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이어줘야겠네요


“문이 열립니다”

엘리베이터는 소리 없이 부드럽게 열렸다. 조심스럽게 올라탄다. 언제나 그렇듯이 왼발부터. 크지도 작지도 않은 아주 적당한 크기의 익숙한 노래가 들려왔다. 클래식 음악이었고, 그것은 비발디였다. 조명 역시 은은하고 부드러웠다. 컬러는 로즈골드. 인테리어의 섬세함이 일반의 엘리베이터와 확연히 달랐다. 소문대로 일류 호텔이었다. 남자는 약간의 긴장과 약간의 스릴, 약간의 흥분상태였다. 너무 드러나지도 않고 너무 숨어있지도 않은 버튼을 눌렀다. 그것은 라이언 호텔 최상층을 통으로 쓰고 있는 스위트 로열 룸이었다. 그리고 닫힘 표시의 버튼을 누르자 다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이 닫힙니다” 대단히 만족한 얼굴의 남자는 헐렁한 셔츠를 바지 안으로 밀어 넣고, 재킷을 고쳐 입으며, 가슴의 명찰을 바로 세웠다. 명찰에는 죠-타이거라고 쓰여있었다.

죠-타이거는 어떤 책에서의 한 문장이 떠올랐다. '고급은 인격을 만든다.' 문이 막 닫히려 순간 여인이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명찰을 보았지만 각도상 읽을 수가 없었다.



그녀의 손엔 간단한 청소도구가 들려있었다. 빧빧하고 새하얀 에이프런은 이제 막 입사한 신입을 의미했다. 죠-타이거와 여성은 가볍게 목례를 하고 엘리베이터의 구석으로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곧 어색해졌다. 둘은 같은 모양으로 층수를 나타내는 숫자만 바라보고 있었다. 숫자는 초고속으로 변하고 있었다. 죠-타이거는 자신도 모르게 여인에게 시선이 갔다. 그 시선을 의식한 여인과 잠시 눈이 마주 췄다. 그리고 둘은 약속이나 한 듯이 시선을 숫자판에 고정했다. 죠-타이거가 여인에게 관심이 간 이유는 향수 때문이었다. 죠-타이거는 향수에 민감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 향수를 기억했다. 강렬하면서 흔하지 않고 함부로 상대할 수 없는 여성들에게서 지금과 같은 향수를 느꼈다. 죠-타이거는 그 여인의 향수가 신경 쓰였다. 오래전부터 알고 싶었다고 물어볼까? 이상하겠지. 코가 여인 쪽으로 휘어짐을 느낄 정도로 죠-타이거는 여인의 향수에 취해있었다. 여성은 죠-타이거의 의식을 알아차린 듯 왼손으로 몸을 감싸며 한 발 더 물러섰다. 그것은 경계의 뜻이었다. 그 행동의 무엇인지 모르지 않을 정도로 죠-타이거는 상식적인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향수는 죠-타이거의 궁금증을 폭발시켰다. "실례인 줄 알지만 당신의 향수를 알고 싶습니다"라고 물으면 그만일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방법으론 여인을 더 당황스럽게 할 것이었다. 죠-타이거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여성에게 말을 건네려 할 때였다. 마침 문이 열리고 여성은 놀란 걸음으로 나가버렸다. 1만 17층이었다. 다시 문이 닫히고 죠-타이거는 다시 혼자가 됐다.



엘리베이터에는 그녀의 향수가 가득 남아있었다. 이제 겨우 1만 17층이라니. 죠-타이거는 스위트룸까지의 남은 층수를 계산했다. 스위트룸은 지상 999만 99층이었다. 계산이 불가능할 즈음 곧 대기권에 진입한다는 음성이 들려왔다. 지상 로비에서 대기권까지 25만 9층. 22분 경과. 죠-타이거는 이제 '겨우'가 맞는지 '벌써'가 맞는지 단어를 고르기가 어려웠다. 뭐 아무래도 상관없기에 계산도 단어를 고르는 일도 그만두었다. 숫자판을 보고 엘리베이터 디스플레이가 보여주는 우주의 모습을 번갈아 볼 뿐이었다. 죠-타이거는 보이는 것에 대해 흥미를 느끼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의 관심사는 아직 남아있는 그녀의 향수였다. 1만 17층에서 그녀와 다시 만나기 위해 스위트룸에서의 일은 최대한 신속하게 처리할 생각이었다. 스위트룸의 문이 열리고 죠-타이거는 140도 가까이 허리를 접어 인사를 했다. 그곳에 특별히 누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그것은 룰이었다. 우주 최고의 시설에 대한 경외감이었다. 죠-타이거는 룰을 준수한다. 이 룸의 창을 통해 칼 세이건의 푸른 콩, 지구의 하루를 조망할 수 있었다. 그렇치만 죠-타이거가 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푸른 지구를 아무나 볼 수 없도록 각 창마다 철저하게 가려져 있었다. 그건 이 방에 머무는 사람의 특권이자 권위의 상징이기 때문이었다. 이 건물은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다. 아니 지금 죠-타이거의 위치에서 생각하면 지구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었다. 이 호텔의 목적은 달과 지구의 연결이다. 지구와 달이 건물로 연결한다는 라이언 호텔의 계획이 무려 270년간 공사가 진행되었고 이제 곧 완성을 눈 앞에 두고 있다. 스위트룸은 항상 꼭대기 아니 지구에서 가장 멀리, 중간 구간이 늘어나는 구조이다. 스위트 룸에는 라이언 호텔의 창시자의 대형 디스플레이 초상화가 걸려있었다. 죠-타이거의 역할은 이 초상화의 관리다. 디스플레이의 픽셀이 건제한 지 먼지가 묻어있는 지를 살피는 일이다. 문제없음을 확인하고 다시 지상으로 돌아오는 것이 임무이다. 죠-타이거는 이 일을 위해 고용됐고 오늘이 첫 번째 날이었다. 그것은 앞으로 매일 지구와 달을 오가야 하는 유일한 사람이 되었다는 의미였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뒤돌아서서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 140도 허리를 접어 예의를 갖춘다. 이것도 룰이었다. 지상의 로비 버튼을 누르고 죠-타이거의 손이 느리게 1만 17층으로 옮겨갔다. 대체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혹이라도 그녀와의 재회를 생각했던 것이다. 바라고 바라야만 이루어지는 것일까? 이 호텔의 창시자에게 도대체 왜 지구와 달을 잊는 것이냐고 기자가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지구와 달은 항상 같은 면으로 마주 보고 있습니다. 둘을 이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야말로 지구와 달, 인류가 바라고 바라는 바입니다"



1만 17층에서 불이 들어왔다. 그리고 같은 향수의 그녀가 나타났다. 기적 같지만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다. 운명이란 것은 언제나 존재하니까. 둘은 다시 고개를 들어 숫자판에 시선을 고정했다. 죠-타이거는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어색한 상황에서 먼저 말을 하는 타입인가요? 아니면 기다리는 타입인가요?" 여인은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고 있습니다.라는 얼굴로 눈을 깜박거렸다. 그리고 가볍게 웃었다. 그녀는 죠-타이거의 명찰을 힐끗 확인하고 "기다립니다. 당신은 어떤가요? 죠-타이거 씨. "저는 참지 못하는 타입입니다. 당황하는 편이죠. 그래서 질문을 미리 준비하고 다닙니다." "어떤 질문이죠?" 여인은 밝은 성격이었다. 그런데 명찰이 보이지 않았다. "예를 들면 이런 거죠. 그거 아세요?" "뭘요?" "아니요 그게 아니라 그거 아세요? 이렇게 시작하는 말이에요." "그거 아세요?" "네"고개를 끄덕이며 타이거는 말을 이었다 "네 그렇게. 그거 아세요? 이 호텔을 지은 이유가 지구와 달이 항상 같은 면으로 마주 보고 있기 때문이라네요." 그녀는 숫자판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흥미롭네요."라고 했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전혀 흥미롭지 않은 투였다. 둘은 다시 침묵으로 공간을 채웠다. 이번엔 여인 이 말을 걸어왔다. "죠-타이거 씨 이름이 특이하네요 본명인가요?" "네 본명이기도 합니다. 입양되기 전에는 조 호였어요."라고 말하는 사이에 엘리베이터는 로비에 도착하고 문이 열렸다. 죠-타이거는 열림 버튼을 누르고 레이디 퍼스트라는 제스처를 했다. 여인은 가벼운 목례를 했다. 그녀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바로 뒤돌아서서 죠-타이거를 향해 물었다. "그거 아세요? 죠-타이거 씨! 제 이름은 이언입니다. 라 이언" 호랑이와 사자가 만났으니 대단한 우연이네요" 그녀는 가볍세 손은 흔들었다. 그런 그녀에게 죠-타이거는 한 발 다가섰다. "그거 아세요? 우리 지금 마주 보고 있는 거?" 서로를 마주 보며 죠 타이거와 나 이언이 동시에 말한다.


"그럼 이어줘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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