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이 없는 리스본 수도원
문득 낯선 곳에 가고 싶었다.
그리고
볼 것 없는 도시에 가고 싶었다.
유명한 볼거리가 없는 도시. 그렇다고 자연풍광이 대단해서 바라만 봐도 넋을 놓게 되지도 않고, 유명한 영화에 나왔던 아름다운 장소나 내로라하는 유적지도 없는 곳. '볼 거 없는' 도시에서는 마주치는 것들마다 볼 것이 될 테고 '마주치는' 모든 것이 기억으로 남게 될 테니까.
다만 다정한 사람과 정겨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가장 크거나 오래된 혹은 신비로운 것이 아니라 가까운, 친근한, 익숙한, 그리고 어제와 닮은 오늘의 이야기가 되기를 바라며.
무엇보다 나의 시간보다 느리게 흘러가는 곳이길 바랐다. 너무 많은 것들이 빠르게 지나쳐서 무언가는 놓쳐야 하고 떨어트리고 가야 하는 날들에, 소중한 몇 가지 기억을 품기에 충분했으면. 그래서 아직 오늘에 도착하지 못하고 시간의 뒤에서 느릿하게 걸어오는 곳을 향해,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떠났다.
거쳐 가는 도시, 3일이면 충분하다는 도시. 리스본에는 열흘이 넘도록 그리고 포르토에서는 일주일 동안 머물 예정이었다. 7월, 여름. 따뜻함보다 따끈함에 가까운 계절. 체온과 가장 닮은 온도를 넘어 체온을 덮는 따스함이 깃든, 여행지에 도착했다.
숨이 차 올라왔다. 언덕을 오른지 너무 오랜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무언가를 보기 위해 이렇게 걷고 있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실감이 났다. 세상에, 수도원이라니. 리스본에 도착하자 마자 짐을 풀고 나와서 이 높은 언덕을 오르는 이유라니. 평소에 익숙하지 않은 '수도원'을 보려고 이렇게 열심히 걸어 올라가고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생각해보면 언제나 보고 싶은 것들이 있었다. 그러나 보고 싶은 것은 늘 봐야 하는 것들에 밀려났다. 어제도, 오늘도 해야만 하는 것들이 있었다. 바쁜 일상에서 보고 싶다는 순진하리만치 해맑은 이유는 결코 우선순위가 될 수 없었다. 게다가 그것이 당장 어떤 도움이 되지 않을 경우라면 더욱.
리스본이라서 다행이었다. 소위 대단한 유명세를 타는 곳들이 있었다면 -이를테면 세계 3대 박물관이나 최대 규모의 미술관 혹은 어떤 역사적 건물같은- 그것들보다 대체로 시시한 나의 의미는 쉽게 밀려나게 마련이니까. 그러나 리스본에서는 가고 싶다는, 작지만 전부인 이유면 충분했다. 게다가 대부분의 곳엔 오래된 이야기가 있었다. 듣고 싶은 옛날 이야기를 찾아가는 길이라니, 마치 동화같기도 했다.
뜨거웠다. 이른 오전부터 달궈진 돌바닥의 후끈함이 느껴졌다. 여름에 신기 좋은 슬립온의 얇은 천은 리스본의 뜨거운 열기과 울퉁불퉁한 지면을 그대로 흡수했다. 오후엔 투박한 운동화를 신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비로소 이 마을에 들어왔다고 느꼈다. 언제나 여행지에 어울리는 신발이 있었다. 돌바닥이 벌어진 틈새나 간격에 따라, 매끄러운 보도블럭에 따라, 혹은 자전거를 타기 좋은 길이나, 머무르고 있는 숙소가 얼마나 언덕이냐에 따라서 슬리퍼나 샌들, 또는 러닝화가 되기도 했다. 그곳과 가장 어울리는 신발을 갈아신고 나설 때 비로소 발자국이 찍히는 것 같았다. 이곳의 삶과 비슷하게, 그러면서도 선명하게 다른 여행의 기억처럼.
언덕 꼭대기에 도착하자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카르모 수도원(Covento do Carmo)은 리스본의 꽤 높은 곳에 위치해있다. 리스본의 명물이 된 산타주스타 엘리베이터의 맨 꼭대기와도 연결이 되는데, 윗마을과 아랫마을을 연결해 상업 활동을 했던 백 여년 전의 기록이 풍경으로 재현되는 곳이다.
이곳에 수도원이 있다. 땅에서 멀고 하늘과 가까운 아득한 시간의 끝자락에서 수행하던 이야기는 시간이 흐르며 오래된 풍경을 펼치는 전망대가 되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리스본의 풍경도 매력적이지만, 낡은 수도원의 열린 문 틈새로 흘러나오는 이야기는 더 흥미롭다.
1389년에 세워진 수도원은 당시 리스본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웠던 고딕 양식 예배당이었다. 세계적인 명소와 마찬가지로 가장 크고, 오래된, 그리고 아름다웠던 이곳은 1755년을 기점으로 모든 수식어를 잃고 단 하나의 형용사를 갖게 된다. 지붕이 없는 곳. 카르모 수도원에 오고 싶었던 이유다.
이 어마어마한 규모의 수도원은, 지붕이 없다.
1755년 11월 1일, ‘만성절(All Saints' Day)’이었다. 거대한 수도원이 예배자들로 가득 찼던 오전 9시 40분 미세한 진동이 시작되었다. 리스본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대지진이었다. 도시는 엄청난 속도로 갈라지기 시작했고 진동은 곧 해일처럼 밀려들었다. 이 멀고 높은 곳에 도착하기까지 수많은 건물은 무참하게 쓰러지며, 리스본의 85%에 이르는 지역이 파괴되었다. 도시를 탈출하기 위해 부둣가로 나온 사람들은 쓰나미에 휩쓸렸고 도시 곳곳의 불길은 5일 동안 꺼지지 않았다. 삼분의 일에 해당하는 생명이 죽어갔다. 참혹했다. 왕궁과 도서관의 모든 장서와 역사적인 기록이 잿더미가 됐다.
수도원은 아프게, 살아남았다. 지붕은 무너져 내렸지만 이를 받치고 있던 기둥과 벽면은 버터냈다. 이듬 해인 1756년 수도원 재건이 시작되었으나 순조롭게 진행되기는 어려웠다. 당시 건물들이 바로크 양식이었던 것과 달리 카르모 수도원은 실험적인 고딕 양식으로 지어졌다. 어떤 이론적 토대 없이 세워졌던 터라, 후에 '네오 고딕'으로 불리게 된 포르투갈의 첫 시도는 다시, 상상으로 재건이 되어갔다. 지금의 수도원 기둥에서 조금씩 다른 문양과 장식을 찾아볼 수 있는 까닭이다. 어렵게 회복되어 가던 수도원은 끝내 미완성으로 남고 말았다. 당시의 정치와 사회 환경이 변모하며 수차례 재건 작업이 중단되다가, 1834년 포르투갈의 수도원이 결국 해체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후 포르투갈의 유산을 보호하기 위해 설립된 포르투갈 고고학 협회가 수도원을 관리하게 되었으며, 현재는 고고학 박물관으로 보존되고 있다.
입구에서 4유로를 내고 표를 사면 박물관의 작품을 관람할 수 있다. 페르디난도 1세(D. Fernando I)의 관을 비롯해 여러 석관과 조각상, 고대의 토기를 비롯해 역사적 아줄레주가 전시되어 있다. 이처럼 포르투갈의 시대별 기록과 고대 문명, 아즈텍, 잉카, 이집트의 유물과 당시의 주화를 포함해 드물게 미라도 보존되어 있어 다른 박물관에서 보기 어려운 희귀한 역사를 목격할 수 있다.
한 시대가 풍미하고, 멈추고, 다시 흐르는 이야기가 있다.
630여 년 전에 지어진 곳, 대지진에도 살아남은 곳, 지금은 또 다른 유일한 곳이 된 곳. 만약 볕이 좋은 날 가게 된다면, 눈을 꼭 감게 될 것이다. 찬란한 햇살이 천장이 되어 수도원의 모든 곳을 비추고 있었다. 천장이 없는 곳이 아니었다. 하늘이 천장이 된 유일한 공간이 되었다.
박물관 안에는 사람이 거의 없던 터라, 아직 이른 시간 덕분이라고 여겼는데 수도원을 찾은 사람들은 모두 한곳에 있었다. 박물관의 문을 열고 나오면 쏟아지는 햇볕이 감도는 따스한 공간에서, 벽면을 만지고 천장을 가리키며. 아득한 어둠 속에서 신을 위해 존재했던 곳은 오늘날 눈부신 인간의 광장이 되었다. 사람은 어디서든 빛을 따라가게 마련이다. 높은 곳에서 비춰오는 빛을 따라 모두 같은 곳을 올려다봤다.
수도원에서는 오롯이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자꾸만 고개를 들게 되었다. 나보다는 누군가를 더 많이 생각하게 되는 곳이었다. 그리고 나를 감싸고 있는 것들과 그것이 연결하는 세상까지도. 오늘의 내가 무사할 수 있는 이유와 지금 이 순간도 그렇지 못 할 존재에 대해서,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해야만 하는 것들을 생각해야 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부서짐을 너무 쉽게 결함으로 치부했다는 것을. 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두고 있던걸까. 보통의 모습, 평범한 상황, 혹은 처음의 목적과 달라지면 어떤 의미로든 실패했다고 생각해 오지는 않았을까. 사라진 것들 속에 새롭게 나타난 의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무엇이 사라졌다는 것은 새로운 것이 생겨난 것이고, 무엇이 없음으로써 반드시 무언가는 있을 테니까. 가장 아픈 기억은 굳은 힘을 가진 살이 되기도 한다. 이 세상도 그 안의 우리도, 부서졌다고 생각한 곳이 어쩌면 가장 밝게 빛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무엇을 완성이라고, 또는 미완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모든 출구는 어딘가로 들어가는 입구다. Every exit is an entry somewhere" (톰 스토포드)
오늘날 수도원은 역사를 재건하는 곳이 되었다. 1755년 대지진에 대한 설명을 듣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다양한 게임을 접목한 지진 테스트도 제공한다. 또 야외 전시장으로, 다양한 예술 작품을 관람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매력적인 것은 바로 천문대가 된다는 것이다. '별 아래 리스본(Lisbon Under Stars)'이라는 낭만적인 행사는, 리스본의 역사적 이야기를 현대 무용으로 해석하는 공연이다. 화려한 빔에서 뿜어나오는 빛이 수도원 벽면을 채우고, 머리 위로는 리스본의 별들이 빼곡하게 떠오르는 밤. 별빛과 불빛이 현실과 상상처럼 교차하는 순간이다.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시간을 보낸다. 사색에 잠기고 산책을 하면서, 작품을 관람하고 드로잉을 하거나 신중하게 셔터를 누른다. 빛에 따라 달라지는 질감이 풍부한 영감을 안겨주기 때문일까. 텅 빈 공간을 찾아오는 예술가는 꽤 많은 편인데 수도원의 아치가 하늘을 연결하는 지점을 그리거나, 기둥에 내려앉은 구름의 모습을 찍기도 한다. 마치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하늘인 것처럼. 어쩌면 정말로 그렇듯이.
천장이 부서졌기에 새로운 문이 열렸다. 어느 날 검은 물감이 바닥난 것이 인상주의의 탄생이었다고 말한 르누아르처럼, 풍경은 밖으로 아름답게 번져갔다. 우리도 같을까.
내가 세상의 중심일 때는 나의 결함으로 보이던 숱한 것들이, 세상을 중심으로 두자 모든 것이 고유한 모습이 되었다. 그렇게 다른 사람을 바라보자, 그 역시 그렇게 보였다. 처음부터 혼자는 완벽할 수 없었다. 대신 서로가 채워줄 수 있었다. 모든 존재는 홀로 완벽할 수 없지만, 함께 완전할 수 있었다.
햇살에 눈을 감자 머리칼이 흩날렸다.
불어오는 바람은 포근히 어깨를 감싸안았다.
부서진 천장의 틈으로 모든 것들이 다가왔다.
수도원 밖으로 나오니 전망대 옆으로 카페테리아가 있고 악기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완벽했다. 평범한 장면은 옆으로, 그 옆으로 이어지며 아름다운 공간을 만들어냈다. 어느 영화 속 공연이 떠올랐다. 1987년 작품인 《베를린 천사의 시》에는 인간을 사랑하는 천사가 나온다. 서커스단에서 공중 곡예를 하는 인간 마리온은 더 멀리 날아오르고 싶어 하지만 현실의 한계에 부딪힌다. 어깨에서 펄럭이는 장식용 깃털은 그녀를 더 초라하게 만든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천사 다미엘은 따스히 그녀의 날개를 감싸 안는다. 영화의 말미, 마리온은 사랑을 위해 인간이 된 다미엘이 잡은 줄에 올라탄다. 그의 단단한 팔에 의지해 더 높게 날아오른다. 하늘로 날아오르는 마법이 아니라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예술을 실현했다. 사랑으로.
"날개를 줄 순 없지만 어깨를 내어줄거야."
그 후로 이어졌던 여행도 같았다. 이상한 것을 파는 도둑 시장, 글씨가 없는 표지판, 고장 난 비카, 그리고 일곱 개의 언덕이라고 불리는 리스본의 그 골목들까지. 그러나 테주강이 보이는, 보라색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산뜻한 빨래 내음이 풍겨오는, 또는 자몽색 노을이 내려앉는 길목을 어떻게 느리거나 높다고, 혹은 멀리 돌아간다고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저마다의 이유로 사랑하게 되지 않을 수 있을까.
포르투갈은 지붕이 없는 수도원이었다. 모든 곳은 완벽하지 않았고 대부분은 예상과 달랐지만, 후미진 틈새로 들어오는 빛을 발견할 때 비로소 특별해졌다. 그렇게 모든 여행지는 미완성으로, 온전한 이야기가 되고 있었다.
부족하게 아름다운 여정, 미완성 여행지
포르투갈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