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의 미술관, 물방울의 심층

EP10,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 홍재승

by 건축에세이 일렁

[Prologue]

김창열 화백에게 물방울을 그리는 행위는 실향의 아픔과 그리움의 번뇌를 투명한 무(無)의 상태로 회귀(回歸)시키는 의식이다.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은 그의 예술세계를 기리는 장소로서, 단순히 물방울의 표상을 따르기보다는 화백의 관념적 세계를 공간 언어로 환원해 담아냈다. 때문에 미술관은 각 공간들이 광정을 둘러싸는 回(회)의 형태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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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신령스러움의 조건]

건축물이 기념비적인 장소로 작동하려면 신령스럽고 숭고한 분위기를 가져야 한다. 『건축 개념의 네 가지 기둥』에 따르면 이를 위해 집단적 경험을 이끌어낼 수 있는 공간 규모와 관람객에게 메시지를 흡수시킬 수 있는 재료 표현의 디테일이 필요하다. 어떠한 형상의 반복이나 패턴을 통해 무한성을 주는 것이다. 또한 빛과 어둠, 솔리드와 보이드의 대조, 침묵의 제공 등이 있다.

미술관 또한 신령스러움의 요소를 어느 정도 담아내고 있다. 광정(보이드)과 이를 둘러싼 방들(솔리드)의 관계. 회랑과 전시실의 급격한 층고 차이. 빛이 새어 들어오는 어두운 회랑과 밝은 광정 등이 그러하다.


[공(空)의 경계]

앞서 말했듯 회랑은 외벽과 천장의 우각부에 슬릿창을 내어 빗줄기가 스며들거나 떨어지도록 계획하였다. 하지만 당선작의 회랑은 광정을 둘러싸는 현무암 벽돌의 영롱쌓기 마감으로 계획되었다. 둘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준공작의 솔리드한 현무암 패널 마감은 번뇌의 역사를 담은 전시실과 무(無)로의 회귀를 상징하는 광정을 명확히 구분 짓는다. 반면 당선작의 영롱쌓기 마감은 틈새 사이로 광정의 풍경을 흘려보내며 전시실에서의 여운이 서서히 희석될 수 있도록 할 것 같다.

영롱쌓기 마감은 이러한 감각을 고려한 선택으로 보이나 최종적으로는 어떠한 변수로 인해 변경되었다.

당선작의 광정 및 현무암벽돌 영롱쌓기 / 준공작의 솔리드한 벽면의 슬릿창


[회귀의 광정]

광정에는 미러폰드를 감싸며 옥상으로 올라가는 경사로가 놓여있다. 물방울 작품의 본질인 회귀를 상징하는 공간이다. 물방울에서 중요한 것은 물방울이 아닌 이를 드러내기 위한 빛과 그림자라는 점에서 미러폰드 또한 빛과 그림자의 일렁임을 담을 캔버스일 것이다.

옥상면에는 높이가 제각각인 큐브들이 돌출되어 있다. 실의 용도를 따르는 볼륨들이 그래도 드러나 있는 것이다.

위에는 현무암 쇄석이 깔려있다. 미술관이 자신의 작품들의 무덤이길 바랐던 김창열 화백의 의도를 담은 것처럼 보인다. 기능적으로는 쇄석을 깔아 배수와 단열에 이점을 갖는다고 한다.

추가적으로, 개념이 축소된 디테일들을 꼽자면 옥상면과 진출입구가 있다.

당선작에서의 옥상은 북측 구릉과 매끄럽게 연결되어 있으나 준공작에서는 옹벽처리한 선큰을 두고 상부 브릿지로 연결되어 있다.

당선작의 진출입구는 마치 검은 바위에 쐐기를 박아 넣은 듯한 틈새로 강력한 입구성을 보여주지만 준공작의 진출입구는 곧게 펴지며 그러한 느낌이 약화되었다.

이처럼 당선작에서는 명확한 개념을 위한 여러 전략들이 제시되었으나 준공작으로 발전하면서 흐려졌다. 예산과 결부하여 디테일이 축소된 듯하다.

당선작 조감도 / 브릿지 연결된 옥상 / 곧게 펴진 진출입구


[Epilogue]

최근 ‘디아드 청담’ 사례처럼 계획안과 준공작 사이에 차이를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설계공모의 경우 화려한 형태어휘들이 당선 이후 현실적인 제약에 부딪히며 상당 부분 축소되는 경향이 있다.

우리 회사에서도 당선안이 기본설계 단계로 이행되며 여러 제약—법적 기준, 설비 공간 확보, 외장 오염, 공사비—으로 인해 역동적이던 형태가 단조로워진 사례가 있다.

이처럼 계획안을 끝까지 지키기 위해서는 외부의 변수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개념을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단지 체육시설이라는 이유만으로 역동적인 입면을 적용한다면, 이는 공사비와의 저울질에서 쉽게 무너지는 가벼운 근거가 될 수 있다.


[이미지 출처]

당선작의 광정 및 현무암벽돌 영롱쌓기, 당선작 조감도

https://www.archdaily.com/479847/archiplan-wins-competition-to-design-kim-tschang-yeul-art-museum?ad_medium=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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