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죽었고 나는 살았다

서평 8: 《남편이 자살했다》 (곽경희 지음)

by illa mulier

남편이 아내 생일에 자살했다. 이혼하기로 한 전날이었다. 떠나겠다고 할 때마다 ‘자살’ 카드를 꺼내 들던 남편이었다. 자살 며칠 전에는 아내의 강력한 이혼 요구에 손목을 긋고 상처를 찍어서 보내기까지 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남편은 제멋대로 하고 뒷감당은 고스란히 아내에게 떠넘기고 가버렸다. 고3, 중3, 초4, 초1, 이렇게 아이가 넷이었다. 저자는 남편의 죽음 앞에서 슬픔보다 원망에 휩싸였다. “이게 뭐야! 적어도 이건 아니잖아! 이 개자식아!”


남편은 알코올 중독자였다. 중학교 때부터 술을 즐겼고 대학 때 이미 중독 상태였다. 오랜 지병도 있었다. 군 복무 중에 몸이 나빠지더니 결국 ‘베체트병’이라는 희귀난치성 질환으로 판정되었다. 저자는 환자가 그렇게 술을 즐기는 것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결혼하자 사정이 달라졌다. 아이가 늘수록 아내만 정신없이 바빠졌고, 남편은 마냥 술이었다. 환자의 평균수명이 마흔 살이라는 지병을, 그것도 알코올 중독자가 털어놓았는데 저자는 어떻게 결혼을 결심했을까?


스물셋에 결혼한 저자는 평생 엄마의 폭언과 폭력 속에 컸다. 그 지옥에서 벗어나고 싶어 대학 때 처음 사귄 남자와 결혼을 결심했다. 성인이 되기까지 자신이 소중한 존재라는 생각을 전혀 해보지 못한 채, 그저 자신을 때리지 못할 병든 사람을 무의식적으로 찾고 있었던 것이다. 반대로 남편은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폭력을 쓰는 것을 보고, 자기 역시 아버지의 끝없는 비난을 받으며 자랐다. 아들이 불쌍했던 어머니는 그를 과잉보호했다. 이렇듯 저자와 남편은 온전히 성숙하고 독립된 인격체로 만나지 못했다. 남편은 버둥거리다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고, 아내는 아이 넷과 홀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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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라도 붙잡고 하소연하고픈 마음에 정신과에 찾아갔다. 차분히 듣던 선생님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이야! 한 방 먹이고 갔네!”라고 소리쳤다. 처음으로 내 편에서 남편을 욕해주는 사람이 생기자 속이 후련해졌다. 이렇게 객관화 작업이 시작되었다. 집단 상담에서는 비슷한 혹은 더한 상처를 안고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동지애를 느꼈다. 조금씩 회복되는 엄마를 본 아이들은 이렇게 말했다. “엄마, 매일 세미나 다녀오셔도 돼요. 우리끼리 학교 잘 다녀올게요.” 내가 온전해져야 내 사랑도 온전해지는 법이다.


상담의 도움 속에 무의식을 의식화하며 과거의 실타래를 풀어내자 잘못된 생각의 함정에서 차츰 빠져나왔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남편이 잘해주었던 일들을 하나둘 떠올리게 되었다. 사업이 망했을 때도 “이럴 줄 알았으면 당신 옷이나 더 많이 사놓을걸.”이라며 웃었고, 아무리 다그쳐도 화내지 않았고, 아주 가끔 둘만 외식을 나갈 때면 좋은 음식만 먹여주려 했다. 아이들 앞에서도 늘 아내를 먼저 챙기는 남편이었다. 그 모든 게 그의 사랑 표현이었다.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의 사랑을 보지 못했기에 알아주지 못했다.


남편이 떠나고 3년 뒤, 네 아이와 함께 가족 치유 캠프에 참여했다. 저자의 사정을 알던 선생님은 아이들을 보라며 “남편이 당신께 선물로 주고 간 아이들입니다.”라고 했다. 현실이 힘겨울 때마다 아이들이 남편의 짐처럼 느껴졌는데 이제는 아이들이 선물 보따리로 보였다. 온 가족이 끌어안고 소리 내어 울고, 캠프에 참여한 모든 사람도 함께 울어주었다. 남편이 떠난 지 5년, 저자는 이제 자살 충동, 알코올 중독 문제를 가진 중년 남성 그리고 자살 유가족을 상담하겠다는 꿈을 안고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책 초반부에는 멋대로 살다가 멋대로 가버린 저자의 남편에게 덩달아 분노가 솟구쳤다. 그렇지만 중반을 지나 끝부분에 다다를 즈음에는 세상 누구보다도 나라는 존재가 온전히 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건강한 마음을 지키려고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더불어, 지금 내가 받고 있는 이 큰 사랑, 나의 일상을 점점이 수놓고 있는 이 사랑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당연한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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