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책임이 없어요

서평 9: 《어느 독일인의 삶》 (브룬힐데 폼젤 지음)

by illa mulier

2013년, 나치 선전부 장관 괴벨스의 비서로 일했던 브룬힐데 폼젤(Brunhilde Pomsel)이 70여 년의 침묵을 깨고 대중 앞에 자기 삶을 꺼내놓았다. 미화도 윤색도 없는 담담한 고백이 고스란히 다큐멘터리 영상에 실렸고, 이 이야기를 연대순으로 정리한 내용이 책으로 발간되었다. 3년간 나치 협력자로 살았던 자기 삶에 대한 그녀의 총평은 이것이었다. “난 책임이 없어요. 어떤 책임도 없어요.”(p.206)


다섯 남매의 맏딸이자 외동딸로 자란 폼젤은 엄한 가정에서 많은 짐을 떠안고 자랐다. 사무실로 출근하는 부인들을 선망하던 폼젤은 상업고등학교를 나와 서점, 보험중개사 사무실 등에서 일했다. 한때는 유대인과 나치당원의 사무실을 오가며 일하기도 했는데 이런 이중생활도 꺼리지 않았다. 실업자가 널린 시절에 일이 있다는 사실이 감사할 따름이었다. 알음알음으로 방송국에 들어가게 되었고 결국 1942년에 괴벨스의 부처로 이동했다. 일은 별로였지만 남들보다 나은 형편이 만족스러웠다. “약간 선택받은 느낌이었어요.”(p.92)


주변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일들에 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처음으로 <강제 수용소>라는 말이 나왔을 때도, 자신의 유대인 친구들이 하나둘 사라졌을 때도, 유대인 가게 수만 곳이 약탈당하고 유대인 사원에 방화가 일어났을 때도 폼젤은 이내 자기 일상에 주의를 기울였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삶이 점점 마비되는 와중에도 추가로 배급받는 물품에 만족하면서 얌전하게 순응하고 지냈다. “우리는 많은 것을 알려고 하지 않았어요. 그런 일로 괜히 심적인 부담을 안기도 싫었고요.”(p.107)


나치 정권이 몰락을 향해 치달을 무렵, 폼젤은 최후의 나치 추종자들과 선전부 지하 방공 대피소에서 버티기로 했다. 살고 싶었다. 전쟁 때문에 죽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던 중 건너편에 있던 총통 벙커에서 히틀러가 자살했다. 하루 뒤에는 총통 벙커에 있던 괴벨스가 자녀들을 죽인 뒤 부인과 함께 자살했다. 이때를 회생하던 폼젤은 그토록 고약하고 나빴던 일들을 극복한 자신이 대견하다고 했다. “그저 난 항상 의무감이 투철한 사람이었어요. ... 당시 난 항상 이렇게만 생각했어요. 휴, 아직도 목숨이 붙어 있구나.”(pp.167-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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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러시아군이 들이닥쳤다. 체포된 폼젤은 선전부에서 일했다고 순순히 털어놓았다. 자기는 선전부의 하찮은 여직원이었을 뿐, 괴벨스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반복해서 말했다. 더러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폼젤은 심문 때마다 답변이 달라질 것을 우려해 항상 진실만 말했다. 체포 후 소련의 특별 수용소 2호에 수감되었던 폼젤은 5년 뒤에 석방되었다. “어쨌든 난 자살은 생각지도 않았어요. … 오히려 저 사람들이 나를 이제 집으로 보내 줄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어요.”(p.175)


고향으로 돌아간 폼젤은 새로 생긴 방송국의 비서로 채용되기도 했지만, 나치라는 꼬리표 때문에 쥐트베스트 방송국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상황을 두고서도 폼젤은 자기가 늘 운이 좋은 편이었다고 말했다. 한편, 나치가 저지른 그 끔찍한 일들은 석방된 뒤에야 제대로 알았다면서 그것을 몰랐던 것은 자기 책임이 아니라고 말했다. 어리석었다는 면에서는 책임이 있겠지만 동조자는 아니었다고 했다. “우리는 그저 시대에 끌려다녔을 뿐이에요! 우리 의지와는 무관하게.”(p.180)


폼젤은 나치 선전부에 기대어 살았던 자신의 기회주의를 솔직하게 인정한 보기 드문 사람이다. 그런데 선전부 속기사라는 그녀의 위치에서 정말 사태의 진실을 알 방법은 없었을까? 중대한 현실을 외면할 만큼 자기 앞가림에 치중한 그녀의 고백을 읽으며, 내 안에도 웅크리고 있을 무관심과 수동성을 의식해 보았다. 나 역시 어느 순간에는 얼마든지 나를 합리화하고 그 토대 위에서 ‘떳떳하게’ 행동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2017년 1월 27일, 브룬힐데 폼젤은 10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유엔이 정한 국제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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