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의 기억을 이어가는 도서관

EP07, 구산동 도서관마을, 디자인그룹OZ

by 건축에세이 일렁

[Prologue]

탈매립의 건축은 기존의 토대를 무시한 채 새롭게 짓는 것이다. 이는 문맥과 유리된 건축이다. 반면, 재매립의 건축은 장소가 가진 시간의 켜를 보존한다. 도서관 마을은 재매립의 건축으로서 표준화의 공간이 아닌, 익숙한 동네에 새로움을 더한 장소로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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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마을 안의 마을]

도서관은 기존의 주택들과 골목 조직을 활용하여 만들어졌다. 기존 주택 3채의 55개 방들은 열람실이 되고 골목은 서가가 되었다. 마을의 일부가 건물에 담겨 기억이 연속되는 장소로 변화한 것이다. 이들을 노란 치장벽돌 커튼월이 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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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 현재의 모습

치장벽돌 커튼월은 기존의 주택과 대비된다. 때문에 도서관이 하나의 큰 건물이 아니라 여러 주택들의 군집처럼 보여 주변 스케일과 어우러진다. 창문의 크기 또한 주변 건물들을 참조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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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어귀]

출입 홀을 지나 펼쳐지는 북 카페의 풍경이다. 전화부스와 독립서점 캐노피의 연출이 더욱 마을 어귀처럼 느껴지게 한다. 발코니가 딸린 적벽돌 주택은 마을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과거 누군가가 화초를 가꾸고 담배를 태웠을 지극히 사적인 공간에서 주민 모두를 위한 커먼즈로 바뀐 모습이다.

북카페는 기존 다세대주택의 반지하 레벨을 따라 반개층 내려앉아있다. 한 가지, 창밖으로 주차장이 바로 보이는 것이 아쉬운 부분이다. 지하주차장 계획이 있었지만 예산 부족으로 무산되어 이렇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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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복도가 된 골목]

기존 주택은 책의 하중을 견디지 못할 위험이 있기에 골목을 수직 확장하여 3~4개 층의 책복도를 증축했다. 책복도는 기존 주택을 연결하며, 증축된 부분과 기존 주택의 레벨 차이를 조정하면서 둔턱, 계단과 낮은 천장이 나타나기도 한다. 덕분에 더욱 골목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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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드를 통해 층마다 다양한 옛 주택의 모습이 드러나며, 기초를 벤치로 활용해 외연을 확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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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복도 한 구석에는 '도서관이 인간의 역사를 기억하고 함께 나누는 공간인 것처럼 여기 1995년에 만들어진 마을의 공간을 남겨둡니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책이 인간을 기록하는 것처럼 도서관도 마을을 기록하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9.jpg 1995년에 지어진 적벽돌 주택


[열람실이 된 주택]

2002년에 지어진 화강석 외벽의 주택은 아이들의 책방이 되었고, 그 주차장은 미디어교육실이 되어 주민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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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주택들이 각각의 주소로 재련된 정주적 공간(홈패인 공간)이었다면, 도서관 마을은 여러 방들과 마을의 기억(시간)이 마치 패치워크처럼 얽히는 유연적 공간(매끄러운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필요에 따라 다른 형태와 프로그램을 주민참여로 담아낸다는 점에서 잠재성이 충만하다. 예를 들어, 일부 방과 벽면이 주민들의 작품 전시공간으로 바뀌는 경우가 그렇다. '도서관은 성장하는 유기체'라는 법칙을 정말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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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홀 / 삼각홀의 한 벽면에서는 아이들의 작품 전시가 한창이다.


[Epilogue]

구산동 도서관 마을은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이루어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계획에서 운영에 이르기까지 공동체가 깃들어있는 진정한 마을로서의 도서관인 것이다. 어려움도 있었다고 한다. 협소한 부지와 주거 밀집지라는 특성은 민원발생에 취약하다. 또한 증개축 과정에서 지반이나 주택의 구조보강이 요구되는 경우 예산을 초과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현실에서의 건축은 확실히 교과과정의 자유로운 것과는 괴리가 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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