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구불시착 김택수 Apr 15. 2019

한통속

by 김히키



3년전. 두번째 홍콩을 다녀와 짐도 채 다 풀어놓기 전에 윤선이가 우리집에 놀러왔다. 언제나 즐거움이 한가득이던 윤선이와 나는 춤이 너무 추고 싶어서 방안에서 불끄고 있는대로 막춤을 추기 시작했다. 춤을 추다 보니 배가 고파져서 피자와 콜라를 사왔다. 옥상에 올라가 동생의 캠핑용 테이블을 펴고 그 위에 캠핑용 랜턴까지 켜놓으니 아주 멋진 밤이 되었다. 피자를 먹고 콜라를 마시며 춤을 췄다. 음소거를 해놓은 듯 음악 외에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지만 우리는 입이 찢어질듯 웃고 있었다. 



윤선이와 나는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 따위는 전혀 필요하지 않은 사람들처럼, 도대체 왜 이러는지 어떤 설명도 필요하지 않은 사람들처럼 지냈다. 즉흥적으로 벌이는 모든 일들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하는 법이 없었다. 홍대에서 밥을 먹다가 '걸어가자.'하면 더는 생각할 것도 없었다. 우리는 삼복더위를 헤치며 그대로 명동까지 걸었다. 아무 이유 없이.



피자와 콜라 옆에서 윤선이와 나는 너무 똑같은 수준으로 누가 더하고 덜할 것도 없는 흥에 맞춰 형편없는 춤을 췄다. 우리는 춤을 추고 싶었을 뿐이고 이게 무슨 상황인지를 서로에게 설명하지 않아도 됐다. 그래서 신나고 즐거웠다. 너무나 행복한 시간이었다. 이렇게 하루종일 노는 것이 일이다보니 아르바이트비는 눈깜짝한새에 증발하고, 아빠가 넉넉히 넣어준 통장은 바닥을 드러내고, 엄마가 가여운 마음에 가끔씩 쥐어주는 현금 10만냥은 이런 우스꽝스러운 유흥비로 이틀을 채 넘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나에게 이런 시간이 있었다는 것에 나는 늘 너무나 감사했다. 내 나이 27(만 25세). 그때에 원하던 것들을 다 갖게 된 지금은 피자와 콜라 옆에서 춤을 추지 않는다. 문득 이 사실을 깨달았다. 요즘은 부정적인 생각에 지쳐버렸다. 행복한 기억을 좇아서 오늘 나는 여기까지 와버렸다.



어느 때든 고통이나 고민이 없었던 적은 없다. 하지만 행복한 시간이었다. 나는 그때도 그 걸 알고 있었다. 이 시간을 떠올릴 때면 내가 누렸던 자유와 행복에 대하여 '원 없어.'라고 말하며 몹시 자랑스러워 할 거란 것을.



즐거움이 멈추면 무언가 서러운 기분이 나를 다시 다른 사람이 된듯 침착하게 만들곤 했다.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 혼란스러운 환절기 같았다. 웃다가 울고, 행복하고 상처받고, 설레고 두렵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나는 늘 그 것들을 구분해 내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었다. 모두 한통속이었다는 것을 그 땐 미처 몰랐던 것이다.




by 히키

instagram @hellohjkim

매거진의 이전글 "감기 좋아해요"라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