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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아 Apr 09. 2021

세상에 단 하나뿐인 우리 아이 이야기

#유아 스토리텔링의 힘 #아이의 삶 #아이의 이야기

유아 교육을 전공하고 교육 기관에서 10여 년 아이들을 가르쳤다. 결혼 후에는 엄마로 살며 글을 쓰기 시작했고 책을 출간하며 전업 주부이자 작가로 살고 있다. 그럼 나는 글 쓰는 작가 엄마로서, 유아교육 전문가로서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연, 월, 일간 교육 프로그램을 짜고 아이들을 집에서 교육해보며, 가장 아이들에게 흥미 있고 효율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교육법을 찾아 이런저런 방법들을 시도해보았다. 첫째는 한국 나이로 5살, 둘째는 3살이다. 한 달 뒤 만날 뱃속의 셋째까지 합세하면 아마 웬만한 교육 시설에서 다루는 커리큘럼은 연령별로 다 커버가 되지 않을까 싶다. 게다가 중간에 거주 국가가 한 번 바뀌며 이중언어 교육도 곁들이기 시작했다.


빠르게 변화하는 이 세상 속에서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삶을 잘 살아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아이들에게 키워주고 싶은 몇 가지 능력이 있다. 그중에서도 반드시 가졌으면 하는 능력은 바로, 스토리텔링의 힘이다. 쉽게 말해 말과 글, 생생한 이야기를 통해 설득력 있게 본인의 생각을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꼭 아이들이 말과 글에 직접 연관된 업무에 종사하지 않더라도, 이것은 삶의 전반에 걸쳐 무척 중요한 스킬이 된다. 이것은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꼭 필요한 능력이기도 하다.


이미 여러 교육학자들을 통해, 그리고 수많은 인재들을 통해 이 스토리텔링의 힘은 강조되고 있다. 사람은 세계를 일정한 '스토리'로 이해한다. 세계적인 미래 학자이자, [새로운 미래가 온다]의 저자인 다니엘 핑크는 미래를 지배하는 인재들의 조건의 여섯 가지 중 한 가지로 '스토리'를 꼽았다. 뿐만 아니라 늘 교육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유대인들의 교육법'에도 이 스토리텔링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아이들이 다양한 경험을 하고, 그 경험을 자기만의 스토리로 풀어낼 수 있는 능력은 자기 자신을 하나의 고유한 이야기로 인식하게 하고 동시에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마법 같은 힘을 발휘한다.


그렇다면, 나의 이야기를 어떻게 쓸 것인가.


작가로서 늘 삶을 구성하는 많은 경험들이 이야기의 어떤 소재가 되어줄 수 있을지 고민한다. 스스로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살아나갈 것인지 고민하는 것은 근본적인 삶의 방향을 제시해주기에 무척 중요한 작업이기도 하다. 동시에 엄마로서 아이들이 자기의 삶을 어떤 이야기로 구성해나가길 원하는지, 자기 스스로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도록 도울 수 있는지 고민하는 것 또한 아이들 교육의 핵심적인 질문이 된다.


먼저 아이들을 키우며 놀랐던 것은 무척 '이야기' 자체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곁들여 들려준 것들은 쉽게 잊지 않는다. 그냥 잔소리를 하면 들어먹질 않는데, 거기에 디테일한 이야기를 덧붙여 들려주면 훨씬 기억을 잘한다. 예를 들어 "길을 건널 때는 엄마 손을 잡고 좌우에 차가 오는지 안 오는지 보고 건너야 한다."의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하자. 그대로 전하면 백 번 말해도 별로 소용이 없다. "엄마 어릴 때 같은 동네에 어떤 오빠가 살았는데, 그 오빠는 공을 정말 좋아했어. 그래서 늘 공을 손에 들고 다녔거든. 그러다 어느 날,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그 공을 들고 가다가 그만 공을 떨어트리고 만 거야. 공이 떼구루루 굴러서 찻길로 들어갔는데, 그 오빠는 공을 주으러 잡고 있던 엄마 손을 놓아버리고 찻길로 뛰어들었지. 건너편에 차가 오는지 안 오는지 보지도 않고 말이야. 오빠는 달려오는 차를 보지 못했고, 결국 차와 부딪혀서 피를 철철 흘리며 병원에 실려 갔어. 오빠의 엄마는 엉엉 울었지." 그러면 아이들은 아주 길을 건널 때마다 '그 오빠'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그 오빠는 어떻게 되었는지 묻고, 걱정해주고, 건널목에서 손을 알아서 잡는다. 물론 '그 오빠 이야기'는 뻥이다. 하지만 일상에 충분히 있을 법한 허구다.


물론 아이들이 너무 어리면 지나치게 자극적인 이야기를 해줄 필요는 없지만, 나는 이것에 대해서 아주 엄하게 한계를 두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늘 즐겨 읽는 어린이 고전 동화들이 훨씬 더 자극적이기 때문이다. 자극적인 허구의 이야기들은 상상력을 자극한다. 일상의 위기를 이야기를 통해 간접 체험하게 된다. 내 삶의 위험 요소들을 스스로 인지하게 되고 알아서 긴장과 이완의 완급 조절을 하게 만든다. 우리가 '막장 드라마'에 열광하는 이유와 비슷하다.


그 흔한 '백설 공주'만 봐도, 엄마가 죽고 마녀인 새엄마가 오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지 않는가. 그녀는 단지 자기보다 의붓딸이 더 예쁘다는 이유로 백설 공주를 죽이라고 지시한다. 지시를 받은 사냥꾼은 공주를 깊은 숲 속으로 끌고 가고, 공주가 도망가도록 놓아주는 대신 숲 속의 짐승을 잡아 피와 내장을 들고 가 백설공주를 죽였다고 이야기한다. 상상해보면 얼마나 유혈이 낭자한 이야기인가. 잘 살펴보면, 웬만한 고전 동화들 속 공주의 엄마나 아빠는 죽고 없다. 아이들에게 있어 인생 최대의 위기를 상상해내라면, 유일한 보호처인 부모가 사라지는 것 아니겠는가. 이러한 이야기들을 읽고 상상하며 아이들은 스스로의 인생 위기를 간접 경험하고, 상대적으로 평화로운 일상에 안도하기도 때론 실제 위기가 닥쳤을 때 더 유연하게 대처하기도 한다. 이것이 아이들에게 이야기가 주는 힘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난 후에 아이들은 그 이야기에 자기가 스스로 살을 붙여 전혀 다른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해내기도 한다. 잘 때도 누워서 '옛날이야기'를 해주는 재미만 알았는데, 어느 순간 다섯 살인 첫째는 자기가 만든 이야기를 들려준다. 처음에는 서투른 문장의 나열로 시작된 이야기들이었으나 점점 이야기 속에 기승전결의 구조가 갖춰지는 것을 보면 분명 아이의 이야기도 진화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들을수록 신기하고 재미있다. 이야기를 구성해내는 힘이 점점 더 단단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아이의 이야기 속에는 아이가 직접 겪은 일상의 이야기가 들어가기도 하고, 책 속에서 읽었던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캐릭터가 등장하기도 하며, 또 익숙한 인물들이 다른 성격을 가지고 등장하기도 한다. 이야기의 주인공이 자신일 때면 일상에서 허락되지 않는 것들을 이야기를 통해 펼치며 대리 만족하기도 한다. "그 아이는 하늘을 날아서 대구로 갔어. 그래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만났지. 그리고 공룡 공원에 갔어. 우유 젤리와 사탕과 초콜릿을 하루 종일 먹었어. 맛있는 것을 많이 먹었지만 이도 썩지 않았지." 한국에 가서 가족들을 만나고 싶고, 달콤한 간식을 원 없이 먹고 싶은 아이의 욕망이 이야기 속에 들어가는 것이다.


또 아이는 자신의 일상에 있었던 일을 재구성하여 들려주기도 한다. 공원에서 같이 자전거를 타고, 오후에 마트에 가서 장을 보기로 했던 날, 갑자기 비가 와서 일정이 다 취소되고 집에서 하루를 보냈다고 하자. 그럼 그날 저녁 이야기에 등장하는 아이는 비슷하지만 변형된 일상을 가진다. 이야기 속 아이도 공원에서 자전거를 타고(발단) 오후에 마트에 가기로 한다(전개). 갑자기 하늘에서는 비가 온다(위기). 그러나 우산을 쓰고 장화를 신고 공원에 갔고(절정), 공원에 도착하자 비가 다 그쳐서(해소) 자전거를 신나게 타고 달린다(결말).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아이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읽을 수 있다.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아이의 이야기들이 너무 귀엽고 재미있어서 처음에는 녹음을 하다가, 나중에는 받아 적었다. 우리가 함께 만드는 이야기 공책에 아이가 만든 이야기들을 구전 동화받아 적듯이 적어두었다. 아이들이 자라는 것은 참 순식간이다. 그리고 아이가 나름의 세계관을 잘 구성해나갈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적절한 발판을 만들어주는 것은 엄마 선생님이자 작가 엄마인 내가 해야 할 일이라 느껴졌다. 아이는 매일 자란다. 그리고 매일 새로운 이야기를 만든다. 이야기가 쌓여 한 권의 책이 완성되듯이, 아이의 하루가 쌓여 아이의 인생 스토리가 완성되겠지. 오늘도 나는 말도 안 되는 아이의 이야기를 함께 낄낄거리며 귀하게 받아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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