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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느무느 Nov 23. 2023

안경테 이쁘다고 해주세요

  육아를 하니 주말을 앞두고 비장해진다. 가장 큰 이유는 밥이다. 쌍둥이 아기에게 하루 세끼를 먹여야 한다. 아기가 아직 어른이 먹는 메뉴를 똑같이 먹지 못하므로 아기 밥과 더불어 어른 밥상도 따로 차려야 한다. 차리고 치워야 하는 끼니가 총 여섯 끼인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주말마다 가까운 쇼핑몰로 향한다. 점심 한 끼 정도는 외식으로 해결해야 숨통이 트인다. 물론 밖에서 먹는 것도 만만치 않다. 아기들이 먹을 수 있도록 간이 약한 음식을 팔고, 아기 의자가 있고, 아기 식기도 내어줄 수 있는 곳은 절대 흔하지 않다.


  게다가 아기들은 숟가락을 날렵하게 놀리지 못한다. 밥상 앞에 앉은 아기를 지켜보면서 한 번씩 떠먹여 주고 잘 안 먹는 반찬도 요령껏 입안으로 넣어주어야 한다. 마음에 안 들면 줄줄 뱉어 내기 때문에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승률을 높이려면 타이밍을 잘 맞추어야 한다. 수비가 뚫린 틈에 득점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빈 식판’이라는 승리를 거머쥘 수 있다. 이 스포츠 경기에 주전 선수로 뛰는 동안 눈총을 받지 않을 만한 곳, 우리가 주말에 향하는 쇼핑몰엔 그런 귀한 음식점이 여러 개 있다.


  아기 키우는 사람들 생각은 다 비슷하다. 밖에서 시간도 때우고 애들 밥도 먹여야 하니 주말이면 모두 그 쇼핑몰로 향한다. 우리는 오전 9시 50분경에 쇼핑몰 주차장에 도착한다. 쇼핑몰 개장은 오전 10시다. 국내 최대 규모의 쇼핑몰인 만큼 입구가 여러 개인데 우리는 1층 유모차 대여소에 가장 빠르게 도착할 수 있는 주차장 출입구를 알아냈다. 그리고 그 출입구 코 앞에 주차를 한다. 날씨가 궂은날은 쇼핑몰로 향하는 사람들이 유독 많지만 9시 50분에만 도착한다면 주차장 명당자리를 뺏기지 않고 이용할 수 있다. 항상 주차하는 그곳에 차를 대고 기어를 P로 바꿀 때가 하루 중 기분이 가장 째지는 순간이다.


  지하 3층까지 주차장이 있지만 우리가 주차한 곳은 당연히 지하 1층이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한 층만 올라가면 유모차를 빌릴 수 있다. 아기들을 유모차에 탑승시키면 커피부터 사러 간다. 아침부터 애들 밥 먹이고 외출 준비시키면 커피 한 잔 어치가 넘게 체력이 소진된다. 다행히 이 쇼핑몰은 우리나라 곳곳에 있는 다양한 맛집들을 입점시켜 놓아서, 아기 없이 외출하기 힘든 나도 연희동에서 유명하다는 카페의 커피를 즐길 수 있다. 홍대에서 길게 줄 선다는 짬뽕집도 있어서 홍대 대신 여기서 줄을 설 수 있다(줄 서는 것까지 피해 갈 순 없다). 1층 카페에서 커피 한 모금 마시고 아기 관련 상점이 많은 3층으로 이동한다. 그곳엔 한번 이용하는데 2천 원씩 하는 작은 놀이 기구들이 있다. 아기들에게 미니 회전목마를 태우고 작은 레일을 도는 기차도 태운다. 놀이 기구에 살짝 긴장한 채로 앉아 있는 아기들을 동영상으로 찍으며 흐뭇해하고 있으면 10시 40분 정도. 더 타고 싶다는 아기들과 실랑이를 벌이다 다시 1층으로 내려가면 11시가 된다.


  11시면 음식점으로 향해야 할 시간이다. 사람이 붐비기 전에 가야 쇼핑몰 쪽으로 난 창가 자리에 앉을 수 있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오가는 풍경을 보면서 지나가는 ‘멈머멈머'나 ‘언니 언니’를 가리킬 수 있어야 식사 시간이 조금 더 평온하다. 오늘 선택한 메뉴가 불고기든 수육이든 가자미 미역국이든 뭐가 되었든 가위로 작게 잘라서 아기 그릇에 담아 놓고 집어먹게 한다. 중간중간 국물과 밥을 호호 불어 주면서 내 밥은 허겁지겁 먹느라 나는 입천장을 홀라당 데인다. 그래도 아기가 맘마를 맛있게 냠냠했으면 그걸로 만족. 물티슈로 아기 입과 손을 닦아주고 흘린 음식도 조금 정리해놓고 나온다. 그러면 11시 50분.


  음식점에도 이제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한다. 우리는 아기들 소화시킬 겸 쇼핑몰을 돌아본다. 하지만 느긋하게 있을 시간은 없다. 아기들은 벌써 졸려하기 때문이다. 낮잠 시간이다. 밥 말고도 가장 중요한 이벤트,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하루의 최우선 과제다. 아기가 낮잠을 잘 자야 아기도 컨디션이 좋고 나도 좀 쉬고 그런 것 아니겠는가. 부모에겐 진정한 휴식의 시간이 되려면 쌍둥이 아가 둘이 동시에 자줘야 하는데 점심 먹고 차 타면 둘 다 곯아떨어지니 외출하는 수고를 감내할만하다. 아기가 너무 졸리면 차에 타지 않고 안겨 있으려고 하기 때문에 마음이 조급하다. 북적이는 사람들 사이로 유모차를 빠르게 굴려 아기 휴게실로 향한다. 기저귀를 갈고 유모차를 반납하고 에스컬레이터로 한 층 내려가 아기들을 다시 차에 태우고 시동을 건다. 아기들 품에는 애착 인형을 하나씩 안겨주고.


  이제는 익숙해졌는지 아기들도 차 탄 지 5분 만에 잠이 든다. 밥 먹이고 재우기까지 완료하면 외출의 근본적인 목표가 충족된다. 하지만 아직 절반의 성공이다. 약 15분을 더 달려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한다. 여기서부터 아기들을 집 침대에 눕히기까지 소요되는 약 5분의 시간이 외출의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다. 남편과 아기를 한 명씩 들쳐 안고 차에서 내리면 12시 40분. 말 한마디 없이 비장하게 눈빛만 교환해서 의사소통을 하고 엘리베이터를 타러 간다. 엘리베이터가 곧장 지하로 내려와서 빈 엘리베이터에 우리만 타게 되면 일단 안심이다. 하지만 올라가다 1층에 서면 위기다. 주변 신경 안 쓰고 큰 소리로 통화를 하는 아저씨가 타거나 한창 장난 좋아하는 어린이들이 우르르 타게 되면 아기들이 깨는 건 한순간이다. ‘무사히 집에 들어가 침대에 내려놓게 해 주세요. 제발….’ 엘리베이터가 곧 예배당이다.


  엘리베이터를 무사히 통과해 침대에 살포시 눕혀놓아도 알 수 없는 이유로 아가들이 5분 만에 잠에서 깨는 날이 있다. 보통 오후 2시 넘어서까지 자는 아기가 오후 1시에, 집에 온 지 10분 만에 잠이 깨는 건 주말을 관장하는 신이 나에게 가혹하게 구는 날이다. 아기들이 자는 사이에 간단한 집안일을 해 놓고 핸드폰을 뒤적이며 허송세월하는 귀한 시간을 앗아 가다니! 오늘 쇼핑몰에서 내 시선을 사로잡은 안경테를 인터넷에 검색해 보려고 벼르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올린 후기를 찾아보고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려고 했는데! 머릿속엔 가득 찬 안경테에 대한 열망을 해소하지 못하고 잠에서 깬 아기와 마주 앉는다. 그렇다고 아기보다 안경테를 더 사랑한다는 건 아니구.


  주말이 비장한 이유를 자세히 설명하면 이렇게나 구질구질하다. 힘들다는 이야기를 실컷 하고 나면 그래도 내가 아기를 얼마나 아끼는지 양육자로서의 자질을 의심받지 않기 위한 멘트를 꼭 덧붙이는 게 바로 그 구질구질 함의 정점이다. 구질구질하기 싫어서 그동안 별로 입을 열지 않았지만 이번 주말에도 눕힌 지 10분 만에 깬 아기를 보며 속에서 무언가 와르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내가 이러는 게 정상인가. 이 정도 강도의 감정을 느끼는 일을 나만 알고 지내는 것은 인류문화적으로 손해가 아닐까. 보기 좋게 포장된 육아 이야기가 정보의 불균형을 초래해서 중요한 기록물을 생성하는 까마득하게 감이 없는 어떤 이가 ‘2023년 경에는 대형 쇼핑몰이 각종 인프라를 제공해서 육아는 식은 죽 먹기 수준이 되었다’라고 쓰면 안 되니까 말이다. 어쩔 수 없다. 내 경험을 나눔으로써 어떤 이들의 몽매를 깨우칠 수 있다면 기꺼이 해야 하는 것이다.


  아침부터 한산한 쇼핑몰을 어슬렁거리는 아기 엄마가, 남들 힘들게 일할 때 쇼핑하고 운동하는 사람이 나다. 하루를 보내는 양상이 다를 뿐이지 내가 편한 삶을 사는 게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앞서 같은 주장을 펼친 수억 명의 여성들에 이어 설마 나까지 피력해야 한다면 유감이다. 하지만 설사 편한 삶을 살면 좀 어떤가. 쇼핑몰에서 보내는 시간이 소위 꿀 빠는 시간이면 왜 안 되냐는 말이다. 육아 좀 편하게 하고 싶다. 비용을 치를 능력만 된다면 많은 부분 외주를 주고 나는 항상 건강하고 즐거운 상태로 아기들을 대하고 싶다. 아기들 때문에 주말마다 쇼핑몰 개장에 맞춰 오픈런하지만 가끔은 내 물건도 사야 어딘가 균형이 맞다. 그리하여 나는 2xx,000원짜리 안경테를 구입했다고 한다. 변명은 아니다. 그냥 긴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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