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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은 언제까지 해도 되는 걸까?

찰떡 직업을 찾는 모험 ep.45

by 일라

요즘 직장에서 일하는 에피소드들이 올라오는데 왜 '찰떡 직업을 찾는 모험' 시리즈가 끝나지 않을까?

그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이 직장이 올해 12월까지만 하는 짧은 계약직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12월이 지나면 다시는 뒤도 돌아보지 않을 직업이라는 것이다.

퇴사일이 다가올수록 시간이 안 가 겨우 하루를 버텨가며 시간이 더 빨리 흘러가길 바라고 있다.


일이 재미없다는 말을 주변에 하면 일을 누가 재밌어서 하냐는 말을 한 번은 꼭 듣게 된다.

예전에는 이런 핀잔을 들으면 내가 참을성이 너무 없나 하고 반성했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반문한다.

대체 재미없는 일을 왜 오랫동안 참으면서 해야 하냐고.


사람마다 재미를 느끼는 일이 다르다는 걸 새삼 깨달은 일이 있었는데, 얼마 전 같은 팀의 한 동료랑 밥을 같이 먹게 되었다.

계약이 종료되면 앞으로 뭘 할 건지 얘기하고 있었는데, 동료는 지금 회사의 일이 재밌어서 계약 기간이 더 길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회사를 다니며 처음 들어본 얘기라 충격과 흥미가 동시에 생겼다.

어쩐지 그 동료를 볼 때마다 열정이 느껴진다 했는데 실제로 일에 재미를 느끼고 있었던 거였다니.


동료는 원래 해오던 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아 대학원을 졸업한 후에 전공과 전혀 다른 일을 했다고 말하면서, 뒤늦게 방황을 시작해 더 빨리 직업에 대한 고민을 하지 못한 게 후회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도 몇 년 전 퇴사를 하고 나서 기대와 불안에 절여져 있던 나날들에 대해 말해줬다.

우리의 결론은 비록 조금 늦게 방황을 시작했더라도 나중에 더 나이가 들고 책임질게 많아졌을 때보단 지금이 더 빠를 거라는 거였다.


나에게 맞는 일을 찾는 방황은 언제쯤 시작하는 게 적절할까?

또 언제까지 끝내는 게 좋은 타이밍일까?


지금까지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결론을 내려보면 답이 없다.

40대에도, 60대에도 진로 고민은 일어날 수 있고, 시작된 진로 고민이 언제 끝날지는 사람마다 달라 하나의 답을 내릴 수가 없다.

그래도 내가 어렸을 때보다는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을 찾기 위해 도전하고, 사회에서 유명한 혹은 인정받는 직업이 아니더라도 도전해 보는 사람들이 더 늘은 것 같다.


나도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의 계약기간의 끝이 다가올수록 앞으로 뭘 하면서 살지 고민이 늘어난다.

내가 지금까지 재미있다고 느낀 순간이 있는 일이 뭔지 떠올려보면 심리상담, 자조모임 퍼실리테이터, 미술 관련 워크숍 진행, 캐릭터 그림 그리기가 있었다.

이 일들의 공통점을 뽑아보면 창조적인 일이라는 점이 아닐까.


심리상담은 다양한 심리치료 이론들을 바탕으로 각 내담자에게 어떤 방향이 잘 맞을지 고민하고 적용해 보며 내담자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다.

자조모임 퍼실리테이터는 참여자 분들과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나도 내 작업물을 만들 때가 있고, 참여자 분들과 소통하면서 묘한 에너지를 얻곤 한다.

그림 그리기와 미술 워크숍은 이름에서부터 창의적인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짐작해 볼 수 있다.




놀랍게도 지금의 재미없는 직장을 다니면서 생긴 장점이 하나 있다.

맨날 재미없다고 불평하지만 내게 주어진 일들은 책임감을 가지고 성실하게 처리하고 있어서, 새로운 영역의 일을 해냈다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다니는 곳은 인수인계 문서가 있긴 하지만 인수인계를 직접 해줄 사람이 없어서 참고할 양식이 없으면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야 하는데, 그래서 다음에 새로운 곳을 가도 거기서도 해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붙었다.

또,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가다 보니 올해가 끝나고 나서 바로 새 직장을 구하지 못한다 해도 덜 불안해졌다.

일이 바쁘고 회사일 외에도 여러 일들을 동시에 진행하다 보니 돈은커녕 휴식 시간만 주어져도 눈물이 날 것 같다.


그래도 돈을 버니까 좋은 점은 누군가에게 뭘 사주거나 돈을 내야 하는 일이 생겼을 때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는 점이다.

작년 가을부터 결혼 준비를 하면서 모아둔 돈이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월급을 받으니 '또 벌면 되지'라며 마음을 좀 더 편하게 먹게 되었다.

심지어 내 결혼식 날을 위해 팩을 사 열심히 붙이던 엄마에게 피부관리 샵도 예약해 드렸다.

엄마가 얼마냐며 넌지시 걱정을 내비쳤지만 한 번 정도는 가능하다며 밀어붙여 예약을 했다.


지금 가장 필요한 건 아마 '될 대로 되라지'라는 마인드겠지.





찰떡 직업을 찾아 모험하는 강아지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www.instagram.com/illam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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