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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아 Nov 13. 2020

아이가 하나 더 있으면 어떨까

#아이 욕심 #다둥맘 #정신 차려 #힘내 #낳거나 묶거나 #끝도없는 고민

우리는 연년생 남매를 키우고 있다. 그것도 이제 겨우 3살, 1살 반이 된 베이비들이다. 아이가 하나 더 있으면 어떨까?... 뭐 뭐야? 어휴, 바로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어진다. 지금도 난 충분히 인간적인 삶을 영위하지 못하고 있는걸. 제 때 못 자고, 제 때 못 먹고 사람이 이렇게 3년을 넘게 살아도 살아진다는 것이 놀라운 마당에 무슨 상상을 하고 있는 거야. 온갖 현실적인 문제들 앞에 저절로 손사래가 쳐진다. 그럼 신랑, 이제 묶을까? 너무 적나라한 질문인가. 아줌마가 되고 보니 언어 필터링이 잘 안된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아이 둘에 충분히 만족하면서도 또 공장 문을 닫는 것에 대해서는 둘 다 적극적이 되진 않는다. 뭐랄까... 더 이상 그 기능을 쓰고 싶진 않지만, 인위적으로 기능을 못하게 되면 왠지 삶의 생기가 꺾여버릴 것만 같은 근거 없는 두려움 같은 것이 있다.


우리는 종교가 있고, 생명을 적극적으로 반대하거나 인위적으로 생산하는 것에 대하여 반대한다. 아니 반대한다기보다 우리의 신앙이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피임에 대한 신앙의 가르침을 듣고 나면, 묶고 맘 편히 살아보려 했던 마음이 이내 불편해지고 만다. 그러면 안된단다. 사실 의무를 다했으면 묶어도 된다는 이야기가 듣고 싶어 자료를 찾다 발견했다. 우리가 좋아하는 신부님께서 구체적으로 이 주제에 대해 말씀을 해주셨다. 영어가 불편하시지 않은 분들이라면 한 번 참고해보시길! https://youtu.be/LOmWQKCoLd4

아니 그럼 어쩌라고, 그냥 생기는대로 계속 낳아? 말도 안 돼. 책임질 자신이 없으면 그냥 낳는 것이야 말로 생명에 대한 무책임한 행동 아니야? 21세기에 이 주제를 같은 종교를 가진 친구들과 나누는 것조차도 쉽지 않다. 갑자기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그리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같은 60-70년대의 산아 제한 정책 시대의 표어가 불현듯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한국은 지금 심각한 저출산 국가이고, 시대상을 반영하듯 또래의 내 친구들 중에도 아이 둘은 그리 많지 않다. 연애 중이지만 결혼 자체를 미룬 친구들도 많고, 비혼을 선언한 친구들도 있으며, 결혼은 했지만 딩크를 택한 부부도 많다. 하나를 낳은 친구들은 빠듯하게 육아휴직을 끝내고 곧 회사도 복귀해야 하고, 워킹맘으로 사는 것이 팍팍해서 더 이상 형제를 만들어 줄 엄두를 못 내겠다고 한다. 그래서 결혼하자마자 신혼도 없이 연년생으로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는 우리 모습에 대부분 '용감하다, 대단하다, 다 가졌네, 힘들겠다, 어쩌려고 그러냐, 이미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넜네.' 등 몹시 각양각색의 다양한 반응들을 보여왔다.


그런데 미국에 오니 삶의 모습이 참 다양하다. 여기도 딩크족으로 아이 대신 강아지를 키우는 부부들이 많다. 근데 반면에 다둥이 엄마 아빠가 되길 선택한 부부들도 참 많았다. 미국은 엄청 큰 차들이 많다. 성당에 갔을 때, 미국은 땅이 넓어서 그런가 어쩜 이렇게 큰 차들이 많지...라고만 생각했는데, 그 아마존 배달 차 같은 엄청 난 사이즈의 차 문이 열리며 우리의 생각은 바뀌었다. 훤칠하게 정장을 입은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큰 아이가 서너 살쯤 되어 보이는 우리 집 애들만 한 아이를 안아서 내린다. '아이고 애아빠라 해도 믿겠다. 저렇게 큰 오빠가 있으면 얼마나 든든할까. 늦둥인가 보네.' 속으로 생각하는데, 뒤 이어서 아가씨 같은 늘씬한 둘째 딸, 똑 닮았는데 키만 좀 더 작은 셋째 딸, 이어서 넷째 인지 다섯째인지 고만고만한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남자아이들이 둘이 더 뛰어내린다. 보는 듯 안 보는 듯, 눈치를 살피며 마음속으로는 아이들 숫자를 세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아이 아빠가 요람형 신생아 카시트를 들고 내린다. 그 안에는 꼬물대는 진짜 아기가 있었다. 맙소사... 일곱?!


우리 엄마가 일곱 형제에 막내셨는데. 나도 모르게 아이들의 엄마 아빠 얼굴을 살핀다. 그 부부는 정말 뭔가 네이비 씰(미국 해군의 엘리트 특수부대) 장교 같은 포쓰가 뿜어져 나왔다. 우와 뭐라고 해야 할까. 저 엄마는 같은 엄마지만 나와는 아예 차원이 다른 세계의 사람 같아 보인달까. 미사가 끝나고 신랑은 저 집 아빠는 뭐하는 사람일까, 나는 저 집 엄마는 몸과 마음이 괜찮을까. 그런 것들이 소리 없이 궁금해졌다.

이런 아마존 배달 트럭 같은 가족 차가 종류별로 성당 마당에 주차되어 있었다.


그런 여섯일곱씩 아이들이 있는 대가족들 사이에서 미사를 보고 있으려니, 우리 가족이 너무 단출해 보였다. 한국에서 딸 아들 키우고 있으면, 다 가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여기서는 한참 허전하고 부족해 보였다. 이렇게나 상대적일 수가 있다는 말인가. 성당 밖을 나서는데 신랑이 갑자기 내 어깨를 감싸며 "사랑해요."라고 고백을 해서 나도 모르게, 어깨를 살포시 빼내며 "이 말이 왜 '이제 시작이니 힘내요'로 들리죠?" 하며 둘 다 낄낄 웃었다. 그 후 우리는 이 코비드 전쟁통에 말도 안 되는 상상을 적극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우리, 아이가 하나 더 있으면 어떨까? 아니야 아니야, 그러지 말자. 둘 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였다. 한국과 달리 안전 문제로 미국은 집의 방 개수당 동거 인구수가 법적으로 정해져 있었다. 이 집에 생명체가 하나 더 생기는 순간 우리는 집도 옮겨야 하고, 차도 바꿔야 한다. 지금 막 이민 온 젊은 부부에게 당연히 여유 자금이란 없다. 아니 젊은 부부라고는 적었지만 산부인과에서 말하는 생물학적 나이로 나는 이미 노산이다. 검사 항목이 몇 배로 많아진다. 어서 아이들을 키워 학교에 보내고 나도 이 나라에서 공부를 하고 싶고, 경력도 이어 일도 하고 싶었다. 아이가 하나 더 생기는 순간 이 모든 계획은 수증기가 되어 증발하겠지. 사실, 둘째를 낳았을 때 딱 가족이 완성된 기분이었다. 내가 남동생과 남매로 커서였는지, 자본주의 사회 대부분 '패밀리 사이즈'가 4인 기준이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마음속에 당연히 이 아이가 막내일 거라 생각했다. 모든 의무를 마친 나는 미련 없이 임부복이며 신생아 물품을 임신 중인 작은 집 동서에게 다 물려주고 왔다. 근데 왜 자꾸 우린 저 가족들이 멋있어 보이는 것일까. 저 아마존 배달 트럭 같은 걸 타고 다니면 세상 두려울 것이 없을 것만 같아 보였다. 물론 그럴 리 없겠지만! 할 수만 있다면 전쟁통에도 칠 남매를 멋지게 키워내고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붙잡고 인터뷰라도 해보고 싶은 심정이다.


그 날 이후로 나도 모르게 셋째가 생기면, 돌림자를 써서 아들이면 이름을 뭘로, 딸이면 이름은 뭘로 지을지 혼자 정해보고 불러보며 '이 이름이 부르기 좋네.' 하며 부질없는 상상을 하다 피식 웃곤 했다. 무슨 생각이야. 이 코비드 난리통에 이역만리 타국에서 양가 가족 하나 없이 어쩌려고 그래. 그러다가 첫째 딸이 겨울왕국을 보며 자기도 언니를 갖고 싶어 하면, 동성인 여동생 하나 더 있어도 좋겠다 싶었다. 또 둘째 아들이 또래 남자 애들과 몸으로 부딪히며 장난치고 까르르 뛰노는 모습을 보니, 남동생 있으면 친구처럼 같이 크겠다 싶었다. 또 혼자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지 말자. 내 무덤 내가 파지 말자. 이미 지금 이만큼 인생이 고달픈데 무슨 생각이야 대체. 오늘도 충분히 피곤한걸.


같은 시각, 신랑도 똑같은 생각을 하며 이성의 끈을 놓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었다. 중고 미니밴 가격을 보고 있질 않나, 학군 좋은 외곽지의 타운 홈 시세를 보고 있었다. 뭐냐고 물으면 그냥 요새 미국 경제가 어떤지 알아보는 것이라 했다. 그도 나도 피식, 웃으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이런 마음을 같이 주시는 걸 보니,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께서 우리가 아직 더 봉사하길 원하시는가 보다. 선물을 또 안겨주시면 그저 감사히 받아야지. 돈도 집도 차도 힘도 없지만, 생명을 더 맡겨주시려면 나머지는 알아서 같이 주시겠지 하는 마음이 되어버렸다.


그 날 이후로 나도 모르게 매일 마시던 반주를 줄였다. 아, 우리 정말 어쩌려고 이러는지 모르겠다. god의 거짓말 노래가 귓가를 맴돈다.


잘 가 (가지 마) 행복해. (떠나지 마)

작가님들 저희 좀 말려줘요. (응원해줘요.)

우린 (우린 정말) 만족해. (더 갖고 싶어요.)

정신 차리라고 말해주세요. (할 수 있다고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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