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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느무느 Nov 17. 2022

유일한 목격자

외출해 있으면 집에 있는 아가들이 보고 싶다. 바깥공기를 쐬는 게 잠깐은 상쾌하지만, 얼른 집에 돌아가 배를 깔고 누워 이제 막 기기 시작한 아가들과 눈을 맞추고 싶어 진다. 집에 가까워질수록 아가들 생각에 발걸음은 빨라진다. 낮잠을 자고 있을 수 있으니 현관문을 살살 열어야지 속으로 되뇐다.


그날도 외출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주차를 하고 지하 2층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이상하게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때 제일 조바심이 난다. 놓친 엘리베이터가 하필 꼭대기 층까지 가기라도 하면 다시 내려오기까지 평생은 걸리는 것 같다. 다행히 엘리베이터는 금방 왔고 난 어떤 중년 아저씨와 함께 탑승했다. 1층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한 남자아이가 탔다. 열 살은 되었을까. 초등학교 하교 시간이구나 싶었다. 아이는 10층, 아저씨는 16층, 나는 15층. ‘내리기 전까지 한 번만 더 서면 집 도착이다’ 하고 무의식 중에 계산했다.


힘차게 출발한 엘리베이터가 2층에서 다시 멈춰 섰다. 문이 열렸지만 아무도 없었다. 엘리베이터는 3층에서도 다시 열렸고, 4층, 5층, 6층에서도 열렸다. 위로 올라갈수록 계단 통로 쪽에서 아이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릴 때마다 1층에서 탄 아이가 초조하게 닫힘 버튼을 눌렸다. 친구들이 계단으로 올라가면서 장난을 친 모양이었다. 엘리베이터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나 이런 장난을 칠 줄 알았는데 요즘 아이들에게도 버튼의 유혹을 이기기란 쉽지 않은가 보다. 아이는 옆에 있는 우리를 의식했는지 장난친 친구 이름을 대며 이 행동에 대해 일러바쳐야겠다고 중얼거렸다. 난 아이의 멋쩍음을 최대한 모른 척하기 위해 벽에 붙어 허공을 응시했다. 마스크 속으로 웃음이 살짝 났다.


7층에서도 문은 열렸다. 아이들의 까르르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드디어 8층. 문이 열리자 친구들이 있었다. 여자아이 한 명이 빼꼼 엘리베이터 안을 쳐다봤고 남자아이 두 명이 성큼 엘리베이터에 들어왔다. ‘너네들이었구나 장난꾸러기들이’ 하고 생각하는 찰나에 불호령이 떨어졌다. "이놈의 자식들, 어디서 이런 장난질이야!” 옆에 있던 아저씨가 꽥 호통을 쳤다. 목소리가 너무 커서 나도 움찔했다. “너네 다 엘리베이터 타지마! 다 내려!” 아저씨는 두 손으로 아이 셋을 밀어냈고 아이들은 거칠게 엘리베이터 밖으로 떠밀렸다.


순식간에 일어난 폭력적인 상황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후다닥 집으로 돌아온 나는 방금 있었던 일을 흥분해 털어놓았지만 온갖 부정적인 감정을 주체하기 어려웠다. 한창 윗집 아저씨를 욕하는 와중에 10층 아이의 엄마가 찾아왔다. 아저씨에게 항의하러 가는 길이었다. 아이들이 장난을 친 것은 잘못했지만 부당한 폭력이 행해진 상황에 대해 자초지종을 알고 싶다고 했다. 그녀의 격양된 목소리에 아이들의 훌쩍임이 묻어있었다. 나와 대화 후 그녀는 나에게 고맙다 하고는 결연한 얼굴로 위층으로 올라갔다.


낯선 어른의 손찌검에 상처받았을 아이들을 생각하면 분노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사실 내내 가시지 않는 불쾌감의 원인은 분노가 아닌 수치심이었다. 난 그동안 여성으로 살아오면서 신변 보호를 위해 위험을 민감하게 감지할 수 있는 레이다를 갖게 되었다. 어두운 골목길이나 늦은 밤 사람이 없는 지하철 승강장에서도 이 레이다가 항상 작동한다. 16층 아저씨의 호통에 내 레이다는 위험 경보를 울렸고 나는 피신 프로토콜을 가동했다. 내 안전을 위해 15층에 도착하자마자 빠르게 빠져나왔고 난 그에게 맞서지 못했다. 비겁했다. 여성은 남성이 휘두르는 폭력에 취약하기에 여태 나는 약자로서의 정체성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영영 약자이기만 한가. 엘리베이터에서 약자는 내가 아니었다. 어린아이가 경험하는 사회에서는 ‘어른’이라는 지위가 갖는 힘이 있다. 나는 내 약자성에만 집중해 나보다 더 취약한 이의 피해 앞에서도 얼어붙어 있었다. 아이 엄마에게 고맙다고 말을 들은 것이 내내 부끄러웠다. 거친 그를 상대하러 아이 엄마 혼자 올려 보낸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난 현장에 같이 있던 유일한 목격자였고, 그게 끝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싸움꾼이 되겠다는 것이 아니다. 잠시 머무는 차가운 시선이, 눈치 주는 헛기침이, 대꾸하지 않는 침묵이 누군가를 움찔하게 만들 수도 있다. 내가 격렬하게 싸워야 하는 대상은 내 안의 무력감이다. 내가 나서봤자 다치기만 하고 현상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무력감. 그 무게는 상당해서 자주 나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고 오랜 시간 냉소적인 어른으로 살아왔다. 희망적인 시각을 갖는 게 어쩌면 여타 잘난 엄마의 면모를 갖는 것보다 나에겐 더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이날을 반성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보려 한다. 부끄러운 목격자에서 씩씩한 행동가로 변할 내 모습이 나도 궁금하다. 그동안 다리에 주렁주렁 달린 무력감, 회의감, 냉소 주머니의 무게에 익숙해져 있었으니 이들을 떼고 나면 내 발걸음은 아주 가뿐할 것이다.


16층 아저씨는 어찌 되었는가. 아저씨는 아이 엄마와의 대화에서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다가 아래층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남편이 개입하자 언성을 낮추고 어영부영 사과했다. 아이 부모들이 경찰에 신고했는지 몇 시간 뒤엔 경찰이 출동했다. 개인적인 사과로 끝날 일은 분명 아니었다. 아이들이 상처를 이겨내고 자라날 동안, 아저씨의 수치심도 무럭무럭 자라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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