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의 몸의 일기 _ 6
인문약방에서 ‘황제내경과 양자역학’ 세미나를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동양사상과 서양과학을 교차시키며 세상을 바라보는 게 재미있어지는 중이다. 얼마 전에는 데이비드 봄의 <전체와 접힌 질서>라는 책을 읽었는데 세상을 하나의 거대한 전체로 보는 시선이 흥미로웠다. 우주의 모든 것은 서로 ‘고유 내포 질서’를 가지고 연결되어 있다. 사람은 거대한 우주 속의 작은 존재이지만, 그 안에 우주 전체를 담고 있다. 우주와 인간 사이에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없다고 하더라도, 같은 ‘바탕’을 가지고 있으므로 서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한다.
이론을 가진다는 것은 삶을 보는 다른 방식을 배우는 것이라고 했다. 아직 애송이에 불과하지만, 양자역학을 공부하다 보니, 모든 것들이 양자역학적으로 해석되는 게 신기했다. 그중 하나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인 <센스 8>이다. 워쇼스키 형제였다가 남매가 되었다가 지금은 자매가 된, 독특한 이력의 두 감독이 만든 시리즈물인데 소재부터가 흥미로웠다.
대략의 내용은 이러하다. <센스 8> 속 주인공은 총 8명. 이들은 사는 곳도, 성별도, 취향도, 얼굴색도 모두 다르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같은 날에 태어났고, 한 ‘무리’를 이루고 있다. 이들을 우리(사피엔)와는 다른 종족인 센세이트라고 부르며, 세상에는 이런 센세이트들이 수많은 무리를 이루며 비밀리에 살아가고 있다. 무리 내에서는 ‘이곳에 있으면서도 동시에 저곳에 있을 수 있는’ 이른바 ‘방문’이라는 것을 할 수 있는데, 예를 들면 지금 영국에 있는 주인공이 동시에 미국에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물리적인 몸은 영국에 있지만, 미국에서 다른 구성원이 느끼고, 보고, 먹고, 마시는 것 모두를 함께 공유한다. 육체뿐만 아니라 기쁨과 슬픔 같은 감정도 함께 한다. 다른 존재와 모든 것을 공유할 수 있다면 –그녀의 생리통까지 생생하게 느껴진다면- 어디까지가 내 몸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가끔 알 수 없는 슬픔을 느낀다. 개인적인 문제가 없는데도 그럴 때가 있다. 나는 오랫동안 이 문제에 대해서 생각했다. 다른 사람보다 행복치를 느끼는 기준이 높은 거라고, 기쁨과 슬픔의 간격이 커서 그런 게 아닌가 고민해왔다. 하지만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면, 데이비드 봄의 말처럼 정말로 슬픔도 내 것이 아닌 걸까. 내가 개인적으로 느낀다고 생각하는 이 슬픔이 사실은 내밀하게 연결된 타인들, 혹은 식물들, 아니면 날씨까지 모든 것에 영향을 받아서라면? 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예민할 뿐이라면? 그렇다면 나의 갑작스러운 슬픔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까.
6개월에 걸친 몸의 일기가 끝이 났다. 처음 몸의 일기를 쓰기 시작했던 6개월 전의 나는 이미 지금의 내가 아니다. 처음에는 살, 다이어트에 대한 글을 썼는데, 지금은 몸의 연결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달라지고, 관계에 따라 변화하는 몸을 기록할 수 있어서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내 몸이 이 안에 한정된 게 아니라면, 때론 다른 사람의 슬픔까지 느끼며 살아간다면, 내 문제 안에 매몰되지 않고 다른 사람의 고통과 즐거움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