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흘러가야 했으므로, 지금 이곳에서부터.
문화 Culture
《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
총성이 울리고 폭탄이 터졌다. 눈앞에서 건물이 무너져 내리고 시민들이 죽어갔다. 폐허가 되어가는 도시에서 청년들은 책을 건져 올렸다. 누군가를 죽이는 법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하는 법을 배워야 했으므로. 그리고 이야기는 흘러가야 했으므로. 지금 이곳에서부터.
프랑스 저널리스트이자 분쟁 지역 전문 기자 델핀 미누이는 2015년 페이스북에 한 장의 사진을 발견했다. 작고 어두운 공간에서 책을 읽고 있는 청년들의 자칫 평범한 모습. 그러나 사진이 올라온 페이지의 제목은 'Humans of Syria'이다. 시리아의 사람들. 시리아가 어디인가. 전쟁, 폭력, 난민과 같은 단어들이 연달아 따라붙는 곳. 한 달에 600여 차례의 폭격이 쏟아지는 곳에 도서관이 있다니, 그곳에서 책을 읽고 있다니. 기자는 스카이프와 왓츠앱으로 전해진 수많은 메일 속에서 사진을 찍은 청년의 흔적을 찾아낸다. 아흐마드 무자헤드. 시리아의 대학생으로 기자를 꿈꾸던 청년은 잿더미가 된 도시에서 구해낸 책들로 지어낸 도서관 이야기를 들려준다. 열악한 환경에서 인터넷은 몇 차례나 끊겼고 때로는 포격 소리가 들려왔지만, 청년의 목소리는 또렷하게 기자의 귀에 꽂혔다.
"우리는 땅 속에 파묻힌 책을 구해내기 시작했습니다. 한 권씩 발견할 때 마다 온 몸에 전율이 흘렀죠. 새로운 단어를 읽을 때 마다 새로운 문이 열렸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일주일 간 6천여 점, 한 달 뒤엔 1만 5천 권을 구했고 이 책을 보관할 수 있는 도서관을 만들었습니다."
다라야.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7㎞가량 떨어진 곳은 반군들의 거점 지역으로 지명되며, 식량과 의약품도 끊긴 채 봉쇄를 당한 곳이다. 이러한 곳에서 그들은 대체 왜, 숨어서 책을 읽고 있단 말인가. 기자는 이들의 참혹한 실상을 들으면서, 반드시 책으로 펼쳐내겠다고 약속한다. 《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은 그렇게 2년 간 다라야의 청년들과 기자가 스카이프로 대화를 나눈 내용을 바탕으로 나온 책이다. 그리고 다음 해인 2016년 8월, 다라야의 강제 이주를 마지막으로 도서관은 폐쇄됐다. 청년 중 몇몇은 숨을 거두었다. 그러나 시리아의 역사가 아닌 인류의 역사로 기록된 책에서, 독자는 발견할 것이다. 인간은 무엇으로 살아가는지, 또 어디에서 살아가는지. 절망의 파편으로 희망의 창문을 만들어 낸 도서관에서.
기록된 역사, 기록할 역사
무엇부터 구할 것 인가. 건물이 무너져 내리고 파묻히는 수많은 것들 중에서 어떤 것부터 구해내야 하는가. 당장 살아가기 위한 음식과 옷가지를 떠올릴 수 있다. 그러나 아흐마드와 친구들이 건져 올린 것은 책이었다. 그 이유에 대해 책을 펼칠 때 마다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오늘만 살아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일도 살아가게 하는 것. 전쟁터에서 중요한 것은 오늘보다 내일이다. 바로, 희망이다. 유대인 정신의학자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갔던 빅터 프랭클은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에서 수감자들의 사망률이 급격히 치솟은 순간은 크리스마스에서 새해에 이르는 기간이었음을 밝힌다. 기후 변화나 노동 조건, 전염병의 문제가 아니었다. 많은 수감자들은 크리스마스에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었으나, 참혹한 현실을 맞닥뜨리자 절망과 포기로 죽음에 이른 것이다. 폐허에서 건져낸 것은 책이 아닌 희망이었다. 아흐마드와 동료들은 책의 먼지를 털고 찢어진 곳을 붙여갔다. 버려진 건물의 지하에 책들을 채워 넣기 시작했다. 다라야의 첫번째 공공 도서관이었다. 새로운 역사가 적히고 있었다.
그들은 가장 먼저 역사책을 읽었다. 시리아의 역사에서부터 유럽의 전쟁을 다룬 책과 14세기 튀니지 역사학자가 아랍 왕조의 일대기를 분석한 《역사 서설》에 이르기까지 국가와 정치, 민중과 사상을 다룬 책들을 읽으며, 어떠한 생각들이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했는지 학습했다. 세상은 한 순간에 변하지 않는다는 것과, 그렇기에 인내를 가지고 투쟁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배워갔다. 그리고 전쟁이 끝날 무렵,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때 혼란을 최소화 하며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준비했다. 역사가 기록된 과정을 통해, 그들이 기록할 역사를 적어갔다.
자기다움, 인간다움
아흐마드는 처음에는 사람들이 책을 고르는 것조차 어려워했음을 말했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사회는 궁금한 대상이 아니었고 미래를 개척하는 과정도 익숙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전쟁은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살아오던 방법이 사라진 곳에서, 도서관은 스스로를 개척하고 미래로 향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사람들은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 요약본은 서로 돌려가며 읽었다. “나라는 사람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비로소 자아를 탐구하기 시작한 사람들은 해답을 찾기 위해 역사, 철학, 과학, 심리 책을 꺼내어 읽기 시작했다.
도서관에서 인기가 가장 많았던 책은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였다. 간절히 원한다면 온 우주가 돕는다는 희망, 해가 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먼 나라의 속담이 담긴 소설은 사람들로 하여금 신념과 의지를 갖게 했다. 또 다른 책으로는 《어린왕자》가 있었다. 소행성에서 지구로 떠나온 소년의 눈으로 바라본 동화는 참혹한 전쟁터와 어느 한 구석도 닮지 않았다. 그러나 현실에서 가장 먼 이야기는, 현실에서 간절히 바라는 모습이기도 했다. 순수함. 본래의 인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잊지 않으려는 노력으로, 인간답지 못한 상황을 버텨냈고 견뎌갔다.
은폐되었던 과거를 펼치고 기록해야하는 가치를 고민했다.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책을 읽었다.
봉쇄된 도시, 도서관은 창문을 열어주었다.
공간, 생각을 합하는 무기
그들에게 도서관은 책을 보관하는 곳이 아니라, 책으로 생각을 합하는 곳이었다. 도서관은 엄연히 공간으로 존재하며 개관 시간, 반납 날짜, 정숙과 공유에 대한 공간 규칙을 가졌다. 청년들은 사람들이 도서관에서 책 너머 생각을 읽고 합할 수 있기를 바랐다. 이를 위해 다양한 책을 토대로 강연과 토론을 진행했다. 한 주제에 대해 어떤 사람은 정부를 비판했고 다른 사람은 자기 자신을 반성했다. 그 작은 도서관에 모인 사람들조차, 자유를 위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달랐다. 개인과 민주주의는 무엇이며, 평화란 어떤 상태인지. 어떤 것을 절망이라고 부르고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한계점은 어디인지. 그리고 이토록 두려운 상황에서 계속 살게 하는 것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다름은 문제가 아닌 기회가 되고, 서로 다른 생각은 끝없이 희망을 만들어냈다. 도서관에는 새로운 규칙이 생겼고 목표가 적혔다. 책 속 문장은 담벼락의 그래피티로, 흙으로 빵을 만드는 아이들의 연극은 영상으로 담겼다. 자유로운 표현은 예술이 되고 서로에 대한 존중은 문화가 되어갔다.
기록, 살아남을 유일한 이야기
책을 읽는 곳은 곧 책을 쓰게 한다. 아흐마드와 친구들은 2015년 도서관에서 격월간 잡지의 발행에 성공한다. 열악한 상황에서 복사본 형태로 제작된 잡지는 식량난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 플라스틱을 태워 가정용 증유 만들기, 빗물을 식수로 바꾸기 등 주로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실질적인 내용들이 적혔지만 영화나 스포츠와 같이 전쟁과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도 다루고 있었다. 게다가 잡지의 마지막 즈음 별자리 운세와 십자말풀이는 여느 잡지와 같은 구성이었다. 사람들이 책으로 얻고 싶은 것은 특별한 지식과 함께 일상의 농담과 인생의 의미라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가는지, 도서관은 알고 있다.
매일 수십여 개의 폭탄이 떨어지고, 전력과 수도 공급이 중단된 곳. 다라야의 도서관은 살기 위한 곳이었다. 재난과 전쟁을 이겨낸 역사, 희망과 미래를 꿈꾸는 인간,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공간. 이들이 어우러진 도서관은 국가보다 단단하고 도시보다 안전한 곳이 되었다. 다라야의 도서관은 문을 닫았지만, 살아남은 청년들은 시리아의 북부 이들리브에서 도서관 버스를 개장해 여성과 어린이를 위한 책을 제공했고, 다라야의 도서관 이야기는 전 세계의 도서관에 책으로 놓이게 되었다. 책, 공간, 문화가 서로를 통해 확장하는 것처럼 끝없이, 끝없이.
"그 폐허 속에서 아흐마드는 종이로 된 요새를 구축해냈다. 바로 다라야의 비밀 도서관이었다."
"그들은 책에 의지하고, 말이 지난 마법 같은 힘을 믿으며, 글의 유익함을 신뢰했다.“
-책 속에서
이해로 좁히는 거리, 이해로 넓히는 세상
전쟁 같은 날은 언제일까. ‘이해’가 없는 날이 아닐까.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 때 균열이 생기고 관계에 금이 간다. 한번 그어진 금은 놀라운 속도로 번지며 평온을 깨트리고 곳곳에 고립을 만들기 시작한다. 이때, 서로의 언어를 꿰어가며 이해로 기워가는 곳이 도서관이다. 다양한 배경을 읽고 서로의 사전을 펼칠 수 있는 곳, 다르다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 곳, 이해라는 것을 나눠갈 수 있는 곳, 그래서 문화와 가치를 함께 지어가는 곳. 도서관은 이해의 접점이다.
다라야의 사람들이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 책을 읽었듯 우리 또한 지난 시대와 이념을 도서관에서 읽어낼 수 있다. 도서관에서 시대 별로 많이 대출된 도서를 살펴보면, 그 시대를 애써 잘 살아가고자 노력했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본보가 도서관 빅데이터 분석 시스템이 1999년부터 도서 대출 9억6600만 건을 분석한 결과, 지난 20년간 이뤄진 가장 많이 읽은 책은 전쟁과 이념의 갈등을 다룬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으로 나타났다. 또한, IMF 이후에는 인간의 강력한 의지로 삶을 일구어 낸 ‘오체 불만족’, 2000년대 초반에는 풍부한 상상력이 기반이 된 '다빈치코드'와 ‘나무’가 있었다.
또한, 국립중앙도서관에 따르면 최근 10년 간 전국 1003개 공공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대출된 어린이 책은 ‘틀려도 괜찮아’였다. 교사 출신의 작가가 쓴 책은 ‘학교란 틀려도 되는 곳’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2위는 박은봉 역사학자의 ‘한국사 편지’ 그 뒤로 권정생 작가의 ‘강아지똥’이 있었다. 지금 이 시대의 아이들이 궁금해 하는 것과 어른으로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알아갈 수 있다. 이 외에도 서로 다른 지역의 도서관은 그 도시만의, 그 시대만의 기록을 갖고 있다. 사람들이 만들어 낸 도서관의 기록으로,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
무너져 내린 일상은 더 견고한 역사로 일어설 것이다.
도시는 파괴해도 도서관은 파괴할 수 없다.
우리의 곁에 도서관이 있다.
책 뿐 일까. 도서관 프로그램은 생각을 합하고 문화를 이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최근 코로나19로 세계의 도서관은 저마다의 작은 창문을 열었다. 서로 다른 생각을 초대하고 이를 세계로 연결하고자 했다. 미국 오하이오 주의 콜럼버스 메트로폴리탄 도서관은 주민들이 도서관 주차장에서 와이파이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며 사람들 간의 디지털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을 했고, 테네시의 마샬 메모리얼 도서관은 어린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이벤트를 화상으로 진행했으며, 캘리포니아 엘도라도 카운티 도서관은 주민들이 온라인으로 접속하거나 전화를 걸어 재난 속에서도 책을 빌릴 수 있도록 했다.
오랫동안 도서관은 책을 빌리는 장소 이상이었다. 아이에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생각을 모으고 마음을 합하는 곳이었다. 재난과 전쟁의 상황에서 도서관은 종이로 성벽을 쌓아올린다. 가장 안전한 방법으로 머무는 사람들의 생각을 합하고, 경계 너머 사람들과 새로운 대화를 나누게 한다.
재난의 시대, 도서관은 어디에 있는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에 도서관이 있다. 대단한 방법으로, 또는 평범한 방법으로. 언제든 갈 수 있는 거리에, 어떻게든 닿을 수 있는 방법으로. 이토록 뭉클한 적이 있었는가. 우리의 일상에, 도서관이 있다.
월간 국회도서관 6월호에 게재된 글이며, 매월 Culture 문화로 만나는 도서관을 기고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