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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느무느 Jan 16. 2024

롯데월드에서 목격한 것

  온전한 행복을 느끼기란 왜 그리 어려운가. 행복이라는 말도 거창하다. 그냥 기분 좋은 상태가 방해받지 않고 반나절 이상 지속되기란 거의 불가하다. 반나절 안에 내 기분을 전복시킬만한 비극이 일어나는 건 아니다. 찬물을 끼얹는 건 주로 나 자신이다. 어쩌다 운이 좋았다면 당분간은 좋은 운수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금세 잠재적 불운에 대비한다. 내 결점을 항상 돋보기로 들여다보고 있으니 누군가의 칭찬에도 쉽게 우쭐해지지 못한다. 느긋한 휴식을 취하고 나면 얼마나 풍족한 시간을 보냈는지 느끼기 무섭게 미루어 둔 나의 의무와 책임을 기억해 낸다.


  언제부턴가 아주 강한 감정은 느끼고 싶지 않아 졌다. 특히 어떤 작품을 보고 다양한 감정이 요동치는 상태를 제일 경계한다. 왜냐하면 난 이미 혼자서 너무 많은 드라마를 겪고 있으니까. 행복할 수 있는 시간을 빼앗고 기어코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나 자신을 감당하느라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것이 나에겐 최고의 평온이다. 나를 다른 자극에 노출시켜서 감정을 소모할 만큼 대범하지도 않고 에너지 곳간이 넉넉하지도 않다. 그런 내가 얼마 전 예상치 못 하게 매우 강렬한 감정을 느끼는 일이 있었다. 물 한 바가지를 정통으로 뒤집어쓴 것처럼 그 감정은 나를 향해 뚝 떨어졌다. 


  지난달 아기들을 데리고 처음으로 롯데월드를 갔다. 한창 아기들이 등원을 거부해서 어쩔 수 없이 집에 데리고 있던 시기였다. 일주일 넘게 두 아이를 집에 데리고 있느라 지쳐있던 나와 남편은 밖에서 시간을 보내기 위한 방법으로 롯데월드를 생각해 냈다. 먹을 곳이 좀 애매했지만 일단 향했다. 한창 날이 추워서 놀이터도 못 나가는 마당에 실내공간에서 아가들이 놀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확실히 메리트가 있었다.


  평일이라 한산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중고등학생들이 우글우글했다. 알고 보니 기말고사 기간이었다. 롯데월드는 학교를 일찍 마친 십 대들로 꽉 차 있었고 우리가 봐두었던 우동과 돈가스를 파는 식당은 앉을자리도 없었다. 홈페이지에서 점찍어 두었던 그 일식당은 알고 보니 놀이기구 옆 통로에 있는 푸드코트 비슷한 곳이었다. 아기 의자를 기대하기도 무리였다. 식사부터 계획이 틀어질 위기를 맞은 우리는 쌍둥이 유모차를 돌려 롯데월드 안을 뺑뺑 돌아 분리된 공간이 있고 아기 의자가 있으며 상대적으로 한산한 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도미노 피자였다. 


  나트륨 함량이 상대적으로 적을 것 같은 고구마 피자를 시켰다. 난생 처음 피자를 먹어본 아가들은 먹는 내내 눈이 반달이 되어 웃고 있었다. 오물오물 먹더니 또 달라고 입을 크게 벌렸다. 피자를 주는 게 마음에 걸렸는데 신나서 먹는 아기들을 보고 금방 체념했다. “너네 오늘 아주 좋~겠다” 혀를 차며 말했지만 며칠 동안 컨디션이 안 좋던 아가들이 밥을 잘 먹으니 반갑긴 했다. 입에 피자를 문 채 웃고 있는 아가들을 계속 핸드폰 카메라로 찍었다.


  롯데월드에 온 십 대들은 발걸음이 빠르고 텐션이 높고 그리고 유모차에 길을 비켜주지 않는다. 놀이기구를 하나라도 더 타거나 좋아하는 상대에게 잘 보이려 하는 자신들만의 미션에 몰입해서 덩치 큰 쌍둥이 유모차가 보이지 않는다. 여러 번 “지나갈게요”를 외치고 몸이 닿을 듯 지나가는 십 대 인파에 움찔 거리며 간신히 어드벤처 1층으로 돌아왔다. 먼저 회전목마에 줄을 섰다. 식사부터 우왕좌왕 하느라 마음이 급했는데 일단 줄을 서자 안심이 되었다. 이제 아가들에게 제대로 된 롯데월드의 ‘맛’을 보여줄 차례였다. 아가들은 스타필드에서 한 번에 2천 원 하는 작은 회전목마는 여러 번 탔지만 제대로 된 회전목마는 처음이었다. 나도 낯설었다. 마지막으로 회전목마를 탄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드디어 회전목마에 올라탔다. 아기를 내 앞에 앉히고 안전벨트를 했다. 목마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이제 출발한다며 아기에게 호들갑을 떨었다. 기구가 돌아가는 속도는 2천 원짜리에 비하면 훨씬 빨랐다. 밖에서 구경하는 사람들이 목마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었고 기둥을 꼭 잡고 있는 아기를 대신해 내가 손을 흔들었다. 아기 눈이 반짝였고 입은 벌어졌다. 주변에서는 꺅꺅 거리는 외침이 들려왔고, 난 아기의 흥분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때였다. 갑자기 뜨뜻한 감정이 울컥하고 치밀어 올랐다. 회전목마에 아기를 태우며 내가 더 들떠버린 걸까?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느낀 건 회전목마가 줄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강렬한 감정이었다. 


  행복이었다. 의심하거나 반박하는 목소리가 들어올 여지가 없는 확실한 행복. 너무 오랜만이라 어렴풋했지만 그건 분명 행복이었다. 난 회전목마를 처음 타는 아기의 즐거움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목격한 것은 내가 이미 오래전에 잃어버린 능력, 순수하게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마음 그것이었다. 노래가 나오고 빛이 반짝이고 말이 꿀렁꿀렁 움직이니 아기가 흥이 나는 건 당연하다. 밤이 짧아지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개나리가 피고, 찬바람이 잦아들면 목련이 피고, 오후 햇살에 공기가 데워지면 벚꽃이 피는 것처럼 매우 당연하지만 아름다운 것. 아기가 터뜨리는 웃음은 정직하고 예외가 없다는 점에서 가장 자연 그대로에 가까운 행위였다. 무언가를 감추기 위해 웃는 것도 아니고 웃고 난 뒤에 스스로를 한심해하지도 않는다. 목마 위에서 팔랑거리는 작은 발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평소의 나였으면 회전목마에서 손을 흔들어 보이는 행동은 하지 않았을 거다. 모르는 사람에게 손을 흔드는 건 어딘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기가 목마에 앉아 반달눈을 하고 있자 이성적인 척하던 내가 기꺼이 손을 흔들었다. 남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생각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는 내가 이 순간만큼은 나의 효용이나 자격 따위를 고민하느라 감정을 억누르는 일은 하지 않았다. 나는 행복감이 나를 통과하는 것을 느꼈다. 웃느라 일그러진 아기의 눈코입 앞에선 어떤 목소리도 내 감정을 반박하지 않았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기들은 집에 와서도 소파 팔걸이에 걸터앉아 말 타는 시늉을 하며 까르르 웃었다. 아기 열차를 탈 때 안내원이 자기 손에 찍어준 도장을 기억하고는 ‘기차, 기차’ 하며 손등을 가리켰다. 그럴 때마다 다시금 뜨거운 감정이 일렁인다. 어쩌면 나는 아기의 순수한 마음에 감읍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회전목마가 돌면서 특정 위치에 오면 항상 ‘텅’ 하는 큰 소음을 냈지만 아기는 그런 걸 기억하지 않았다. 퍼레이드의 무용수가 지어준 웃음에 의심 없이 화답하고, 정말 어딘가 존재하는 얼음의 나라에서 왔다고 믿고 있을 테지. 나는 언제까지고 아기의 이 믿음에 맞장구를 쳐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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