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구불시착 김택수 May 01. 2019

포옹

by 허나영




 “당신은 모를 거예요. 사람을 느끼는 것에서 기억하는 것으로 바뀌는 게 어떤 것인지….”


  공부는 안하면서 친구가 좋아 쫄래쫄래 독서실에 다녔던 중 3 겨울. 곧 고입이었지만 어쩐지 붙어도 안 붙어도 그만이었다. 지역에 학교는 서산여고 하나 밖에 없었는데 이래저래 상관없던 기분. 모범생이던 친구를 따라 반 아이들끼리 돌려보던 만화 잡지 『댕기』를 옆에 끼고 독서실 바닥에 누워 우연히 보게 된 단편만화 ‘다니엘’. 사랑하는 아이를 잃은 어머니가 아이의 환영을 보았던 조카딸의 이야기를 전하던 남자에게 하던 말이었다. 왠지 멋진 말 같아서 외워두고 써 먹어야지 했다. 

  며칠 뒤 가혹한 장난처럼 이 말을 영원히 새기게 됐다. 갑자기 외할매가 돌아가셨다. 뺑소니였다. 단 한 통의 전화에 엄마는 오열했고, 이층 내 방에 있던 나는 어찌해야 할지 몰라 따뜻한 물을 데워 엄마에게 주었다. 외할매는 엄마의 엄마였지만 우리 엄마이기도 했다. 아빠를 따라 약국에 나가던 엄마를 대신해 내가 여섯 살이 되던 해부터 집에 와 우리를 돌봐주었다. 엄마의 엄마라는 이유로 그저 마음이 열렸다. 고향에선 모두들 외할매라고 불러 우린 집에서 늘 외할매- 외할매-하고 불렀다. 놀러온 친구들은 기겁을 했다. 

  “왜 할머니한테 욕해?”


  외할매의 죽음은 어린 나에게 오래오래 상처로 남았다. 누군가 할머니라는 말만 해도 툭하고 눈물이 났다. 외할매가 점점 구체적인 감각에서 생각 속 존재로 밀려나는 걸 막을 방법이 없었다. 외할매를 안았을 때 그 감촉과 품, 냄새, 질감 같은 것들이 생생하다가 어느덧 실체 없는 기억으로만 남았다는 걸 발견하던 것. 예견된 당혹감.  

  아빠에게 포옹을 시작한 건 스무 살 무렵부터였다. 여섯 살 이후, 아빠와 신체적 접촉이라면 진저리를 쳤던지라 지난 14년 동안 아빠의 존재는 어떤 오감의 경험도 남기지 못했다. 아빠는 살아있었지만 기억 속 존재처럼 죽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다시, 아빠가 생생히 돌아왔다. 아빠는 지성 피부라 기름이 많아 볼을 맞대면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대머리였지만 1950년대 20대를 보낸 아빠의 고착화된 유행은 포마드 기름으로 2:8 가르마를 타 단정히 빗어 넘겼다. 그 냄새도 좋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다정함은 아빠의 무기였다. 아빠의 포옹은 자식을 온몸으로 따뜻하게 포용하고 또 다 내어주고 싶어 하는 그런 종류였다. 아빠의 두터운 몸통과 여린 쇄골을 거쳐 아빠의 어깨에 내 턱을 올려놓으면 아빠는 다정하게 자기의 머리를 내 머리에 기대어 주먹으로 등을 토닥토닥 두드렸다. 

  “아빠, 이게 뭐야?”

  아빠의 행동이 왠지 귀여워 물으면, 

  “내 새끼 좋아서 그란다아이가.”

  하며 흐뭇하게 허물어지던 아빠의 주름진 얼굴. 그런 아빠가 깜찍해 다시 한 번 안으면 토닥토닥 조금 더 힘을 주어 주먹 방망이질을 하던 아빠. 아빠가 느끼는 존재로 돌아왔고, 14년 동안 강 저편을 걷던 내가 다시 아빠에게 달려와 도달한 포옹.


  길에서 가끔 아빠와 비슷한 외양의 할아버지들을 본다. 하지만 어린 시절 나처럼 그들을 보면 눈물이 나지는 않는다. 그분들은 나에게 그토록 귀엽고 깜찍한 존재가 될 수 없기에. 아빠는 오롯이 아빠의 유한함을 안고 사라져버렸다. 





(분홍 수건을 두르고 병원에 입원했던 아빠예요.)





by 허나영

instagram @dodo_bongbong

매거진의 이전글 마음에 들게 대충 살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