 모금되기도 한다. 당시 게이와 레즈비언 단체는 왜 광산 노조를 지원하느냐는 질문에 “그들은 지하로 내려가 일을 할 것이고, 우리는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답했다. 결코 관련이 없으며 하지 않을 일이지만, 그렇기에 더 이해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Gay's word, People's World
지난 2016년 7월 영국 게이 잡지 ‘애티튜드(Attitude)]에는 의외의 인물이 표지를 장식했다. 심지어 게이가 아닌 이 남성은 바로 영국 왕실 윌리엄 왕자이다. 그는 화보 촬영 전에 LGBT 커뮤니티와 켄싱턴 궁에서 만나 사회에서 LGBT를 혐오화고 배척했던 사례에 대해 들으며 공감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는 누구도 자신의 섹슈얼리티 때문에 괴롭힘을 당하거나, 혐오를 참고 견뎌서는 안 된다고 말하며 LGBT 커뮤니티를 지지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성 정체성으로 고민하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스스로에 대해 자부심을 갖기를 권유하며, 부끄러워하지 말고 주위의 친구, 어른, 상담 센터에 도움을 청하길 바란다며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현재 유럽의 일부 국가에서는 트랜스젠더들의 생식기 수술을 무료로 지원한다. 네덜란드의 경우 본인의 성별 정정만 원할 경우, 법원의 판결 과정을 거치지 않고 진행할 수 있다. 병원에서 검사를 받은 호르몬 진료 기록과 의사 추천서가 있다면 성별을 정정할 수 있으며, 외국 여권을 보유한 트랜스젠더도 해당 국가에서 본국 여권의 성별과 관련 없이 성별 정정이 가능하다. 인디펜던트 저널에 따르면, 현재 영국 또한 의사의 진단 없이 행정 절차로 성별 변경을 가능하게 하는 법안을 추진 중이다. 이와 함께 스스로를 ‘제 3의 성’으로 인지하는 사람은 자신의 성별을 남자나 여자가 아닌 ‘X’로 기재할 수 있게 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영국 교육부 장관 저스틴 그리닝은 오는 2019년부터 영국의 모든 초등학교와 중학교 수업시간에 '관계와 성 교육(RSE)' 수업에서 성 소수자(LGBT) 등의 내용을 다루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인도 케랄라주 코치에서 학생과 교사 모두 트랜스젠더인 최초의 트랜스젠더만을 위한 학교가 설립됐다고 보도했으며, 덴마크에서는 2017년 자신이 잘못된 성을 갖고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청소년 130명이 성과학클리닉에서 치료를 받았다.
당신과 공통점이 없는 주제라거나 우리가 살고 있는 곳과 먼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규정짓는 순간 소수자가 되는 것은 당신이다. 읽을 수 있는 책과 먹어도 되는 음식, 들어가도 되는 장소 그리고 만날 수 있는 사람으로부터 고립되기 때문이다. 소수는 정해진 상황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우연한 시기와 장소에서 생길 수 있다. 어느 단체를 위한 서명을 한 당신은 소수자다. 광화문에서 촛불을 든 당신도 소수자가 된다. 그러나 그 장소들을 지나치는 당신 역시 소수자가 된다. 당신의 위치를 가늠하는 시각에 따라 소수와 다수 양 방향에 놓일 수 있다. LGBT는 성에 관한 소수자이고, 어느 부분에서는 당신과 비슷하며 대부분은 다수의 취향과 같은 대중이기도 하다.
2015년 6월 페이스북은 프로필은 무지개 색을 입었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동성 결혼 합헌’ 을 축하하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2013년 구글, 아마존, 애플, 페이스북, 인텔 등 실리콘밸리 60 여개의 IT 기업들은 미국 연방대법원에 동성 간 결혼을 지지하는 의견서를 제출했으며, ‘LGBT 프라이드 퍼레이드’에 참여와 후원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인권과 평등을 위함이다.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위한 것이다.
201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LGBT 수용도 조사’ 발표에 따르면 한국은 OECD 35 곳의 회원국 중 하위에서 네 번째를 차지했다. 한국인의 LGBT 수용도가 보수적이라는 조사는 한국에서도 발견된다. 아산정책연구원은 2015년에 ‘한국 유권자의 LGBT 인식’ 조사를 통해 ‘한국인은 다른 소수자 인권에 비해 성소수자 인권 문제에 대해 뚜렷한 주장이 없다’고 밝혔다. 한국은 성소수자의 인권을 보장하는 ‘차별금지법’이 재정되지 않았으며, 성소수자에 대한 통계조차 기록되지 않았다.
우리는
어떤 책을 읽을 것인지
아직 정하지 않았다.
서점에 들어간 후 무의식적으로 대중이 모인 곳으로 향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당신이 서점의 외진 곳, 다른 이들이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는 곳으로 가기를 원한다. 마이너한 취향으로 주제를 살피고, 진정으로 좋아하는 책을 찾아내기를 바란다. 그리고 당신이 소수자가 아닌 오직 당신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공동체의 역사를 이루어가는 소수자에게서 당신의 이야기를 찾기를 바란다.
서점은 66 Marchmont St, Kings Cross, London WC1N 1AB에 있습니다.
조심스럽게 들어설 당신을, 반갑게 환영할 직원은 무척 친절하고 유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