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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느무느 Feb 01. 2023

점이 선이 될 수 없다면

지난 주말은 상대적으로 무탈한 하루였다. 아가들은 이유식을 힘들게 오래 먹긴 했지만 다 먹어 주었다. 어떤 연유에서건 밥이 먹기 싫어지면 아가는 입을 꾹 다물고 절대 열지 않기에, 싸늘하게 밥에 흥미를 잃어가는 표정이 비치면 나는 온갖 재롱을 떤다. 동요를 틀며 크게 따라 부르기도 하고 좋아하는 그림책을 보여주기도 하고 간식으로 유인하기도 하다 보면 아침부터 한파주의보 경보 문자가 울리는 추운 날씨에도 나는 머리 위에서 열이 펄펄 난다. 내가 땀을 뻘뻘 흘리더라도 아가들이 밥을 다 먹은 날은 ‘준비한 재료를 모두 소진하였습니다’하는 안내문을 내걸고 영업을 조기 종료하는 음식점이 된 것처럼 뿌듯하다. 낮잠도 잘 재웠다. 아가들은 오래 칭얼대지 않고 둘이 비슷한 시간대에 잠들어 나도 남편도 잠시 허리를 펴고 누울 수 있었다. 아가들의 하루가 무탈했다는 건 그만큼 내가 애를 많이 썼다는 뜻인 걸 나중에 알았다. 두 번째 이유식을 먹이고 나자 갑자기 답답해 숨을 쉴 수 없었다. 소화되지 않는 더부룩한 피로감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소화가 되지 않는다는 건 비유적인 표현이기도 하지만 사실이다. 위는 식도를 통해 들어온 음식을 소화할지 말지 GPS 기반으로 결정하는 게 분명하다. 아가와 함께라면 쉴 틈 없이 분주하지만 내 이동경로를 추적해 보면 지도상에 작은 점 하나일 것이다. 하루 종일 움직이고 앉았다 일어났다 해도 선으로 뻗어나가지 않는 정체된 존재. 위는 음식물을 소화시켜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나의 불편감은 계속된다. 그렇다고 밥을 굶을 수는 없다. 제자리걸음이라도 지치긴 하는 법이라 끼니를 굶으면 건강을 해치기 마련이고, 그럼 아가들은 누가 돌보나. 더부룩한 상태로 또 끼니를 챙겨야 하는 게 짜증스럽다. 임신 후 변해버린 체형과 늘어난 뱃살도 어쩌지 못하고 이렇게 먹기만 하다니. 내가 마음에 들지 않은지도 오래되었다. 일정 질량과 부피를 차지하며 공기와 맞닿아 있는 내 존재 자체가.


육아에 매진할수록 고립된 느낌이 든다. 난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안다. 회사에 매여있지 않은 남편이 항상 함께 육아하고 있는 건 다행이다. 여러 사정으로 나보다 훨씬 힘들게 육아하는 많은 여성들이 많음을 상기하며 내가 달고 있는 산소통에는 산소가 충분함을 주지하려 해도 이번 주말 같은 순간엔 숨통이 막혀오는 걸 막을 수 없다. 점이고 싶지 않다. 뻗어나가고 싶다. 아무 방향이라도.


월요일에 시터님이 출근하면 당장 혼자 외출하기로 했다. 세상과 연결되지 못한다는 의식이 나를 외롭게 하고, 집 밖에서 내가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잊어가면서 더 쓸쓸해진다. 1년 만에 미용실을 예약했다. 셀카를 많이 찍어야겠다. 유독 카메라의 시선 앞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나만 쳐다보고 있는 것처럼 부자연스럽지만, 내 핸드폰에라도 기록되고 싶다. 어느 정도의 피곤함은 감수하고 볼일이 없어도 외출해 보는 날을 자주 갖자. 나에게 이런저런 처방을 내려본다.


작은 불평을 털어놓기 전에 긴 변명부터 하게 되는 게 엄마일까. 아가를 데리고 커피숍에 앉아 있는 여성 보호자들을 보면서 팔자 좋다고 여기는 시선들이 나에게 긴 변명을 요구한다. 학업이나 회사에 대한 불평은 망설임 없이 털어놓을 수 있지만 연약한 아가를 키우는 보호자가 된 이상 사소한 푸념도 아가에게 따갑게 닿을까 싶어 움직이지 않는 점으로 남기를 자처한다. 나에게 붙어있는 작은 점 둘이 아장아장 걸음을 내디뎌 선으로 뻗어나가게 하는 것이 분명 나의 역할이라 그를 위해 내가 어떤 궤적을 남기는 것을 미뤄두게 된다. 궤적을 남기는 건 내 자아가 자취를 남기는 일이다. 외부와 연결되어 있지 않은 자아도 의미를 가질까. 아무도 그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는다면 그 자아는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까. 난 그저 엄마가 되기 전부터 존재했던 내 본연의 모습이 여전히 여기 있다고 나를 알던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다. 가만히 한 곳에 찍힌 점에 불과하지만, 내가 가닿을 수 없다면, 자기 자리에서 조용히 빛을 내는 점이 되면 어떨까 상상해 본다. 눈부신 무언가가 아닐지라도 빛처럼 존재하고 싶다. 희미해도 좋다. 누군가는 프리즘으로 내 안의 다양한 파장을 알아주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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