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느무느 Feb 10. 2024

졌지만 잘 싸우지도 못함 (feat. 이사)

  이사는 순탄하게 시작되었다. 이삿짐 직원들은 손이 빨랐고 담배 혹은 술 냄새가 나거나 하지 않았다. 이삿짐 팀장이라는 사람은 강한 이목구비에 과하게 웃어 보이는 게 어색해 보였지만 문제는 아니었다. 아침 일찍부터 북새통이 된 집에서 아기들을 안방에 넣어 놓고 밥을 먹였다. 문 바깥에는 여러 명이 신발을 신고 돌아다니는 소리와 박스 테이프를 뜯는 소리가 계속 났다. 어찌어찌 아가들을 등원시키고 나자 한결 마음이 놓였다. 이제 크게 걱정할 일은 없었다. 짐은 약 세 시간 만에 다 빠졌다. 


  이른 점심 식사 후 새 집에서 짐을 받기 시작했다. 전날 입주청소까지 마친 집은 깨끗하고 단정하게 우리를 맞았다. 이삿짐업체는 신속하게 짐을 풀기 시작했고 나는 팀장에게 가구와 물건들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다용도실에는 우리가 전날 가져다 놓은 조립식 선반장이 이삿짐센터 직원의 노련한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둥에 촘촘하게 홈이 있어서 원하는 높이에 선반을 끼워 사용할 수 있는 철제 선반장이었다. 가구 위치를 확인하고 팀원과 커뮤니케이션을 마친 팀장은 선반장을 조립하기 시작했다.


  선반 1층은 달았고 2층을 달려는 찰나, 난 그의 망치질을 멈췄다. 선반 간격은 이미 다 생각해 두었다. 하지만 막상 팀장과 함께 다용도실에 가보니 2층 선반 높이에 달려있는 콘센트가 눈에 들어왔고, 크고 못 생긴 압력멀티쿠커를 이곳에 놓으면 되겠다 싶었다. 멀티쿠커는 전기밥솥의 2배쯤 되는 크기인데 디자인이 전혀 없다고 봐야 하는 제품이라 새 집 주방에 올려두고 싶지 않았다. 방금 떠오른 아이디어가 마음에 쏙 들었지만 멀티쿠커는 아직 이삿짐 바구니 어딘가에 있었고 나는 멀티쿠커의 높이를 확신할 수 없었다. “한 칸만 올려봐 주세요. 한 번만 더 위요.” 망설이는 나에게 팀장이 말했다.


  “사모님. 그만하시죠?”


  그는 별안간 짜증이 꽤 난 모양이었다. 여태껏 좋은 사람처럼 허허 웃어 보이던 그는 다용도실에 나와 둘이 있자 시비조를 내뱉었다. 돌변한 어투는 차치하고 그가 나의 고민을 멈추려 한다는 것이 참신했다. 내 집이고 내가 쓸 선반이고 어떤 물건이 놓일지는 내가 정하는데 내가 그만하면 이 선반은 누가 달 수 있나. 그는 바쁜 이삿날에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잡아먹은 것이 내가 저지른 실수인양 나를 나무랐다. 맹세컨대 나의 고민은 길어야 1분 정도였다. 내 머릿속은 물음표(와 욕설)로 가득 찼다.


  바람직한 사고작용은 아니지만 이런 일을 당하고 나면 내가 친절하게 굴어서 그런 건가 하고 생각하게 된다. 오전 내내 씩씩하게 웃으며 말한 내가 우스웠다. 더 이상 우습게 보이기 싫어서 내 말투를 단속했다. 선반장은 나중에 다시 달기로 하고 우리는 다용도실에서 나왔다. 나의 싸늘한 태도를 그도 인지했는지 다시 과하게 웃으며 말을 붙였다. 몇 번은 외면했지만 그래도 나를 대신해 일을 하고 있으며 가짜일지라도 웃는 얼굴을 짓는 사람 앞에서 불쾌함을 표현하는 것은 어려웠다. 내가 느낀 감정만을 신뢰하면 어려울 것도 없는 일이건만,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이 나이를 먹어도 아직도 서툴렀다. 그런 내가 또 한심했다.


  모두가 무감각하게 분주한 틈에 나 혼자 복잡한 감정에 빠졌다. 차라리 몸을 더 움직이려고 아기들 책장에 꽂혀있는 책을 뽑아 다시 정렬했다. 속 모르는 남편은 이걸 지금 해야 하냐고 물었다. “왜? 얼마 안 걸리잖아?” 기분 나빴던 대화는 잊고 다른 일에 마음을 뺏기고 싶은 것이라고 말하진 않았다. 금방 괜찮아지지 않는 것도 부끄러웠으니까. 집이 완성되어 가는 동안 나는 ‘이쯤 되면 마음을 풀어야 되나’ 하고 자문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감정이 풀리지 않았기 때문에 던지는 질문이었다.


  이삿짐 박스가 다 빠지고 직원 중 한 명이 청소기를 돌리기 시작하자 팀장이 액자를 들고 나에게 다가왔다. “액자 걸어드릴게요. 위치 좀 잡아주세요.” 새 집에 걸려고 구입한 두 개의 그림이었다. 벽에 두 개를 위아래로 걸어 한 쌍으로 보이게 할 생각이었다. “여기 식탁 옆에 걸게요.”


  불쾌함을 어느 정도 레벨로 드러내야 할지 마음을 정하지 못 한 채 다시 팀장과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이상한 점은 내가 결정을 서둘러 내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마치 아까 받은 구박이 합당한 지적이라도 되는 것처럼 내가 우유부단해서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선반장을 조립할 때처럼 ‘조금만 더 내려봐 주세요.’를 여러 번 반복하고 싶지 않아 한 두 번 만에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그의 무례한 발언이 잘 못 되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가 말투에 투영한 내 이미지-사람 불러다 놓고 시간 잡아먹는 사모님-를 철회하고 싶어 나는 신속하고 결단력 있는 사람처럼 보이려 하고 있었다.


  이사가 마무리되고 물건들이 잘 들어갔는지 확인할 시간도 없이 아기들을 어린이집에서 데려왔다. 아기들 저녁밥 먹이고 목욕까지 시키고 나니 액자가 다시 눈에 들어왔다. 너무 좁았다. 액자 둘의 간격이 너무 좁은 거다. 더 최악은 그가 벽에 못을 박았다는 것이다. 나는 분명 꼭꼬핀으로 걸려고 이사 전부터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그가 당연하게 못을 가지고 오자 되려 ‘꼭꼬핀이 안 걸리는 벽인가?’ 하고 내 계획을 의심하며 꼭꼬핀 소리는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했다. 나는 웬일인지 잔뜩 쪼그라들어있었다. 


  하루종일 참아왔던 분노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그가 던진 한마디에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한 것도 싫고 벽에 못질해 액자를 거는 순간에 쿨한 척 말을 아낀 것도 정말 한심했다. 하지만 가장 화가 나는 부분은, 나 스스로가 다용도실에서 조심성 있게 선반 위치를 정하던 내 모습을 그의 시선을 따라서 ‘굼떴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액자를 달 때는 그에게 어떤 인정을 바라는 것처럼 ‘굼뜨지 않게’ 행동했다. 지적받지 않는 것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벽에는 못자국이 났고 액자 간격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왜 그렇게까지 해야 했나.


  이삿짐 팀장이 유난히 무례한 사람일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서비스 제공자이지만 자기보다 어리고 힘 약한 여성에게 할 수 있는 당연한 말을 던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말은 사용자와 서비스 제공자라는 우리의 관계를 순식간에 전복시켰고 난 그것을 일종의 힘 겨루기로 받아들였다. 그의 말을 날카롭게 받아치지 못해서가 아니라 내가 그의 발언을 의식해 합리적이지 않게 행동했다는 점에서 난 참패했다. 지적받지 않기 위해 나를 바꾸는 것 말고, 퉁명스럽게 피하는 것 말고, 제대로 승부를 보는 법을 나는 모른다. 


  사용자와 서비스 제공자의 관계는 사용자가 남성인지 여성인지, 나이가 많은지 어린지 혹은 몸집이 큰지 작은지에 자주 영향을 받는다. 특히 사용자가 여성이라면 ‘사용자’라는 지위보다 ‘여성'이라는 지위가 우선해 버리기 일쑤이고 서비스 제공자와 동등한 위치에서 서비스를 요구하기 어려워진다. 이런 말은 서비스 제공자에게 특별 대우를 받으려는 심보로 읽힐까 봐 조심스럽다. 하지만 내가 요구하는 서비스란 이삿날 내 집에 내 물건을 원하는 곳에 놓는 일 그뿐이었으며 그 과정에서 나나 이삿짐센터 직원 모두 불필요하게 감정을 소모하는 일은 포함되지 않았다.


  결국 액자는 떼어버렸다. 며칠째 하얀 벽에 난 못 자국만 노려보고 있다. 승부를 볼 필요가 없는 삶에 대해 생각해 본다. 상상해 보건대, 동일한 수많은 경험 때문에 앞서 들은 것과 유사한 말 한마디만 들어도 머릿속에서 알람이 울리고 피해의식이 작동하는 삶과는 정반대의 모습일 것이다. 난 힘 겨루기에서 이기는 것보다 그런 삶을 살기를 원한다.

작가의 이전글 롯데월드에서 목격한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