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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아 Apr 08. 2021

장난감 대신 밥 주걱을 줄게

#미니멀 육아 예찬 #이 집 안의 모든 것이 너의 것이니

아이들에게 놀잇감을 사주지 않은지 참 오래되었다. 아니 사실 집에는 우리가 사준 플라스틱 놀잇감이 거의 없다. 처음에는 집이 좁아서, 이사를 가야 하니까 그리고 집이 지저분해지는 것이 싫어서 사주지 않았다. 순전히 나의 이기에 의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선택은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질리지 않는 놀잇감


집에 놀잇감이 없으면 온갖 생활 용품을 갖고 논다. 그것이 위험하지만 않으면 다 내어준다. 그중에서도 요즘 옷장 아이템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은 등산용 손수건과 보자기다. 보자기를 온몸에 감고 다닌다. 보자기는 슈퍼히어로의 망토가 되었다가, 라푼젤의 금빛 머리카락이 되었다가, 의사 선생님의 치료 도구가 되었다가 낮잠 시간엔 포근한 이불로 바뀐다. 멀쩡한 순면 이불 놔두고 나일론 망토를 덮고 자면 왜 더 잘 자는 걸까. 나도 어릴 때 온갖 천 조각, 끈 조각을 좋아했던 과거를 떠올리면 이해가 되기도 한다. 원래 놀잇감 용도로 탄생한 것들이 아니다 보니,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된다. 그래서일까 캐릭터가 그려진 놀잇감보다 더 오래 가지고 논다. 덤으로 간간히 "이제 엄마가 그거 필요하니까 잠깐 돌려줄래?" 하면 물건에 애착을 보이면서 엄마에게 돌려주고, 다시 자기 손에 들어왔을 때 더 반가워해준다.


장난감은 효용이 다 하면 다른 용도로 쓸 수가 없다. 지겨워진 놀잇감은 금세 찬밥이 되어 집 안 구석 자리를 차지하고 있거나, 이리저리 굴러다니기 일쑤다. 그럼 다른 친구에게 물려주거나 사용감이 있는 것은 버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일상생활 용품은 쉽게 질려하지 않는다. 애초에 그 기능이 놀잇감이 아니었기에 어떻게 가지고 놀지의 답은 아이들이 찾는 것이다. 그리고 지겨워졌을 때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으면 제 기능을 한다. 아이들이 부엌 용품 중에 제일 좋아하는 것은 체망, 깔때기, 밥주걱 등이 그것이다. (집에 밥주걱이 두 개 있어서 천만다행이다.) 요새 한창 밥주걱을 아이스하키 채 마냥 들고 공치기에 열중인 둘째와, 밥 할 때 넣는 검은콩을 스뎅 그릇에 덜어주면 깔때기로 이 병에 옮기고 저 병에 옮기며 한참을 집중하여 노는 첫째. 역시 실컷 놀고 다시 제 자리에 돌려놓으면 밥 할 때 원래 용도대로 쓴다.



2. 자연 속으로 내보낸다.


소리나 불빛이 나는 정답이 있는 플라스틱 장난감 노출이 적다 보니 아이들이 저절로 자연물을 갖고 노는 것에 점점 더 능숙해진다. 인위적인 자극의 노출을 줄이다 보면 자연이 더없이 좋은 놀잇감이 되어준다. 처음에 흙 있는 마당에 풀어놓으면 몇 바퀴 휘휘 돌고, 돌을 주워다 옮기는 정도에서 모든 놀이가 끝이 났다. 하지만 자주 더 자주 자연 속에 노출시켜줄수록 자연을 활용하는 법을 배워갔다. 처음에는 밋밋하고 심심해 보였던 자연이 꿈틀대는 생명을 가지고 아이들과 대화를 할 수 있도록 자주 만나게 해 주었다. 그들도 서로 친해질 시간이 필요하다. 아이들은 원시의 본능을 회복하듯이 돌을 주워 뗀석기처럼 흙을 파 뒤집었다. 그러다 포슬포슬한 흙 속에서 굼틀대는 지렁이를 발견하면 아주 산삼이라도 캔 듯 신이 났다. 나뭇가지, 돌, 나뭇잎, 식물의 잎과 꽃 그리고 열매들은 훌륭한 놀잇감이 되어주었다. 조금 더 디테일하게 놀이로 들어가면 그것들은 엄마 놀이의 음식이 되었다가, 병원 놀이의 의료 도구가 되었다. 개미들을 위한 지상의 집이 완성되기도 했고, 물만 떠다 주면 엉뚱하지만 지렁이 수영장이 지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클레이(점토) 대신 밀가루나 전분 가루를 내어준다. 물론 이건 엄마의 노고가 조금 더 드는 일이다. 치우는 것이 귀찮으니까. 하지만 인공적인 색깔과 인공적인 향이 가미된 유아용 클레이보다 훨씬 활용도가 높다. 밀가루 반죽에 식용색소, 식용유를 몇 방울 섞어 스스로 클레이를 만들도록 해 주고, 지퍼백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두면 오래오래 쓸 수도 있다. 재료 가격으로 계산하면 클레이보다 훨씬 저렴하니 쓰고 아낌없이 버릴 수도 있다. 피부에 오래 닿는 것이기도 하고, 놀다 혹시 입에 들어가도 유해 화학 물질을 염려할 필요가 없으니 마음도 한결 편하다.


유아 놀이 치료에 자주 등장하는 재료가 바로 물과 모래이다. 자연물은 스트레스 해소와 감정 표출에 매우 적합한 놀잇감이 되어 준다. 치료가 목적이 아니라면 아이들의 물놀이, 모래 놀이를 특수 기관에 가서 인위적으로 제공해줄 필요가 없다. 아이들은 정답이 없는 놀잇감을 만나면 창의력이 폭발한다. 오감으로 세상을 배워가야 하는 시기에 온 감각을 활용하여 뇌를 자극하고, 이를 나름의 규칙으로 구성해가는 과정에서 언어 능력과 추상적 사고 능력도 키워갈 수 있기 때문이다.



3. 친구 집에 가면 너무 잘 논다.


당연한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놀잇감 많은 친구 집에 가면 새로운 놀이 자극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잇감을 탐색한다. 화려한 불빛과 소리가 나는 온갖 놀잇감 앞에 아이들은 금세 빠져든다. 사실 이때가 엄마의 위기다. 눈이 돌아가 노는 아이들을 보면 구두쇠 엄마 때문에 아이들이 놀잇감 하나 없이 크나 싶어 갑자기 안쓰러워진다. 하지만 그 장난감 천국에 사는 친구 엄마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 똑같다. 다른 집에 가면 다른 친구 놀잇감을 갖고 노느라 정신이 없다고 했다. 그럼 마음에 들어하는 그 놀잇감을 또 사준다고 했다. 하지만 꼭 자기 집에 사놓으면 흥미를 잃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다시 확고해진다. 사줄 이유가 없다. 그냥 우린 쭉 밥주걱이랑 보자기 갖고 놀자.



4. 책 속으로 빠져들다.


아이들이 영상이나 플라스틱 놀잇감에 많이 노출되지 않으면 아무래도 인공적인 소리나 불빛이 나는 자극이 없어도 비교적 흥미 거리를 잘 찾아내곤 한다. 다행인 것은 집에 놀잇감 대신 놓아둔 책을 보는 것에 엄마는 무척 관대하다. 읽어주면 재밌어하고, 글씨를 못 읽으니 그림을 보며 대신 이야기를 꾸며내기도 한다. 첫째는 창작 동화에, 둘째는 과학 책(그중에서도 요즘은 화산 책을 특히 좋아한다.)에 흥미를 보인다. 물론 두 돌 된 둘째는 종종 책을 찢어 먹기도 하지만. 책 자체에 흥미를 가지고 늘 펼쳐보고 읽어달라고 요청을 하기도 하는 것을 보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부디 배 속의 셋째도 누나와 형처럼 책에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본다. 엄마는 어차피 장난감을 사 줄 계획이 없는 것 같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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