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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롱 May 11. 2021

영화 트루먼쇼를 괜히 보았다.

여운이 너무 오래가는 거 아닌가

이 글은 영화에 대한 견해나 리뷰가 아닙니다 :)  





<트루먼쇼>를 감상한 지 약 4~5년이 흘렀을 것이다.

심지어 아주 좋았던 영화임에도 반복해서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딱 한 번 보았다.

제목 그대로, 괜히 봤다고 할 수도 있고 어쩌면 한 번 본 게 다행일 수도 있다. 

너무 인상 깊어서 자꾸 생각나기 때문이다. 

만약 <트루먼쇼>를 보지 않았다면 스포가 될 수 있다. 

.

.


영화 <트루먼쇼>에서, 주인공을 둘러싼 모든 것들이 '미지의 큰 존재'에 의해 연출된 '쇼'임을 알았을 때

주인공과 함께 느꼈던 그 오싹한 기분이 있다. 아마 영화를 본 모두가 공유하는 감정일 것이다.

영화는 단편적으로는 미디어에 대한 비판 의식을 다루고 있지만, 

좀 더 확대된 관점에서는 주인공을 조종한 주체를 '전지전능한 누군가'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미지의 큰 존재 = 신'에 의한 만들어진 캐릭터일 뿐, 그들의 디테일한 설정들로

나라는 사람의 인생이 생겨났고, 그들이 만든 틀 안에서 그냥 살아가는 작은 존재 아닐까...


영화를 본 이후부터 그 이상한 기분을 현실 세계의 다양한 상황에서 마주하곤 한다. 

그리고 한 번 느끼기 시작하자 아주 잦게 찾아오는 기분 중의 하나가 되었다. 


이 공포스러운 기분을 느낄 때마다 

휴대폰을 꺼내 들고 메모장에 주저리 주저리 감상을 적었었다. 

감상은 대체로 비슷했고 느끼는 감정을 가장 잘 표현할 만한 단어는 

'무력하다' 

이 단어가 굉장히 적합했다. 




< 메모 발췌 > 


- 자전거를 타다가


사람들이 달리고 뛰고 자전거를 탄다. 또는 정자에 가만히 앉아 사색에 잠겨 있다. 

계속해서 새로운 사람들이 생겨났다가 시야에서 사라짐을 반복한다.

이 세상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는걸까? 

그리고 다들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나의 뇌 하나에서도 수많은 생각이 교차하는데, 새삼 각자 활동을 하고 있는 수만가지의 뇌들을 보며

내 뇌의 활동이 우둔하고 미련하게 느껴졌다. 



- 응봉산 팔각정에서 


아주 멋진 야경을 보았다. 서울에 이런 곳이 있는지 몰랐다.

내가 있는 곳에서 몇 걸음만 노력해 걸어 올라가면 

눈 앞에 전혀 다른 광경이 펼쳐지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와 같은 사색의 시간들

옆의 연인이나 친구, 가족과 나눈 소중한 이야기들

카메라로 서울의 야경과 자신을 함께 담은 이들 

실연, 실패, 다양한 아픈 감정들 

.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추억과 기억이 이 곳을 스쳐 지나갔을까 

수 많은 이들의 흔적 속에서 내가 지금 하는 이 고민은 정말로 중요한 문제일까?

이 세상 모든 이들은 트루먼쇼의 주인공일 뿐인데, 

그렇다면 나의 고민은 그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이야기일 뿐

멀리서 보면 너무나 사소하고 얼마든지 뒤엎을 수 있는 쉬운 문제일 것이다. 





사람이 많은 공간에 있거나 자연과 함께일 때면 으레 이런 기분이 든다. 

수백, 수천 년 전의 사람들과 현대인들이 공유할 수 있는 감정이 있다면 아마도 이 기분일 것이다. 

세상은 너무 크고 나는 아주 사소하지만

불필요하게 똑똑하고 복잡한 존재여서, 세상에 티도 안 나겠지만 부단히 노력하고 애를 쓰며 살아간다. 


이 기분은 참 오싹하고 별로인데, 싫지만은 않다.   

부정적인 기분이지만 달리 생각하면 어차피 나라는 존재는 작고 무딜 뿐, 

조금 더 애쓰고 튄다고 한들 누가 신경이나 쓸까 - 

그저 지금 이 순간 만족하고 스스로 의미있다고 여기는 것들을 하며 살아간다면

다 괜찮을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 들어 버려서, 또 좋다고 헤헤 한다. 

인간은 참 단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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