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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롱 Sep 15. 2020

잠시 다녀온 여행  


약 3~4년 전, 욜로(YOLO)라는 유행어와 함께 여행 열풍이 불었다. SNS 활동이 활발한 젊은 층에서 여행은 다양한 형태의 콘텐츠로 소비되었다. 사진으로, 혹은 영상으로, 여행을 잘 담아낸 자들은 '여행 크리에이터'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소개하기도 했다.

한 때 '여행 크리에이터', '디지털 노마드', '여행 작가' 이렇게 새로이 소개되는 직업들이 어찌나 매력적이고 멋져 보였 던 지. 적어도 나의 환상 속에서 그런 직업을 가진다면 아침에 일어나 에스프레소 한 잔과 샌드위치 하나를 입에 물고 노트북을 챙겨 카페에서 글을 쓰거나, 업무를 하거나 할 것만 같았다. 물론 살랑살랑 부는 바람과 여유로운 마음은 덤이다.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지만 애써 무시하며 상상 속의 모습들을 지켜내며, 반드시 나도 언젠가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으로부터 벗어나겠다는 큰 목표를 세웠다. '음, 만약 하게 된다면 여행 작가가 제일 고상하고 여유로울 것 같아.'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이번 연도부터 대유행하기 시작한 바이러스로 앞으로 여행이 가능할지조차 모르게 되었다. 마음속으로 그려오던 나만의 꿈이 멀어지는 것만 같아 마음이 뒤숭숭해졌다. 그래도 사람은 단순한 것이, 너도 나도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떠날 때는 참 부럽다가도 막상 아무도 여행을 간다는 소식이 없으니 원래부터 여행을 꿈꾸지 않았던 사람처럼 더 이상 원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그냥 산다. 물론 입버릇처럼 "아 - 여행 가고 싶어."라고는 몇 번 했던 것 같다. 그러나 한동안은 이전처럼 사진첩을 뒤지거나, 비행기표를 알아보거나 하며 적극적으로 목표하진 못했다.


그렇게 여행이란 단어에 무뎌져만 가던 어느 날,  밤 9시가 넘어 버스를 타고 한강 다리를 건너던 중이었다. 생각해보니 최근엔 한강을 지나더라도 주변을 둘러보지 못했고, 밤에 왕래할 일은 더더욱 없었다. 그날도 한강 위를 지난다는 걸 알면서도 눈길조차 주지 않다가, 여의도 부근이었나 보다. 새하얀 불빛이 반사되는 국회의사당과 주변 아파트 불빛이 어우러진 모습과 마주했다. 신기하게도 그 모습을 보자마자 부다페스트의 국회의사당을 떠올렸다.  불빛의 색도, 생김새도 다르지만 아마 물에 반사된 반짝임들이 모여 낭만적인, 그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그저 건축물일 뿐인데도 이상하게 오래 쳐다보게 되던 그 느낌.


부다페스트의 야경을 처음 마주했을 때처럼, 한강 위에서 은은한 빛을 뿜는 국회의사당과 아직 잠에 들지 않은 도시의 모습들이 합쳐져 순간적으로 정말 이국적으로 느껴졌다. 마치 여행을 와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그 감정이 너무나 오랜만이라 멈춰 서서 한참을 바라보고 싶었다.

고고한 건물은 그 자체로 빛을 뿜어내어 침착하고 어딘가 무거움이 느껴지는데 , 그 옆의 다른 한편은 깜깜한 밤에도 쉽사리 불이 꺼지지 않아 활기차다. 이런 대조적인 분위기는 아직까지 어떤 나라에서도 느껴보지 못했던 우리만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부다페스트의 그 감탄했던 모습보다도 아름다웠다.


빠른 속도로 달려가는 버스 안에서 고개를 돌려 국회의사당을 다시 한 번 돌아봤다. 여느 여행처럼, 나는 그 순간을 기록하고 싶고 떠나기 아쉽고 그런, 일련의 감정들이 들었다. 새삼스레 밤에 보는 국회의사당 하나에도 이렇게 여행을 다녀오는구나, 나 여행이 가고 싶은가 보다. 하는 생각들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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