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글레의 근사한 양생4
3, 4월 약국 일이 많아져 쉬는 날에도 줄곧 나와서 일을 했다. 많이 피곤했다. 어느 날 회의를 하다 친구에게 버럭 화를 냈다. 둘 사이에 고성이 오갔다. 나는 그 친구의 태도를 문제삼았지만 사실 그 친구는 평상시와 별 차이가 없었다. 한두 해 지낸 사이도 아닌데 서로 화를 내며 티격태격한 경우가 왜 없었겠나? 그녀와 나는 싸워도 좀 있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하하호호 지낸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다른때 처럼 감정이 쉬이 사그라지지 않았고 신경이 쓰였다. 며칠 후 만난 친구는 내가 과로해서 그런 것 같다며 휴가를 권했다. 그 친구의 조언은 적중할 때가 많다. 휴가를 가기로 했다.
피로와 화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 피로와 화는 간이라는 장기와 관련이 깊다. 과로나 스트레스는 간의 피로를 불러와 간의 해독작용 등에 문제가 생긴다. 해독이 안되면 몸이 다시 피로해진다. 동양의학에서는 각각의 오장에 감정이 배속되는데, 간에 배속된 감정은 ‘화’ 또는 ‘분노’이다. 따라서 나의 과로가 간의 피로를 불러왔고 간의 피로는 화를 통해 표현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데 피로하다고 누구나 화를 내지는 않는다. 간의 역할 중에는 ‘소설(疏泄)’작용이 있다. 뭉쳐있는 기운을 풀어서 소통시키고 발설하는 작용이다. 간의 소설 작용이 잘 되면 소화도 잘 되고 감정이 뭉치지 않는다. 스트레스 등 감정이 해소되지 않아 뭉친 것을 기울(氣鬱)이라 한다. 몸이 피로하면 기울이 그때그때 소설 되지 않아 감정들이 더 크게 뭉친다. ‘화’는 이런 단단한 기울을 해소하기 위해 간이 하는 특단의 조치이다. 화를 내면 당장은 시원하지만, 기울이 근본적으로 해소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화를 자꾸 내다보면 간에 열이 생겨 상황은 더 악화가 된다. 이제는 간의 열 때문에 각종 증상이 생기고 중독적으로 화를 더 내게 된다.
친구의 조언대로 난 주말을 끼고 4일간의 휴가를 갔다. 강원도 산골에 사는 친한 언니 집에서 수다를 떨고 푹 쉬었다. 그러면서 나의 기울은 어디에서 기인한 건지 계속 생각하며 적었다. 보통 기울은 욕망의 억압, 억울함, 질투, 미움 등에서 일어난다고 한다. 나의 경우 가장 표면에 있는 감정은 ‘억울함’이었다. 억울한 마음이 계속되면 이른바 ‘화병’으로 발전한다. 이건 좀 위험하다는 직감이 올라왔다. 억울한 감정의 기원을 더 찾아 들어갔다.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생각. 내 옳음을 사람들이 몰라준다는 생각. 그 올바름의 바탕을 이룬 강고한 윤리에 갇혀 옴짝달싹 못 하고 있는 내가 보였다.
이런 생각들이나 감정들은 외부와의 활발한 소통 속에서 부서지기도 하고 조정되기도 한다. 그 외부는 책이나 공부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고 어떤 활동일 수도 있다. 간의 소설 작용은 바로 간이 주도하는 외부 활동의 표현이다. 약국을 열고 지난 1년간 약국이 자리 잡기를 바라며 혼자서 전전긍긍하며 지냈던 부분이 컸던 모양이다. 부담도 있었고 여러 감정도 생겼지만, 친구들에게 솔직한 심정을 내놓을 생각을 못 했다. 갑자기 아프 게 된 친구와 약국이라는 전문가 영역에 낯설어 하는 친구를 배려하고 싶었다. 또 너무 약국 일에 매몰되어 내 활동과 생각의 반경이 좁아졌었음을 느꼈다. 과로는 이런 상황에 더해져 몸의 지혜가 잘 작동하지 못하게 했다.
일리치약국을 열고 친구들과 먹고살며 공부할 현장이 생겨서 좋았고, 긴 상담을 통해 아픈 사람들과 다르게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약국에 몰두한 만큼 내가 놓친 것도 있었다. 내가 만든 윤리대로 살 수 없는 날 발견할 때마다 스스로에게 실망하지만 자기 부정에 머물러 있고 싶지는 않다. ‘쉼’은 자기 부정을 넘어서기 위한 힘을 내게 주었다. 쉬면서 나와 협상을 한 것 같다. 윤리를 좀 조정하라고. 그리고 친구들에게 얘기하라고. 완벽할 수 없다고. 자신을 설득했다. 이럴 때는 무엇보다 외부와 활발하게 소통하는 간의 지혜가 필요하다. 오늘 회의에서 나의 휴가기를 친구들과 이야기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