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아 Sep 30. 2020

결혼 전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세 가지 현실 조언

시댁과 시가의 차이, 결혼과 시집가는 것의 차이

안녕, 내가 이렇게 과거의 나에게 편지를 쓰게 될 줄은 몰랐어. 야아 좋겠다~ 아직 아가씨라!!ㅋㅋ 청첩장 돌릴 때 삼촌이 말했지, 잘 생각해보라고... 그게 웃자고 하는 말이 아니야, 이제 생각해보니 너를 정말 아껴서 하는 말이었구나 싶어. 잘 생각해봐. 식장에 들어갈 때까진 되돌릴 수 있다니까 그러네. 아니야 그래도 할 거야? 그래 네가 언제 남의 말 들었냐. 아니 나는 남이 아닌데, 미래의 나인데, 내 말도 안 들을 거야? 내가 아직 혼자는 안 살아봐서 모르겠지만, 그게 참... 몇 년 뒤 '비혼'을 선언할 남동생이 참 현명하다 싶기도 하고. 걔가 원래 어릴 때부터 영리했지. 아니 암튼 그냥 말하긴 왠지 오글거리고 쑥스러워서 브런치를 핑계 삼아 말을 걸어본다. 가을 단풍이 각자의 색을 하늘에 흩뿌리고, 남은 빛을 떨구는 만추에 나는 시집을 갈 거야. 이 좋은 계절 아름다운 날씨에 감사할 거야. 어리지도, 또 늦지도 않은 적당하고도 괜찮은 나이에 가족들과 친구들의 넘치는 축복을 받으며 꽃길을 걸을 거야. 웨딩 마치를 마칠 때는 모르겠지. 내게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언니가 그랬잖아, 결혼은 제 손가락으로 제 눈을 찌르는 일이라고. 앞으로 네가 어떻게 내 눈을 찌르는지 알려줄게. 앞으로 내가 결혼 생활에서 경험해야 할 모든 일을 다 알고도 그 날로 돌아간다면 나는 같은 선택을 할까.  


우습지만 정답은 그럴 거야. 왜냐하면 고집 센 너는 직접 겪지 않고는 누가 말려도 들(어쳐 먹) 질 않을 테니까. 그리고 그 많은 일들을 겪고서야 나는 좀 더 성숙해졌으니까. 그 경험들이 없었다면 어쩌면, 이혼을 하거나 시댁과 인연을 끊거나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사람들을 더 이해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어. 물론 지금의 너는 경험해보지 않고도 이해할 수는 있다고 말하겠지만, 지금처럼 이렇게 절절히 공감을 할 수는 없었을 거야. 그게 좋은 거냐고? 그럼. 그게 다 사람 사는 이야기인걸. 그 모든 경험들이 세상을, 사람을, 관계를 진심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고 또 내 좁은 속을 (여전히 좁지만) 조금은 확장시켰으리라 믿어. 물론 너는 지금의 네가 이미 무척 성숙한 사람인 것 같겠지만 말이야. 착각이다. 좀 더 살아보니까 철이 든다는 것은 '내가 얼마나 세상을 모르는지' 알아가는 과정인 것 같기도 해. 아무튼 지금 그 웨딩마치를 마치고 듬직한 신랑의 품에 안겨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해맑은 너에게 나는 이야기할 거야. 이 결혼의 실상을 말이야. 앞으로 걸어야 할 길이 아주 꽃길은 아니기 때문에, 나는 과거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많다. 


일단 이 시 한 편 읽고 가자. 교과서에서 읽었던 시지? 아무도 너에게 결혼 생활의 수심을 일러주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좀 늦었지만 이제라도 내가 해보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바다에 꽃을 찾아 떠나겠지만. 가기 전에 경고나 듣고 가라. 너무 멀리 가서 물에 빠져 죽지 않도록. 



    바다와 나비

                                           김기림


  아무도 그에게 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靑무우밭인가 해서 나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거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너는 몹시 서러울 것이다. 왜냐하면 결혼 생활은 네가 생각하는 꽃이 가득한 청무밭이 아니거든. 하하. 아주 서럽고 짠함에 온 몸과 마음이 아주 절어들 거야. 그래도 괜찮아. 막 죽을 것 같이 아프고 억울해도 생이라는 것이 쉽게 죽어지지도 않더라. 꾸역꾸역 넌 잘도 버텨낼 것이다. 그래서 더 강해질 거야. 원래 아픈 만큼 성숙한다고 하잖아. 처음 날개가 찢어질 때는 아주 분노에 가득 차서 울부짖을 테지만 그것도 곧, 지나가리라는 것을 배울 거야. 무슨 일을 겪길래 이렇게 무시무시한 경고를 하느냐고? 근데 사실 돌아보면 또 그렇게 무서울 것도 없어. 그렇게 엄청날 것도 없는 일상이야. 다만 그 무섭고 괴롭고 힘든 그 존재가 사실 알고 나면 내 인생에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존재이니 겁먹지 말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어서. 겁을 주면서 겁내지 말라고 한다고? 그러니까 내 말은 겁낼 필요는 없지만, 기대도 하지 말라 그런 거지 뭐. 지나고 나니 내가 좀 더 나를 스스로 지켜줄 수 있었다면, 좀 덜 다치지 않았을까 하는 순간들의 이야기를 해보려 해. 


첫 번째 알아야 할 것은 이거야. 넌 결혼을 하는 거야. 시집을 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거야. 남편과 내가 선택한 독립된 하나의 가족을 만드는 것이라고. 이제 그 대단한 안동 권 씨 집안에 맏며느리 명찰을 달고 그 집안에 구성원으로 소속되는 것이 아니라, 안동 권 씨와 강화 김 씨가 만나서 전혀 새로운 하나의 가족이 탄생하는 거야. 이게 뭐가 중요하냐고? 엄청 중요해. 왜냐하면 시부모님들은 '독립된 가정'으로서 너희 부부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딸이 하나 더 생겼네'에 가까운 시선 (물론 사랑 가득한 시선)으로 너를 바라보실 거야. 아 물론 귀한 맏아들은 원래 내 자식이었고, 그것엔 전혀 변함이 없지. 그렇게 때문에 나와 남편이 그 시각을 분명히 인지하고 정확히 행동하지 않으면 이제 알콩달콩 신혼은 무슨 성은 바꾸지도 않았지만 갑자기 '권 씨 가족'이 되기 위해 필요한 온갖 절차 앞에 무방비 상태로 놓이게 될 거야. 갑자기 나를 낳지도 않으신 분들이 부모 행세를 하려고 드는 것에 너는 큰 반감부터 생길 테니까. 아니 근데 부모님들 마음은 또 그게 아니야, 예쁜 딸이 생겼으니 얼마나 예쁘고 귀하고 보고 싶은지 몰라. 아들이 귀하니 그가 데려온 며느리는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몰라. 그런데 그 사랑의 방식이 이제 네가 생각하는 방식의 사랑과는 조금 다를 예정이거든. 근데 그게 또 사랑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선을 그으면 스스로 엄청난 죄책감에 시달릴 예정이고. 그래서 죄책감을 갖고 불편함을 만드느니, 그들의 방식의 사랑을 그대로 받아보려 노력을 할 거야. 근데 네가 갑자기 짠하고 원래 그 집안에서 자라 온 딸이 될 수 있으면 문제가 없는데, 그렇게 되지는 않거든. 내가 죽어야 그게 되는 게 나는 죽을 수가 없으니까. 맘처럼 잘 죽어 지지도 않는다니까 그러네. 사람 생이 생각보다 질겨. 


두 번째 알아야 할 것은, 그의 부모가 중요한 만큼 나의 부모도 중요하단다. 그러니 친정은 처가, 시집은 시댁이라 높이지 말렴. 네 마음속에서 말이야. 그냥 같이 시가라 해도 괜찮아. 결혼하는 순간 나는 온통 이 집안에서 '사랑스러운 딸 같은 며느리'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 시달릴 거야. 누가 그러라 강요하지 않아도 스스로 그럴 거야. '우리 아들 장가 참 잘 갔네, 이 집 며느리가 너무 괜찮네.' 이야기가 듣고 싶어 견딜 수 없을 거야. 내가 죽어 없어지더라도 그 이야기가 너무 듣고 싶을 거야. 하지만 단호하게 말하는데,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냥 나의 남편과, 내가 나의 아이들이 서로를 존중하며 아름답고 건강하게 가정을 꾸려갈 수 있다면 그게 중요하다. 처음에는 서운해하실지도 모르고 또 '결혼 잘못시켰네, 우리 집안에 뭐 저런 것이 들어왔네. 어디서 가정교육을 그따위로 받았니.'등 평생 들어본 적 없는 모욕을 겪어야 할지도 모르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을 소중히 내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곱씹으며 스스로 내 자존감을 스크래치 내기 시작하면 나는 서서히 미쳐갈 것이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메워지지 않는 것을 메우려는 노력은 참으로 부질없다. 그러니 네가 만들어가는 너와 신랑이 주체가 되는 가정에 집중하렴. 그 다음엔 사랑하는 너의 엄마 아빠를 한 번 더 생각해주렴.


세 번째 알아야 할 것은, 신랑도 이 결혼이 처음이라는 것이다. (아니 알고보니 둘 다 그전에 결혼을 해봤을지라도) 너라는 사람과, 그 사람과의 결혼은 처음일 테니까. 네가 어리숙하듯 그 역시 모든 것에 서툴 것이다. 그러니 그를 믿지 말아라. 그가 너를 사랑하는 마음과 별개로 그는 이 모든 갈등 상황에 익숙하지 못하다. 네가 애초에 이 따위 결혼 생활을 생각하지 않았듯 그 역시 마찬가지다. 너는 억울함이 하늘을 찌르겠지만, 그 역시 내가 결혼 전에 가장 사랑했던 여인이, 결혼 후에 가장 사랑할 여인과 갈등을 빚을 수 있을 거라 쉽게 상상하긴 어렵다. 그러니 절대 그에게 의지하지 말지어다. 그가 너의 훌륭한 방패막이되어줄 것이라 믿지 말아라. 애초부터 기대를 하지 않으면 실망도 적다. 다만, 둘은 의사소통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참고로 그는 사람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니 그의 언어를 네가 먼저 배워야 한다. 그리고 그가 해야 할 몫을 찾아서 미션을 주고, 그 미션을 클리어했을 경우 넘치는 칭찬과 보상을 선물로 주어라. 길들여야 한다. 내가 지혜롭게 길들이지 못하면 그는 야생 동물인 채로 집 안을 배회하다 어느 순간 자신의 목을 조여 오는 너나 그의 어미를 물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의 언어를 이해하고, 그의 언어로 그를 길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쉽지는 않지만, 그것에 성공하면 적어도 네가 스트레스로 암에 걸릴 확률을 조금은 낮출 수 있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미국 시어머니는 달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