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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롱 Nov 24. 2019

잠깐 스쳐간 그 사람

나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지.






 우리는 사회 활동을 통해 수많은 인연을 만들어간다. 그 중 어떤 이들은 평생까지는 아니더라도 꽤 오랜 시간을 함께하게 되기도 하고, 생각지도 못하게 깊은 사이가 되기도 한다. 나는 이 과정이 정말 흥미롭다.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만난 인연이 내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된다는 게.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짧은 인연 또한 나의 인생에 무거운 한 마디를 남기고 떠나기도 한다.


약 2년 전 만난 그 남자에 대해서 쓰고 싶었다. 정확히 말하면 두 번 만난 게 다였지만, 당시 우리는 꽤 잘통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나와 같은 곳에 머물 수 없는 사람이었다. 남녀의 끌림과 함께 인간적으로 그이에게 매력을 느꼈다. 모든 호감 가득한 만남이 그렇듯이, 처음 시작부터 끝까지 입가에 미소를 띄고 있었다. 배가 아플 정도로 깔깔대고 웃었고, 마치 '비포 선라이즈'의 두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이런 시간이 내 인생에서 존재한다는 게 신기했고 모든 순간을 다 기억하고 싶었다.


" 참 이상해. 우린 두 번 밖에 만나지 않았는데.. "

" 뭐가 이상해? 난 전혀 이상하게 느끼지 않는데. "


 그 날이 우리의 마지막 밤이었고, 그 역시 예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좋았고, 그냥 좋았지만 말 그대로 잠깐 스쳐갈 인연인을 직감했다. 우리는 최대한 미래를 배제한 대화를 했는데 그 기분은 정말 이상했다. 서로를 향한 강한 이끌림은 있었지만 그저 순간에 집중해야 하는 사이였기에 더 멋졌다. '연락은 자주 하는 스타일인가?', '갈등이 생기면 어떻게 풀어나가는 사람일까?' 등의 깊은 생각은 필요없었다.


 그와 나는 그날 밤 쉴새없이 대화했는데, 우리는 스티브 잡스, 가상 화폐, 소셜네트워크의 가치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단 한번도 이런 이야기를 이성과 나눠본 경험이 없었다. 그는 나보다 어렸지만 그 때 난 뭔가에 홀린듯이 그가 성숙하고 멋지게만 보였다. 그는 자신이 SNS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 남들이 입고 먹는 것, 그걸 내가 왜 지켜봐야하지? "

간단한 이유였다. 우리는 이 사실을 알고 있지만 나도 모르게 남들과의 연결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박탈감을 느끼기도 한다. 사실 이 과정에서는 굉장히 많은 감정 소비가 일어남에도 우리는(나는) SNS를 놓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난 내 프라이버시를 사랑해."  

 나의 사생활을 사랑한다는 표현은 들어본적도, 생각해 본적도 없었다. 내 생활을 사랑하는 것, 그것은 나를 사랑하는 행위이자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최근 나는 특히 인스타그램에 중독되어 있었다. 타인의 일상을 지켜보는 것은 왠지 매력적이었다. 틈만 나면 인스타그램 스크롤을 내리고 있는 내 자신에게 문득문득 화가 났었다. 그런 상황이다보니, 더 충격적이었던것 같다. 몇 년이 지난 뒤 생각해 보니 그 날 참 그 아이가 멋진 척을 열심히도 했구나 싶지만, 어렸던 나는 그 소신있는 발언이 참 멋있어 보였나보다.



 그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뤄왔던 업적들,  지금 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방향성,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에 대한 확고한 신념 등은 내 자신을 부끄럽게했다. 어느 누군가의 가치관이 내 안으로 깊이 파고들어올때, 나는 그 관계에 대해 희열을 느낀다. 이번도 그런 경우였다. 어쩌면 그와 진한 사랑을 나눌 사이가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제 하루가 너무 좋아서, 만약 그와 나의 관계가 깊어진다면 어제와는 같을 것 같지 않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나는 지금 이 순간의 감정을 잃고 싶지 않기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날 그와 나눈 모든 것들이, 나에게 감명을 주었다면 그걸로 되었다. 짧은 인연이어서 더 소중했던 기억으로 남는다면, 그것에 더 감사한다. 아쉬움도 인연의 일부분이니까.. 라고 하며 아쉬움을 한 번 더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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