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글레의 근사한 양생
모든 소매업이 그렇듯 약국 또한 신속한 서비스를 요청받는 곳이다. 게다가 약을 다루다 보니 신속함뿐만 아니라 ‘정확성’도 요구된다. 이런 환경에서 일하다 보면 에너지가 이만저만 들어가는 게 아니다. 짧은 시간에 오가는 대화로 그 사람의 상태를 파악하고 치료 약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집중력을 최대한 끌어올려야 한다. 하지만 아쉬울 때가 많다. 좀 더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면, 좀 더 내게 생각할 시간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다.
그래서 일리치 약국에는 정중앙에 커다란 테이블을 놓았다. ‘상담 전문약국’이라는 안내도 잊지 않았다. 상담을 내세우는 건 앞에서 말한 아쉬움 때문만은 아니다. 약국에 방문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이미 약사라는 ‘전문가’에게 의존하고자 하는 마음이 크다. 스스로 자신의 몸을 살피고 일상을 돌아보며 약이나 의료가 아닌 해법을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 약 한 알로 아픔을 손쉽게 해결하려고 한다. 어쩌면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고도로 의료화된 사회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해서 천천히 상담하면서 사람들에게 자기 몸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주고 싶었다.
1년여 동안 제법 많은 사람과 상담을 했다. 상담 시간은 보통 30분에서 1시간 정도 걸리지만 2시간을 넘는 경우도 꽤 있었다. 상담하는 걸 옆에서 지켜본 친구가 지치겠다며 나를 걱정했다. “엉? 안 지치는데? 걱정 마. 난 사람들이랑 상담하는 거 재밌어!” 내 대답이다. 물론 상담하는데 에너지가 많이 들어간다. 하지만 시간에 쫓기며 쓰던 에너지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그리고 난 태생부터 사람한테 관심이 많다. 말하는 것도 좋아한다. 상담하면서 내게 더 필요한 게 있다면 ‘좋은 귀’다. 다행히 친구들과 얘기할 때와는 달리 상담 모드에서는 내 귀가 조금 더 열린다.
상담하면서 사람들은 자기 몸과 일상에 대해 알게 된다. 고기도 기름도 별로 안 먹는데 고지혈증에 걸렸다는 사람과 먹는 거에 대해서 스무고개 하듯 얘기했다. 그 이야기 끝에 그 사람이 탄수화물을 많이 먹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잉여의 탄수화물은 중성지방이나 콜레스테롤로 변한다. 또 첫 상담에서는 인지하지 못했던 증상을 다음번 상담에서 얘기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면 아픔의 원인이 더 선명해진다. 생리통 때문에 약을 먹었던 이십 대 여성을 다시 상담을 했다. 감기로 코피가 며칠째 나고 있다는 거다. 코피는 폐나 심장의 열이 심할 때 주로 난다. 감기 말고도 열을 만드는 원인이 있다고 판단했다. 감정이 뭉치면 열이 만들어진다. 게다가 열은 혈을 졸여 부족하게 한다. 최근 스트레스가 심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생리통이 다시 심해진 이유이기도 하다.
상담해서 다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과로로 인한 피로는 그 사람의 욕망이 반영된 결과라서 자꾸 반복된다. 기나 혈을 보하는 약을 주면 힘이 나니까 다시 과로해서 약국을 찾아 온다. 스스로 욕망의 배치를 바꾸지 못하면 계속 반복될 것이다. 이럴 때 약을 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 딜레마에 빠진다. 어쩔 수없이 약을 주며 잔소리를 더해 보지만 내 몫은 거기까지다. 결국 자기를 치료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니까. 이렇게 모든 사람이 치료에 주체적으로 참여하지는 않는다. 또 내 조언을 거부하고 자기 입장을 고수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체로 상담이 거듭될수록 상담 시간은 줄어들고 더는 약을 먹지 않아도 되는 때가 온다. 발걸음이 끊겨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사실 기쁘다.
상담 후 일상의 조언만 하고 약을 안 주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한 분이 꽤 오랜 시간 얘기 끝에 조언만 하니까 어리둥절해 했다. 상담료를 받아야 하는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냥 가시라고, 괜찮다고 하니 끝내 고개를 갸웃하며 갔다. 심리상담, 컨설팅, 코칭 등 전문가와 상담에 돈을 지불하는 세상이다. 약국에서 상담하고 돈을 받는 게 맞는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은 받고 싶지 않다. 상담은 약사인 나에게 임상적 앎을 만들 수 있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앎은 아픈 사람으로부터 내게로 그리고 또 다른 사람으로 이어지며 치유를 만든다. 선순환이다. 천천히 상담하는 것이 주는 미덕이 있다. 아직은 상담료를 받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