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6: 《내 아이는 조각난 세계를 삽니다》 (윤서 지음)
아침에 4알 저녁에 12알. 두 달에 한 번 주사. 하루 12시간 수면. 졸음이 쏟아지는 부작용 때문에 리보트릴 용량을 줄이자 불안에 사로잡힌다. 환청 때문이다. 다시 용량을 늘린다. 꼼짝달싹할 수 없는 불안은 잦아들지만 몸이 무겁고 아침에 일어나지 못한다. 달라진 복용량에 적응하려면 또 시간이 걸린다. 이렇게 저자의 아들 나무 씨는 18년째 줄을 고른다.
조현병. 고를 조調, 악기 줄 현絃. ‘현악기의 줄을 고르다’라는 뜻이다. 정신분열병이라는 이전 명칭이 일으키는 낙인과 편견 때문에 2010년 11월에 개정된 병명이다. 현악기를 조율하듯 치료를 통해 환자의 뇌신경망을 적절히 조율해 정상적인 생활을 이룬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조현병은 1개월에서 6개월까지 환청, 망상 등의 주요 증상이 둘 이상 지속할 때 검사 결과와 관찰 소견을 종합해 전문의 2인 이상이 진단한다. 인구 100명당 1명이라는 유병률을 꾸준히 지켜온 흔한 질병이지만, 헛것을 보고 헛소리를 듣는다는 비현실적인 증상 때문에 사람들의 인식은 매우 나쁘다.
나무 씨는 초등학교 6학년 어느 날, 엄마가 가짜라는 망상에 사로잡혔다. 집 밖에서 나쁜 사람들이 나오라고 말하는 환청도 들었다. 발병 두 달 만에 폐쇄병동에 들어가면서 조현병과 동거하기 시작했다. 그 후로 소아정신병동을 자주 오갔고, 꼬박 3년 6개월이 지나서야 맞는 치료제를 찾았다. 또래들이 고등학교 3학년이던 2014년에는 일본에서 자전거전문학교에 다니다가 임의로 약을 끊은 탓에 병이 재발해 도쿄 정신병원에 입원해 전기경련치료를 받기도 했다. 그렇게 나무 씨는 스트레스 정도와 심리 상태에 따라 수시로 강도가 달라지는 망상과 환청을 겪어내며 서른 살이 되었다.
자신을 가짜 엄마라며 “엄마 내놔!”라고 소리 지르는 아들을 보고 엄마는 그만 수도승이 되었다. 아들의 첫 입원 1년이 지났을 때, 저자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머리를 다 밀었다. 신을 원망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두려움을 떨쳐내고 평정심을 찾으려 했던 것이다. 그 뒤로 꾸준히 아들의 병을 알아가고, 여러 커뮤니티의 도움도 얻어가며 자신도 줄을 고르는 삶을 살기 시작했다. 점점 아들과 건강한 거리를 두려고 노력했고, 증상과 환자를 분리해서 보려고 애쓰며, 아들을 돌보는 자신을 돌보는 데 공을 들였다.
환청과 망상이 찾아와도 기질은 유지되었다. 나무 씨는 발병 전에 왕성했던 호기심대로 지금도 끊임없이 움직이고 모색한다. 컴퓨터, 자전거 정비, 바리스타 교육, IT 교육 등 조현병을 지닌 채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약속을 잡아 두었는데 불안이 밀려들 것 같으면 상대에게 솔직히 말하고 집에서 쉬면서 자신을 돌볼 줄 안다. 2024년 여름에는 유튜브 채널 ‘씨리얼’의 인터뷰 제안에도 응해 카메라 앞에서 진심을 꺼내놓기도 했다. 환청이 들리지만 이젠 그 소리에도 불안하지 않다고.
줄을 고르며 보낸 18년이라는 시간은 나무 씨 자신과 가족들을 바꿔놓았다. 저자는 아들의 질병과 함께 살아가면서 고통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고 적었다. 그리고 조현병을 앓고 있는 가족을 둔 독자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우선 그를 사랑하는 마음을 기억하세요. … 그를 돌보는 당신을 돌보세요.” 반 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조언은 오랜 겪음과 수련으로 고도의 경지에 오른 수도승의 고백 같았다.
일부러 책을 덮을 때까지 ‘씨리얼’에 게시된 영상을 보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영상을 보고는 몹시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조현병 환자는 음침한 분위기를 풍길 거라고 지레짐작했는데 나무 씨 인상이 너무 밝고 친근했기 때문이다. 이 병에 대한 고정관념이 이토록 뿌리 깊다. 내 생각들도 꾸준히 줄을 골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무 씨와 그 가족의 일이 곧 내 일이 될 수도 있는 까닭이다.
그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링크를 걸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