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바느질을 배워야 했냐고 묻는다면
왜 리스본에서
바느질을 배웠냐고 묻는다면,
말을 배우기 좋은 곳이었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수 밖에.
'아보'로 가는 길은 다른 길과는 꽤 달랐다. 리스본에서 가장 크다는 코메르시우 광장, 상점들이 빼곡히 늘어선 아우구스타 거리, 대항해 시대의 중심지 벨렘 지구, 옛 정취를 풍기는 알파마…. 그리고 이곳들을 포함해 리스본의 주요 관광지를 운행하는 그 유명한 28번 트램이 가지 않는, 조금 먼 곳.
이 동네를 제법 파악했다고 생각했다고 했는데, 모처럼 생경한 풍경이 펼쳐졌다. 그렇지만 낯섦을 살포시 덮는 다정함이 있다. 아무리 익숙해도 좀처럼 편해지지 않는 공간이 있듯, 처음 가도 편안해지는 그런 곳들이 있지 않던가. 아보로 가는 길은 유난히 더 오르고 내려야 했지만, 이렇게 귀여운 풍경도 종종 만날 수 있었다. 정말이지 할머니 집이 있을 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다정한 장소는 가는 길마저 다정할까.
"Oh, YouNa!"
문을 열고 들어서자 단번에 알아보며 이름을 부른다. 당황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반갑게 끌어안는 그. "기다렸어! 한국 사람은 처음이니까."라며 쾌활하게 나를 맞이하는 그와 그 너머로 나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동네 할머니들 사이에서 "아…. 네. 반가워요!"라고 말할 수밖에. 그러니까 나도 Avo, 아니 이 리스본이 처음이거든요.
아보(Avo)는 리스본 노인들의 세컨드라이프를 지원하는 곳으로 리스본의 비영리단체인 Fermenta에 속해있다. 은퇴한 노인들이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 남은 삶을 즐겁게 살 수 있도록 돕고 있으며, 전통적인 솜씨로 현대적인 디자인을 구현하는 작업은 제법 인기가 좋다. 내부를 둘러보니 온갖 알록달록하고 귀여운 소품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손녀딸을 위해 인형을 만들었다면 이런 느낌일 거야. 사진을 찍어도 괜찮냐고 물으니 "물론이지, 원하는 만큼." 이란다. 사진을 다 찍고 나면 수업은 그때부터 하면 된다는 Avo의 첫인상은, 딱 할머니 댁이다. 물론 할머니 조금 많이 계신 곳이긴 하지만.
그러니까 문득, 일상의 것이 배우고 싶었다. 필요해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기 위해서 배우는 것들.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지만 알아두면 아마도 좋은 것들. 아니 어쩌면, 그것들이야말로 중요할지도 모르는 것들.
업무에 관련된 일이든, 새로운 운동이든 배우고 있는 것들은 있었다. 앞으로 배워야 할 것들은 더 많았다. 목표를 세워가며 조금씩 어쨌든 나아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아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진다고, 그렇다고 사는 게 쉬워지는 건 아니었다. 돌연히 공허하고 이따금 외로웠다. 왜일까. 나아지고 있는 건 대체 무엇일까. 삶이 물었고, 나는 대답을 망설였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 처음부터 잘하기 위한 것이지 잘 살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일을 하는 방법은 알아갔지만, 살아가는 방법은 사실 여전히 아직도 모르는 것들이 널려있었다. 한 해가 지나기 전에 해야 하는 것과 몸이 으슬으슬해질 땐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하는지, 익숙하지 않은 옷감을 세탁하거나 오래된 물건을 정리하는 법, 뜻밖에 좋은 재료를 알아보고 기뻐하거나 이 계절에만 피어나는 꽃을 보고 반색할 수 있는- 그래서 순간을 잘, 살아가는 방법을 알아간다면. 매일 달라지는 오늘을 눈치채고 내일을 기대할 수 있다면.
돌이켜보면 대개 자연스럽게 알아 왔던 것들이었다. 배우려고 해서가 아니라 곁에 있었기에 알게 된 것들. 미끄러지지 않게 젓가락을 쥐는 법이나 옷을 겹쳐 입을 때 소매 끝을 잡는다거나 바지를 주름지지 않게 개키는 법은 그날의 대화였고 다정한 표현이었다. 그래서 집집마다 방법이 다르기도 하지만 아무렴 어떻단 말인가. 더 좋은 것은 없고 그저 좋은 것만 있을 뿐.
낯선 도시에서 어느덧 혼자 살아가며 잊고 있었다. 오늘 이 순간을 잘, 틈틈이, 살아가는 법을. 겨울의 눈이 녹으면 물이 되는 것이 아니라 봄이 온다던, 어린아이의 시처럼 기준과 점수를 매길 수 없는 답들이 적고 싶어졌다. 휙 긋거나 빠르게 동그라미를 치며 하룻장을 넘기던 일상을 벙찌게 만들, 이를테면 바느질 같은.
할머니라면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느 것이든 배우기 좋을 것 같은 모습들이 있다. 힘차게 자전거를 받쳐준다거나 정갈하게 찻잎을 갈아주거나, 민감하게 향을 섞어내는 모습 사이로, 바느질이라면 아마 할머니가 제격 일 거라고. 급하지 않게 천천히, 이따금 느릿하게, 이야기를 풀어놓는 시간이 될 거야. 보드라운 천 조각을 만지작대며 사르륵 잠이 들어버리기에 좋은 핑계도 댈 수 있을 테지.
포르투갈이라서였다. 이런 것들을 알려주기에 포르투갈은 그 풍경처럼 나이도 지긋하다. '2020 세계 인구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무려 3위에 이른다. (1위는 일본이고 2위는 이탈리아다) 그래서인지 리스본 거리에서도 심심찮게 노인들을 볼 수 있는데, 있을 법한 곳이 아니라 어디서든 자연스럽게 마주친다. 공원과 산책로는 물론이고 어느 카페와 공연이 열리는 거리, 골목에 숨어있는 진자(체리로 만든 술)가게, 드넓은 테주강을 바라보기 좋은 언덕까지. 그때마다 웃어주고 인사를 건네는 일은 그들의 몫이다. 서툰 영어로 어디에 다녀왔고 앞으로 어디에 갈 건지 떠드는 말에 엄지를 치켜세워주는 일 또한.
기억의 골목에서 만난 할머니도 늘 잘했다고 했다. 삐뚤빼뚤한 글씨를 보고도, 서툰 아는 체를 보면서도, 필시 낙서인 그림을 바라보면서도. 그것들을 모두 보고도. 물론 어른의 기준이나 어떤 노련함과 견주지 않아서기도 했지만, 골목의 끝에서 걸어 나오며 알았다. 처음부터 아니었다. 할머니가 바라본 것은 그것들이 아니라 나였다. 내가 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이든 하는 나를 바라봤던 거다.
바느질을 알려줄 소피아 할머니와 나란히 앉았다. "음, 소피아는 영어를 할 줄 몰라. 그러나 바느질은 손길로 배우는 거니까 괜찮을 거야. 그리고 소피아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내게 물어보면 돼! 내가 통역을 할게." Avo의 직원 리타는 소피아를 내게 소개하고, 아마 그녀에게도 같은 설명을 했다. 소피아와 나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어쩌면 물어보지 않아도 될 것 같아.'
그림을 고르는 것부터 시작했다. 한 장, 한 장의 그림들을 살펴본다. 그 자체로도 매력적이지만, 색색의 실로 꿰매어지면 더 아름다워질 그림, 골랐다. "이걸로 해볼 거니?" 포르투갈어로 묻는 소피아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로 한대, 예쁘지?" 아마도 이런 말일 듯 소피아는 뒤를 돌아 다른 할머니들에게 말한다. 그리고 그녀들은 "와우" 감탄을 하거나 몇몇은 "Pretty!!" 란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칭찬을 받는 곳이다. 오랜만에 어깨가 으쓱인다.
소피아가 먼저 한 땀, 두 땀 꿰매는 것을 보고 조심조심 실을 꿰매어 간다. 내 손길을 바라보며 "그렇지." 고개를 연신 끄덕이는 그녀. 내 나이쯤 되면 이런 바느질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초등학교부터 배워오지 않았던가. 서툴게나마 작은 주머니를, 버선을, 그리고 취미로는 십자수나 프랑스 자수를 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한 땀을 놓는 것에 "고것 참, 잘하네."라는 말을 듣자 오랜만에 즐거워졌다. 행복해졌다는 것이 더 어울리는 표현일까. 조근조근 풀려나오는 실타래로 한 올 한 올 다정함을 기워갔다.
툭
끊어졌다.
어디서부터 엉킨 건지 매듭이 꼬여버려 소피아에게 보여주니, 자세히 살펴본 후 꼬인 부분을 찾아내 가위로 끊는다. 그리고는 뭉쳐진 실을 풀어낸다. 아마도 내 표정이 좋지 않아서였을까. 소피아는 손바닥을 자신의 가슴에 갖다 대고 다시 손을 흔들며 고개를 젓는다. '가슴 아파하지 마.' 다시 새로운 실을 고르고 이어간다. 잘못 꿰기 시작한 그 순간으로 돌아가 풀어내면 된다. 어쩌면 처음보다 더 빠르게, 예쁘게 수를 놓을 수 있는 타이밍인지도 모른다.
그때 리타가 잘하고 있느냐며 말을 걸어오고, 소피아는 리타에게 무어라 말을 한다. 그 말을 듣더니 리타가 내게 다가온다. "소피아가 널 걱정해. 속상해 하지 말라고. 실수는 잘못이 아니래. 다시 하는 지점일 뿐이래."
서로의 손을 보며, 한 땀씩 번갈아 색을 채워간다. 어느 순간 소피아는 포르투갈어로, 나는 영어로 말을 하고 있지만, 그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서로 다른 실이 하나의 그림으로 꿰어지듯, 우리의 이야기도 그렇게 이어지고 있었으니까.
"Youna!"
고개를 폭 숙이고 있던 내가 위를 바라보자 바바라 할머니가 쿠키를 건넨다. 테이블에서 작업하던 리타가 말한다. "바바라가 집에서 구워온 거야. 물론 잼도 직접 만든 거지. 바바라의 요리 솜씨는 이 마을에서 가장 유명하거든." 토마토 잼이 두툼하게 발린 큼지막한 쿠키를 받아 들었다. "오브리가다!"(고마워요) 하자 할머니들이 모두 웃는다.
마치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한 것만 같다.
좋은 말만, 또박또박.
착하게 하고 싶어질 만큼.
왜 이 먼 곳에서
바느질을 배웠냐고 묻는다면,
말을 다시 배우고 싶어서였다고.
여행지만큼 말을 배우기에 좋은 곳이 있을까. 안녕 인사를 건네는 그 나라와 지역의 말투 그리고 말을 대신할 수 있는 무수한 표현들. 고마워하고, 미안해하는, 무엇보다 더 많이 궁금해하면서 알아가는 이 모든 말들을 새삼스럽게 다시 배우는 곳. 당연한 일상을 배우기에 더없이 알맞은 여행지에서, 집집마다 다른 행복의 풍경을 천연하게 누벼간다.
당신은 언제 바느질을 배웠나요?
맵시 좋게 주머니를 만들던 가정 선생님 앞에서 한 땀 두 땀 서툴게 따라 하지는 않았나요.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야." "이렇게 하면 점수가 깎여." 검사를 받으며 무심코 떠올렸죠. 이불 홑청을 갈던 할머니 곁 사르륵 몸에 감기던 차가운 이불의 감촉을. 팔꿈치의 닳는 부분을 덧대어 주는 엄마 무릎에서 낡고 투박한 골무를 손가락에 끼워보던 날들을. 아마도, 알고 있겠죠. 바느질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누군가 내게 "바느질을 언제 배웠어요?" 묻는다면, 나는 이곳 리스본을 떠올리겠죠. 할머니가 만든 소품들에 둘러싸여 색색의 실로 그림의 색깔을 채워가던, 고개를 폭 숙인 채 한 땀 두 땀 수를 놓으면 솜씨 좋게 구워온 쿠키를 건네주던 순간을.
할머니의 레시피가 궁금한가요? 그녀는 말해주었죠.
"실수가 아닌 다시 하는 지점인걸."
"잘못이 아니라 너의 방법이란다."
잘못 꿰거나 엉키게 할 수도 있죠. 그러나 당신은 배울 거예요. 풀어내는 법을, 속상해하지 않는 법을. 더 아름다운 실로 하루를 이어가는 법을.
그날에 배운 색깔을 고르고 천을 붙이는 이런 일들이 일상에서 언제 쓰일지 알 수는 없죠. 다만 떠올리면 좋은 기억이 있다는 것. 그리고 천과 바늘로 해보고 싶은 것이 이따금 생각난다는 것. 그 정도랄까. 언젠가 꿰어가고 싶은 이야기가 더 선명하게 생길지 모를 일이지만.
할머니의 레시피는 알려줬죠. 정답은 없고 모든 답이 있다고. 그것이 너의 답이 될 거라고. 가끔 일상의 레시피가 궁금하다면 아주 작은, 당연한 것을 배워보기를. 아니 알아가 보기를 바라죠. 그리고 무엇보다 그것들을 하는 당신을 사랑스럽게 보아주기를, 바라죠.
당연한 방법들이,
어쩌면 이렇게 다른지 꽤 놀라고 기꺼이 반기며
오늘과 내일을 맞이하기를 바라며.
여전히 바느질은 잘 못하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