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아 Jun 02. 2020

빚 없이 빛나게 살기

#노예로 살지 않는 법 #자유로운 거지 #안녕 카이엔

나에게도 드림카가 있다. 바로 포르셰 카이엔. 죽기 전에 타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미국에 오게 되면서 더 탈 수 있는 가능성이 많아지지 않을까 기대를 전혀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차는 한국에서 보다 더 필수품이었다. 대중교통이 한국처럼 많지 않고 땅이 넓어서 아이 둘을 데리고 차 없이는 갈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외제차가 국내에서 거래되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좀 저렴하게 느껴지면 사치품으로서 말고 필수품으로 구매해서 타볼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여기서도 럭셔리는 럭셔리. 우리 수준에 맞지 않았다. 결국 가장 가격 대비 성능이 훌륭하고 익숙한 한국 차를 사고 말았다. 정말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스스로를 칭찬하면서도 눈물이 고이는 것은 왜 일까. 갖고 싶다 드림카.



차는 명백한 사치품이라 할지라도 왠지 집은 조금 더 용서가 되는 것이 사실이었다. 실 거주 공간이고, 사는 곳이니까 좀 더 넓고 깨끗하고 이왕이면 마당도 있고, 회사와 그리고 편의시설들과 가까우면 좋겠고 이러저러한 옵션들을 기대하는 것은 욕심이 아니라 가족을 위한 합리적인 필요라 느껴졌다. 그런데 미국에 와서 보니 집에 '전세'의 개념이 없었다. 스튜디오라 불리는 원룸도 100만 원 이하는 찾기 어려웠다. 아이들까지 있으니 방 두 개짜리 아파트에 회사 출퇴근 가까운 곳을 찾았더니 월 250만 원을 내야 했다. 1년 월세 값을 계산하려니 숨이 막혀왔다. 한국에서 생각하면 엄두도 안 날 금액이었다. 그래서 내 집을 사려고 생각하니 차라리 괜찮은 금액같이 느껴졌다. 모기지로 30년 빚을 내면 매 달 월세보다 훨씬 저렴한 금액으로 갚으며 살 수 있었다. 아이들이 있다 보니 마당도 있으면 좋겠고 텃밭도 가꾸고 싶고 덱에서 바비큐도 구워보고 싶고, 집 안에 파이어 플레이스가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낭만적일 것만 같기도 하고, 아이들도 이제 각자 방을 주고 싶고, 마당에 수영장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그래도 작은 그네라고 매달 수 있는 나무도 한 그루 있으면 참 좋을 것 같고 그랬다. 집 앞에 바로 걸을 수 있는 거리에 작은 마트도 하나 있으면 좋을 것 같고, 차를 타고 멀지 않은 거리에 코스트 코와 영화관, 한국 마트도 있으면 참 살기 괜찮을 것 같았다.

차도 집도 원하는 것을 갖고 한 달에 내는 돈을 조금만 높이면 다 할 수 있었다. 대부분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직업이 있고 신용이 낮지 않다면 은행에서 돈도 잘 빌려주었다. 그래서 열심히 개미처럼 일해 꼬박꼬박 갚으며 살면 눈에 보이는 좋은 차, 괜찮은 집을 쉽게 가질 수 있었다.


그런데 시국이 시국이다 보니 주변에서 좋은 집에서 멋진 차를 타던 사람들이 갑자기 집과 차에 깔려 넘어가는 모습을 보고 말았다. 잠깐의 수입이 줄어서 당장 먹을 것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매달 잘 벌던 양쪽 벌이 중 한쪽이 없어지거나 줄어들었을 때 매 달 내야 하는 고액의 빚은 너무나 무거운 눈덩이가 되고 말았다. 무서워졌다. 물론 경기가 좋을 때면 또 다르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우린 원래 외벌이 었고, 경기라는 것도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것이라 느껴지자 우리는 미래를 담보로 좋은 집과 멋진 차를 사는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우리는 남들과 다르게 살기로 결심했다. 매 달 허덕이며 10년 20년 30년 쪼개어진 빚을 갚으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살고 싶은 모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금은 조금 불편하지만 다른 선택을 하기 시작했다. 자동차는 할부 6개월로 완납했다. 작지만 빚이 없는 우리 것이라는 사실은 무척 안락함과 마음 편안함을 주었다. 집은 우선 목돈이 없어서 아파트 월세를 살며 모은다. 올해 가을쯤 출퇴근 거리는 좀 멀지만 교외의 작은 집을 사서 이사 가는 것이 목표다. 그것도 가능한 빚을 줄이고 사서 가려고 한다. 누군가는 어리석다고 할 것이다. 은행에서 물가상승률에 따라 변동하지 않고 30년 모기지로 집 값을 나누어 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을 받지 않는 것이 경제적으로 얼마나 손해인지 말해주고 싶어 할 것이다. 지금 1억과 30년 후 1억의 가치는 다를 것이라 말해주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좀 손해 보더라도 남들과 다르게 살기로 결심했다.


여전히 나는 카이엔을 보면, 신랑은 테슬라를 보면 눈이 돌아간다. 비록 좋은 집과 멋진 차를 보면 침이 고이지만, 침을 닦으며 서로를 응원한다. 저 사람들은 노예야. 우리는 거지지만 그래도 자유로운 거지지. 하하하. 가끔은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집에 사는 배 부르고 등 따신 노예가 부럽다. 하지만 우린 그 빚 아래로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계속 우리는 자유로울 것이다. 빚내는 인생 말고, 빛 나는 인생을 위하여!


작가의 이전글 매일 아침 집으로 출근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