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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불시착 김택수 May 01. 2019

04월 30일

밤 10시 45분  




 


 기분이 개미처럼 바닥을 기었다가 다시 잔잔한 수면위로 올라왔다가 한다. 차라리 차가운 물에 반쯤 동동 떠 있는 것 같으면 좋겠다. 물이 따뜻한지 차가운지도 모르겠어. 그리고 분명 누구랑 동그란 머리를 맞대고 있었던 것 같은데 나만 톡 떨어져 나왔다. 붕어빵 꼬리처럼. 그리고 알았다. 어 나 붕어빵 꼬리였구나. 그래, 뭐 꼬리면 어떠냐. 나는 꼬리가 제일 바삭바삭해서 좋아요. 그냥 밀가루밖에 없는 게 더 맛있지 않아요? 항상 그렇게 밍숭맹숭한게 좋다. 하지만 또 호불호가 무진장 있는게 좋다고도 생각한다. 내가 가진 것들이 편안하고 익숙하지만, 가지지 못한 게 부러운 법이지. 너무 부러워! 


 고양이가 뒤꿈치를 깨물고 지나갔다. 귀엽다. 방금 밥도 주고 물도 주고 왔는데, 뭐가 맘에 안 들어서 내 뒤꿈치를 깨물었을까? 내 고양이 이름은 아르인데, 아르를 아르라고 안 부르고 고양이라고 부르고 나면 괜히 귀여움이 5배 정도 뛴다. 더 평범한 이름으로 부르는 건데 왜 그게 더 귀엽지? 다들 곰곰히 생각해보고 그럴듯한 의견이 있으면 알려주면 좋겠다.


 입술병이 도졌다. 할 일이 자잘자잘 많아서 그렇다. 그냥 다 할 일이다. 모니터 옆에는 랩노쉬 병이랑 커피 마신 유리컵들이 쌓이고 분명 책상위 A4용지에도 뭘 적어놓은 것 같은데 못 찾겠다. 최근에는 무슨 어플에서 영수증을 찍어 올리면 100원을 준다고 해서 영수증을 안 버리고 모아뒀는데, 그 어플이 며칠 째 계속 점검중이다. 영수증도 책상위에 산처럼 쌓였다. 오늘도 점검중이다. 오늘은 죄다 버려야겠다.


 남이 날 찍은 사진을 봤다가 정말 거북이 같다고 생각했다. 턱이 없잖아? 스물 몇 살 때만 해도 턱이 있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자꾸 이런 생각을 한다. 아니야, 허리디스크 없는 게 어디야. 누가 자꾸 나한테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들어? 티비도 인터넷도 다 해롭다는 생각을 한다. 온갖 벽에서 재생되는 광고도 미친 것 같다.


 요즘 영감이라고는 실오라기만큼도 없어서, 책을 샀다. 이병률, 이제니. 술술 써내려간 에세이는 별로 감흥이 없고, 행복한 푸 같은 것에도 관심이 없다. 나도 행복해지고 싶은 현대인이지만 정작 행복이 어쩌고 하면서 떠드는 것들을 보면, 행복은 하등 아무 쓸모가 없다. 우울하고 짜증나는 게 더 낫다. 오늘 하루 떠다니던 거지같은 감정들을 모아서 꾹꾹 눌러 담은 것들이 좋다. 


 그래도 오늘은 일을 하나 끝냈다. 장하다!

이제 사장님한테 나 글 썼어요 하고 보내야지.






by 서희

instagram @seoheel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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