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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문약방 Oct 20. 2022

코로나 확진자의 일기

모로의 몸의 일기 _ 2

 한 무리의 사람들이 미친 듯이 뛰어 도망가고 있다. 뒤로는 좀비들이 빠른 속도로 쫓아오고, 좀비에게 감염되고, 뜯어 먹히는 와중에도 어찌어찌 살아남는 사람들이 생긴다. 사람들 사이에서 이제 탈출할 수 있을까…. 하는 희망이 조금씩 생기고 있다. 바로 그때! 몇 명이 좀비에게 물려 죽는다. 제길, 이럴 거면 처음에 물리던지!


 지금 코로나 상황을 보면 좀비 영화가 생각난다. 나는 그 속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주인공이 되긴 글렀다. 그보다도 발버둥 치며 도망가다 결국엔 물리고 마는 쪽이다. 그렇다. 나는 코로나에 걸렸다. 지난 2년간 남들이 하는 대로, 두려워했다가, 회피도 했다가, 체념한 후엔 혹시나 하는 의심도 했었다. 지금까지 안 걸렸다는 건 혹시…. 나에게 슈퍼항체가 있는 건 아닐까? 아니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무증상으로 가볍게 앓고 지나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다. 그러나 그 모든 건 착각이었다.


 시작은 아이었다. 확진자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어렴풋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터였다. 아이의 이마가 뜨끈한 것을 발견했을 때, 등 너머로 쎄한 기운을 감지했을 때 학교에 보내지 않은 것이 잘되었다 싶었다. 아이가 먼저 확진이 되자, 깐부처럼 붙어 다니는 나는 다음날 자동으로 당첨! 좀비 세상이 되면 그냥 속 편하게 제일 먼저 죽을 거라고 말하던 남편은 요리조리 피하려다가 결국 3일 뒤에 확진되었다.


 소심한 열 살 아들은, 밀접접촉인 적도 없었던 터라, 처음으로 병원에서 하는 신속 항원 검사를 무서워했다. 정확하게 말해줘야 하는 아이라 “면봉으로 귀 파다가 조금 깊게 찔러서 아픈 적이 있었지? 그 정도의 아픔이다.”라고 간략하게 표현해 주었다. 결국 조금 울긴 했지만, 무사히 검사를 마쳤다. 첫날은 아이 혼자 양성이었다. 아이는 집에 와서는 이제 자기는 죽는 거냐며 울었다. 그럴 일은 절대 없다고 이야기했지만, 죽는 사람도 있다던데 그게 나일꺼 같다고, 그게 내가 아닌 보장이 어디 있냐고 한참을 울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결정적인 이야기를 해주었다. “너…. 코로나 걸린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냐. 이제 자가 격리라 일주일 동안 학교에 안 간다?” 아이는 눈물을 그치고 잠시 생각하는 척하더니 슬쩍 웃음을 참았다. 그리고는 유튜브를 보면 너무 재미있어서 아픔을 잊게 해준다고 ‘유튜브 치료’를 하겠단다. 하…. 이 녀석…. 열이 펄펄 올라 부은 얼굴로 깔깔거리면서 격리 기간을 보냈다.


 하지만 나는 세 명 중에 제일 아팠다. 첫날에 목이 아픈 것을 시작으로, 오한, 발열, 몸살의 단계를 거쳐서 수도꼭지 같이 흐르는 콧물, 재채기의 나날을 통과했다. 다행인 것은 코로나가 '성질이 급한 놈'이라는 거다. 뭔가 증상들이 몸 여기저기를 툭툭툭 치면서 빠르게 지나가는 바람 같다고 할까. 하긴 그렇게 빠르게 증상이 바뀌며 지나가다가도, 전기밥솥에 뜸 들이듯 미적지근하게 감기 기운이 한동안 지속되었다.


 나는 동네 약사님의 든든한 지원으로 약을 최소한으로 먹고 흘려보내듯이 코로나를 받아들였다. 아프면 아픈 대로, 나아지면 나아지는 대로 그냥 이놈의 지긋지긋한 코로나가 궁금했던 거 같다. 둘째 날 몸살은 너무 아파서 해열제랑 소염제 등의 도움을 받았지만, 그 다음 날부터는 증상에 따라 쌍화탕과 은교산, 패독산, 소청룡탕을 바꿔 먹으면서 보냈다. 꿀물을 마시고, 이온 음료를 마시고, 따뜻한 국을 끓였다. 잠이 오면 많이 자고, 기운이 있을 때는 집에서라도 조금씩 움직였다. 아이랑 같이 스트레칭도 하고, 청소도 하고 몸을 움직이려고 노력했다. 내 몸은 아플 때일수록 소화가 잘 안 되는 걸 알아서, 음식도 조금씩 먹었다. 그랬더니 4일 정도가 지나자 어느 정도 컨디션을 회복했다. 몸이 괜찮아지자 우리 가족이 이만큼만 아프고 넘어간 것이, 그리고 아무에게도 바이러스를 전파하지 않고 가족끼리 알콩달콩(?) 코로나를 겪은 것에 감사한다.


 코로나로 격리했던 시간을 생각해본다. 학교도 못가고, 회사도 못가고, 운동도 못 하고,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지도 못했다. 가족들과 냄새나게 붙어있으면서 먹고, 마시고, 다투고, 티비를 보다, 결국엔 지긋지긋해지는 형태로 격리 기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에 나에겐 작은 힘이 생겼다. 코로나가 없어지는 시절이 올까. 이번에 겪었다고 다시는 코로나에 걸리지 않을까. 그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한 번 겪고 나니 아팠지만 할만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조금 두려움이 사라졌다. 어찌 되었든 같이 살아야 할 요 얄미운 녀석과 함께 잘 공생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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