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카페-
태릉 입구 7번 출구를 나와 직진 200m, 첫 번째 사거리 횡단보도 건너편 은카페라고 알려진 조그만 카페가 있다. 그곳에 가면 마을과 마디라는 커다란 입간판이 세워저 있지만 누구도 그곳을 마을과 마디라고 부르지 않는다.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은 은카페. 은은 일주일 두 번, 그러니까 금요일과 토요일 저녁에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는 아르바이트생이다. 카페는 어떤 손님이 온다 할 수 없을 정도로 손님이 드물다. 근무 시간 동안 커피를 내리는 수가 평균 10번을 넘지 않는다. 어떤 날은 한 명도 찾지 않을 때도 있다. 은은 대체로 과제물과 노트북을 꺼내 두고 스마트폰에 몰두하며 시간을 보내고 최저임금 조금 넘는 임금을 받는다. 은이 하는 일은 여느 카페와 다르지 않다. 다르지 않으나 일이 많을 정도로 손님이 찾아오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에 여느 카페 아르바이트와 같은 일을 한다고 볼 수도 없다.
-은-
티끌 하나 없는 투명한 피부, 느리지만 정확한 말투, 많이 먹지만 그다지 뚱뚱하지 않은 체형, 가닥을 셀 수 있을 정도로 솔직하게 내려온 앞머리, 애교 석인 송곳니, 5초 이상 바라봐야 보이는 보조개, 은을 설명하는 모든 외모는 자연스러운 성 장 과정을 지나온 느낌보다는 정확한 데이터를 입력한 값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완벽했다. 그런 은에게는 비밀이 있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 설령 말한다 해도 누구도 믿지 못하는 비밀.
-점-
초등학교 때 희고 투명했던 얼굴에 희미 한 점이 생긴 날을 은은 기억한다. 아니다. 그날의 일이 생생하게 기억난다는 엄마의 말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엄마의 이야기는 열감기를 심하게 앓은 은이 거의 20시간을 자고 눈을 떴다고 했다. 가느다란 미동을 알아차린 강아지가 온몸으로 짖어대며 가족을 불러 모았다고 했다. 엄마와 아빠, 동생, 강아지, 모두가 누워있는 은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희미하게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하는 점의 탄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을 때 은은 눈을 떴다고 했다. 욕실로 내달려 거울 앞에 선 은은 얼굴을 덮고 있는 희미한 점을 확인하고 여러 차례 비명을 지르고 다시 쓰러졌다고 했다. 엄마는 점이라고 하기에 너무 흐려서 피부가 약간 거뭇해진 정도로 생각해도 무방하기에 아무도 눈치챌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점은 점점 진해지고, 점점 단단해지고 점점 커졌다. 중2 때는 얼굴의 3분에 2를 덮었는데 성장기 소녀에게는 그보다 치명적인 상처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은은 방문을 걸어 잠갔다. 마음도 걸어 잠갔다. 은은 점점 어두워졌고, 점점 말을 삼켰다. 얼굴을 점령한 점은 은의 모든 것을 점점 삼키고 말았다.
-약-
은은 적당한 외모를 가졌다. 적당한 웃음, 귀여움, 심지어 적당히 반항심도 가졌다. 적당한 반항심이 적당한 귀여움을 만나면 심한 귀여움이 된다는 것마저 적당히 알고 있었다. 말수가 적지도 많지도 안고 적당히 말할 줄 아는 은이 지금의 은이다. 어느 날 방에서 세상으로 나왔을 때를 은은 정확하게 기억한다. 그 기억 역시 엄마의 정확한 기억으로만 확인된 정확한 기억이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마음을 닫았던 은이 홀연 아무 일도 없었단 듯이 방을 나왔고,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강아지를 안고, 동생과 이야기를 하고, 엄마를 바라보며 웃었다고 했다. 그때 은의 얼굴 엔 검은 점은 마법같이 사라졌다고 했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지만 은은 그저 웃기만 했다고 엄마가 말했다. 캄캄한 방에서 한 일은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사실은 아무에게나 말할 정도의 일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은은 물컵에 물을 따르고, 사인펜 뚜껑을 열고 준비한 약봉지에 점을 없애는 약이라고 썼다. 그리고 그것을 물에 타 마셨다. 그게 다였다. 은의 얼굴은 다시 희고 투명하고 티끌 하나 없는 예전의 얼굴로 돌아왔다. 그리고 은은 고대의 마법사처럼 웃음, 귀여움, 반 항, 정의, 목소리, 말투, 애교, 보조개 등을 약봉지에 적어 물에 타 마셨다. 그것이 전부. 이유는 모르니 설명할 수도 없다.
-은카페-
카페는 보통의 손님이 온다. 보통이 아닌 손님도 온다. 은은 그들에게 바라는 약을 준비해 두었다가 음료에 섞었다. 너무 시 끄럽던 손님에게는 조용할 줄 아는 매너 약을 넣었다. 그러면 손님은 조용해진다. 오늘도 은은 모든 음료에 준비한 약을 탄다. 누구도 은이 어떤 약을 준비했는지 알지 못하고, 은이 약을 타는 것조차 알 방법이 없다. 은이 만든 음료를 마신 사람은 이전과 다른 사람이 돼 있다. 이쑤시개를 정갈하게 치우는 행동을 하거나, 공손한 말을 한다. 책을 깨끗하게 보고, 술에 취한 사람은 조용히 일어나 카페를 나선다. 이유를 모르지만 사람들은 그곳을 은카페라고 말한다. 아무도 그 이유를 알려하지 않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