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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아 Jun 15. 2020

결국 죽기 전에 그리워질 것은 지금 가장 익숙한 것

장조림 간장 계란밥 위에 오그락지

크리스마스이브, 남동생의 입대 날이었다.


하필 12월 24일 입대라니, 생애 가장 낯선 크리스마스를 맞을 동생을 생각하니 착잡했다. 공군을 지원했던 동생은 진주 훈련소로 갔다. 한 겨울 싸늘한 날씨에 빡빡 밀린 머리가 몹시 허전해 보였다. 입대 직전 마지막 식사로 함께 간 고깃집에서 체할 것 같아 못 먹겠다며 수저를 내려놓았다. 불 판 위에 고기라면 자다 일어나도 5인분은 거뜬히 먹어치우는 먹성 좋은 동생이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가족들만 맛있게 고기를 먹었을 리 없다. 마지막으로 동생을 꼭 안아주고 연병장으로 밀어 보냈다. "뛰어가!"라는 호령에 줄 맞춰 뛰어 들어가는 뒷모습을 보는데, 하나뿐인 혈육을 마치 전쟁이라도 내보낸 것 같은 목 메임에 눈 앞에서 모든 젊은이들이 사라지고도 쉬이 자리를 뜰 수 없었다. 가족들은 돌아오는 차 안에서 서로 말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기분이 너무 이상했다. 누군가 하나 눈물이 터지면 주체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정말 단 한마디 말도 못 하고 조용히 돌아왔다. 나는 내 방에 들어와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었고, 엄마는 괜히 손빨래를 하시며 아빠는 샤워를 하시며 눈물을 삼키셨으리라. 며칠이 지나자 동생이 입소날 입고 들어갔던 옷, 양말, 속옷과 가져갔던 모든 물품들이 모두 전부 택배 상자에 넣어 보내졌다. 소위 '눈물 상자'라 불리는 것이었다. 옷은 아주 잘 개어져 있었다.


그 마지막 사복을 받아 들고 서 있으려니 손이 떨렸다. 우리 가족들은 같이 끌어안고 소리 내어 울고 하는 그런 감정 표현이 익숙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냥 남들 다 가는 군대에 간 것뿐인데 방정맞게 눈물을 보이는 것이 합당한 것 같지 않아 그저 꾹 눌러 참았다. 하지만 마음은 다 똑같았다. 엄마가 먼저 옷가지들을 보고, 그대로 내 방에 전해 주었고 나는 한참 동안 옷을 끌어안고 숨 죽여 오열했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척 방에서 나와서 아빠에게 상자를 건넸다. 반듯하게 개어진 사복 옷 깃에, 양쪽 바지 주머니에, 신발 밑창과 양말 안에서 작은 종이쪽지들이 쏟아져 나왔다. 훈련소에 가서 일주일도 안되어 편지를 공식적으로 적을 수 없었던 기간이었다. '저는 잘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건강하고 아픈 곳은 없습니다. 아직 모든 것이 낯설고 정신은 없지만 괜찮습니다. 엄마 아빠 누나 가족들이 많이 보고 싶습니다. 나중에 가족들에게 편지 쓰는 시간을 준다고 하니 그때 제대로 편지를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랑합니다.' 하는 내용이었다. 틈 나는 대로 쪽지에 급하게 휘갈겨 적은 문장들을 비밀스럽게 옷 가지에 숨겨 보냈을 동생의 손길이 느껴졌다. 그 후 정식으로 편지지에 쓴 첫 편지가 왔고 우리는 읽고 또 읽고, 무슨 성경이라도 되는 양 사랑하는 막내의 편지를 닳도록 읽고 귀하게 모셔 두었다. 그리고 6주 후, 대망의 첫 면회를 준비하며 동생이 먹고 싶어 할 만한 음식을 챙기기 시작했다. 익히 들어왔던 첫 면회 음식은 대부분 '피자, 치킨' 같은 것들이었다. 면회 장소에서 좀 과하다 싶으면 불판 놓고 고기를 굽는 집도 있다고 해서 우리는 뭘 준비해 가면 좋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의 기대는 빗나갔다. 동생이 편지에 먹고 싶다고 적어 온 것은 다름 아닌 엄마표 '간장 계란밥'과 할머니 '오그락지' 그리고 후식으로 배스킨라빈스 31의 '아몬드 봉봉'이었다. 웃기면서도 눈물이 났다. 우리가 제일 자주 먹던 익숙한 엄마 음식이었다.


엄마가 만드는 간장 계란밥은 몹시 평범했지만 또 특별했다.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기본은 흰쌀밥이다. 잡곡이 섞이면 안 된다. 간장 계란밥의 풍미 그 자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밥은 자체의 향을 가지면 안 된다. 살짝 고들한 하얀 고두 쌀밥이 필요했다. 따끈한 밥 아래 버터 한 조각을 넣고 덮으면 스르륵 밥에 버터가 녹아들었다. 그 위에 반숙 계란을 올린다. 계란 프라이는 완숙이어서는 안 된다. 흰자는 적당히 익고 아래가 타지 않을 만큼 그리고 노른자는 거의 익지 않을 정도가 적당했다. 그리고 중요한 포인트는 간장 대신 소고기 장조림 국물을 넣는 것. 섞여 들어간 소고기 조각이 씹히면 건빵에 별 사탕을 찾은 것 마냥 반가웠다. 장조림 국물이 주는 풍부함은 그냥 간장에 비교할 수 없다. 달큼하면서도 간간한 그 국물엔 소고기가 끓여지며 뱉어 낸 구수함과 진득한 향이 잘 배어 있었다. 잘 비비면 물기가 많으면서도 고소한 장조림 간장 계란밥이 완성되었다.


거기에 꼬들꼬들한 할머니 오그락지를 하나 올려 입에 넣으면 그야말로 밥이 저절로 넘어갔다. 오그락지는 ‘무말랭이 장아찌’의 경상도 방언이다. 시골 사시는 할머니께서는 직접 농사지으신 햇무를 정성스레 잘라서, 햇볕 아래 잘 말려 쪼글쪼글 오그라들면, 매콤 달콤하게 양념이 베어 들도록 익히셨다. 할머니 댁 마당, 땅 속에 묻어둔 장독 안에서 잘 익어 고들고들한 식감이 일품이었다. 그렇게 정성 쏟은 무말랭이를 한 통씩 집에 가져다 주시곤 하셨다. 우리 남매가 유독 좋아하는 할머니 오그락지. 무말랭이라는 표준어보다는 오그락지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반찬이었다. 딱 적당히 맵고 짜고 달았다. 잘 말려진 무는 양념의 풍요로운 맛을 오그라진 제 몸에 꼭 쥐고 있었다. 그 맛을 딱 넘치지 않게 눌러 담아 놓은 듯했다. 김치의 시큼한 맛과는 달랐다. 계란밥에 이미 물기가 많았기 때문에 여기에 배추김치는 어울리지 않았다. 물김치는 더 별로 였다. 간장 계란밥의 고소함이 살짝 느끼함을 넘어가기 전에 매콤하게 균형을 딱 잡아줄 반찬은 할머니 오그락지가 딱이었다. 물기 없이 잘 말라 오독한 식감이 살아 있으면서도 양념이 잘 베어 들어 씹을수록 입 안에서 간장 계란밥과 함께 그 매콤 달콤한 맛이 잘 섞여 들었다.


면회 장소에 도착하여 엄마 아빠는 마음 급히 차에서 내려, 두리번거리시며 아들을 찾아 저벅저벅 발걸음을 옮기셨다. 동생이 우리를 먼저 발견하고 면회소 입구 바로 옆에서 걸음을 멈췄다. 엄마 아빠는 동생을 보자마자 안아 주실 줄 알았는데 아뿔싸! 휑하니 지나쳐 버렸다. 다 똑같은 군복에 다 똑같은 빡빡머리를 한 훈련병들 사이에서 아들 찾기는 '월리를 찾아라!' 게임을 연상케 했다. 난 동생을 보면 또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는데 그 광경이 우스워 뒤에서 소리 내어 웃고 말았다. 동생은 멋지게 거수경례를 하려다 웃지도 울지도 못한 채 서서 굳어 있었고, 나와 눈이 마주치고서야 씩 웃었다. 그 날 우리가 새벽같이 출발하느라 문 연 배스킨라빈스 매장을 찾아 들렀었는지 아닌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다만 살이 에게 추웠던 그 해 겨울, 뜨거웠던 가족 상봉에 마주한 동생의 만 가지 감정이 담긴 그 미소만 종종 생각난다.


시간이 많이 지난 오늘, 나도 결국 내 아이들에게 가장 자주 해주는 밥이 간장 계란밥이다. 살다 보니 태어나 처음 와보는 낯선 도시로 이민을 왔지만 밥상에 예외는 없다. 반찬 없을 때 제일 만만하고, 먹이기 쉬우면서도 나름 영양가도 있는 간장 계란밥. 오늘도 우리 아들에게 간장 계란밥을 먹이며 동생 첫 면회 장면이 떠올라 피식 웃는다. '아들아, 너도 죽을 만큼 가족이 보고 싶어 지는 어느 순간엔, 피자도 치킨도 아니고 이 흔해 빠진 간장계란밥이 먹고 싶어 질까.' 당연하게 여겼던 일상의 하루하루가 당연하지 않게 된 어떤 날, 아무렇지 않게 먹던 매일의 집 밥이, 그 익숙함이 얼마나 그리워질는지 모른다. 이역만리 타국에서 그 뻔했던 엄마의 간장계란밥과 할머니 오그락지가 눈물 나게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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