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인아 Dec 02. 2020

시세보다 100만 원 더 주고 산다.

#부모님의 계산법 #손해 보는 것의 이득 #잃으면 얻어지는 것 

같은 동네에서 엄청 열심히 사는 친구가 하나 있다. 나이는 같은데 경험치가 월등히 높다. 개인 사업을 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아이 넷의 엄마이기도 하다. (무려 연 연년생의 아들이 셋이다.) 재택근무가 가능한 일이라 아이 넷을 보면서 틈틈이 자기 일도 한다. 여기까지만 들어도 헉 소리가 나오는데 더 중요한 것은 삶을 대하는 태도이다. 내 눈엔 그녀의 삶의 강도가 엄청 세 보이는데, 늘 웃으며 척척 해낸다. 힘들지 않은지 물으면 "괜찮아. 어차피 내일은 더 힘들 거니까."라며 호탕하게 웃는다. 


이 친구네 부부는 참 알뜰하게 산다. 아이가 많아 그렇다고 하기엔 몸에 밴 절약 습관과 스스로 무엇이든지 해결하려는 의지가 대단하다.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를 부부가 집에서 직접 했다. 누구를 부르거나 쉽게 기대지 않았다. 저러다 나이 들어 골병들 것 같아 내가 다 걱정이었지만, 씩씩하게 수면 양말을 신고 팔목 보호대를 하고는 자기가 해야 할 몫을 묵묵히 해내었다. 평소에 신랑이 장을 봐오면 애기 엄마가 요리를 해서 매끼를 해 먹이는 것 정도는 기본이었다. 어쩜 요리도 맛깔나게 잘했다. 김장도 해서 먹고, 다진 마늘도 생마늘을 사다 갈아먹는다. 집 안 곳곳에 뭐가 고장 나면 뭐든 직접 사다 고친다. 집 안의 낡은 마루 공사나 페인트 칠 정도는 둘째 아기 만삭에 다 끝냈다. 차가 고장 나도 부품을 주문해서 직접 고친다. 심지어 물건을 하나 사도 그냥 안 산다. 여기저기 발품 팔아 비교하고 흥정하기는 기본이다. 부지런하기는 또 얼마나 부지런한지 아침형 인간인 아이들 덕분에 새벽 6시면 온 가족이 일어나 움직인다. 또 손은 크고 나누는 걸 좋아해서 그 와중에 우리 집 먹을 것도 종종 챙기고, 시시때때로 초대해서 요리도 해먹 인다. 특히 이 집 닭볶음탕이 예술이다. 빈말이 아니라 식당을 해도 금방 맛집으로 소문날 정도일 거다. 부모님이 식당을 하셨다는데 그 덕분일까, 옆에서 보고 있으면 요리도 그냥 쉽게 쉽게 금방금방 대충 하는 듯한데 음식에서 감칠맛이 났다. 


동네에 부지런한 또래 친구가 있어서 좋은데, 문제는 이 친구네 가족을 보면서 자꾸 우리 삶을 돌아보게 된다는 것이다. 나는 아이 둘 밥 해먹이기, 이민 생활 적응하기만 해도 허덕이고 있었는데 상대적으로 우리가 너무 약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 앞에선 어떤 투정도 부릴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우리는 차가 한 대 더 필요하여, 미루고 미루다 지난 주말 큰 맘먹고 가장 가까운 동네 자동차 영업소를 찾아갔다. 영업소에서 원하는 차를 선택해 시험 운행 한 번 하고 견적을 받는데 약 3시간 정도가 걸렸다. 이 나라는 뭐든지 느리지만 아이들과 함께 기다리는 시간은 상대적으로 더 느리게 느껴졌다. 아이들의 인내심은 30분이면 바닥이 났다. 딜러가 오고 가며 차량 가격을 조정하는 사이 점점 길어지는 이야기에 지겨워 몸을 비틀고, 아이들은 가지 말라는 곳으로 자꾸 뛰어나가기 시작했다. 급기야 낮잠 시간이 다 된 둘째는 땅바닥에 드러누웠다. 황급히 아이 둘을 안고 나와 집으로 돌아오며 블랙 프라이데이에 맞춰 할인된 가격에 차를 사보려는 우리 계획을 수정했다. 가격 비교는 무슨 그냥 되는 대로 사자. 굴러만 가면 되지. 그냥 뭐든지 사자 싶어 지는 것이었다. 


친구네는 차를 사도 인터넷 가격 비교는 기본, 매장 발품 팔기를 기본 한 시간 거리 자동차 영업소까지는 샅샅이 훑고 다니며 야무지게 흥정하여 정말 좋은 가격에 사고야 말던데. 물론 애 넷을 데리고 말이다. 우리는 왜 겨우 애 둘을 데리고 가장 가까운 영업소 한 곳을 갔을 뿐인데 이렇게 지치는 걸까. 


집도 그렇다. 페인트 칠과 마루 공사를 해야 했다. 비만 오면 비 맞은 개 냄새가 나는 미국식 카펫이 너무 찝찝하여, 청소만 깨끗이 하고 그냥 살아보려 했다가 도저히 안 되겠어서 그 친구 집 이야기 ("정말 쉬워. 면적 맞춰서 재료 사다가 잘라서 끼우기만 하면 되거든.")를 듣고, 셀프 시공을 도전해 보기로 했다. 우선 지저분 한 곳의 페인트 칠을 끝내고, 마루를 하기로 했다. 호기롭게 페인트와 각종 장비들을 사 왔다. 유튜브에서 본 대로 기존의 페인트를 샌딩하고 벽의 못 자국을 컴파운드로 막고 말린 후 다시 고르게 샌딩 하고 프라이머로 기본을 잡은 뒤, 우리가 고른 모던한 하얀색으로 마무리. 보기만 해도 깔끔하고 쉬웠다. 


그래. 보기만 했을 때는 쉬웠다. 근데 이게 왜 유튜브에서 본 대로 안 되는 걸까. 벽을 샌딩 하기 시작했더니 먼지가 아주 중국 미세먼지 저리 가라 하게 집 안에 생성되었다. 애들은 뭔지 몰라도 재밌어 보이는 그것을 자기들이 해보겠다며 샌딩 기를 내놓으라고 난리였다. 어찌어찌 갈고 막고 말리고 다시 샌딩하고 프라이머칠까지 했다. 휴~ 아이들을 재우고 일 하는 것엔 한계가 있었다. 잠도 아이들이 혼자 알아서 자지 않으니까. 아이들이 깨어 있을 때 일하는 것은... 한계가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집 안 공사장의 아이들, 상상에 맡깁니다.) 저 재밌는 물감 놀이를 아빠 혼자 하는 것을 아이들이 가만 보고 있을 리가 없다. "나도 나도 나도!"를 백 번쯤 외치고 막아 놓은 펜스를 뚫고 나오면 게임 오버다. 결국 야심 차게 고른 페인트 통을 열어 본격적으로 칠을 하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깨달았다. 이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마루 장비도 페인트도 호기롭게 실어 날라놨지만 정말 시작한 지 일주일도 안되어 우린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말았다. 결국 옆 집에서 소개받은 히스패닉 전문가 분들에게 돈을 주고 다 맡겼다. 아니 미국에선 이런 건 다 셀프로 한다던데. 우리는 왜 이거 하나 우리가 못해서 사람을 시키는가. 돈을 괜한 곳에 낭비하는 것인가. 별 생각이 다 들었다. 하지만 공사 일주일 만에 애기들은 공사 먼지를 마시며 신나게 뛰어다니고, 나랑 신랑은 각자 지칠 대로 지쳐서 몹시 예민해진 상태가 되었다. 누가 건드리기만 하면 달려가 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니 대체 아이들을 데리고 이걸 어떻게 할 수 있는 거지?


한국에 계신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 이런 하소연을 했다. 그러자 엄마가 돈은 꼭 써야 하는 곳과 써야 하는 시기가 있는 것이라 알려주었다. 엄마와 아빠는 집이든 차든 큰 거래를 해야 할 때, 깎아서 싸게 잘 사야겠다가 아니라 '시세보다 한 100만 원 더 주고 산다.' 생각하고 사러 간다 했다. 그렇게 사면 오래오래 후회할 일이 없다 했다. 물론 금전적으로 여유가 넘쳐서 그런 것이 아니라, 시간과 노력을 쏟아 비교하고 깎고, 예민해지고, 힘들며 온 가족들이 몸과 마음고생하는 그 비용이라 생각하면 그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엄마는 명품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나보고 "1년에 샤넬 백 하나 안 산다고 생각하면 그 돈이 생기고도 남는다." 했다. 나도 명품백을 아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다. (물론 싫어하는 사람도 아니다.ㅋㅋ) 그래서 그냥 '시세보다 조금 더 준다.' 생각하면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실패하거나 위험을 부담해야 할 일도 적었다.


페인트를 100만 원 주고 다른 사람 시켜서 속상하다고 하니 엄마가, 100만 원 치의 건강과 시간 여유가 생긴 거라 했다. 어디 그 어린아이를 둘이나 데리고 집 안에서 먼지 마시고, 남편과 싸워가며 그걸 하고 있을 생각을 했냐 했다. 맡기길 백 번 잘한 일이라 했다. 돈은 잘하는 다른 일해서 벌고, 할 수 없는 것은 맡기는 것이 맞다고 하셨다. 물론 우린 금수저가 아니다. 100만 원은 우리에게 정말 큰돈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돈보다 더 귀한 아이들이 있고, 그래서 아이들과 우리의 건강은 당연히 중요하고, 또다시 오지 않을 이 시기를 가족들이 함께 잘 보내는 일이 중요하기도 하다. 


그 씩씩한 동네 친구네는 여전히 멋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을 비교하지 않기로 한다. 왜 그들이 한 것을, 우리는 못해내는지 묻지 않기로. 분명 우리는 우리가 더 잘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무조건 돈을 아끼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우리의 능력이 닿는 곳까지 지혜롭게 아끼는 것이 더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일일 것임을.

 


크으...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 아쉽다.

우리가 멋지게 셀프 공사를 끝내고 싶었는데! 아기들 조금만 더 키워놓고 다시 도전해보자 신랑 :)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가 하나 더 있으면 어떨까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